형식은 따르되, 내용은 우리만의 방식으로
결혼식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우리의 방식을 검증하는 첫 실험이자, 서로의 소통 구조를 점검하는 자리였다.
처음엔 결혼식을 준비하는 흔한 커플 중 하나였다.
사진은 어디서 찍을지, 드레스 투어는 몇 군데를 갈지 등등.
하지만 결혼식 준비를 하면서 계속 의문이 들었다.
“이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건가?”
이 질문이, 결혼이라는 실험의 출발점이었다.
원칙은 간단했다. 틀은 따르되, 내용은 우리 것으로.
현실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만 남기기로 했다.
(대한민국은 효율의 민족이다. 이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사진은 모바일 청첩장에만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다.
앨범은 집 안 창고에 모셔둘 가능성이 높으니까.
스튜디오 촬영 대신 사진관에서 간단하게 몇 장 찍었다.
결혼반지는 남편이 하고 싶어 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맞췄다.
예쁜 배경의 사진이나 화려한 다이아 반지도 멋지지만,
우리는 하루의 이벤트보다 이후의 삶에 투자하는 게 낫다 생각했다.
드레스 투어는 남편 없이 플래너와 진행했다.
“어차피 따라와 봐야 다 예쁘다고만 할 거잖아.”
농담처럼 말했지만, 남편이 휴가를 쓰고 따라올 만큼의 가치가 없었다.
주례는 친정엄마에게 부탁했다.
전문 주례보다 실제로 우리를 아는 사람이, 결혼의 의미를 전해주기를 바랐다.
엄마는 처음엔 망설였지만 결국 수락했다.
“우리 애가요, 진짜 말을 안 들었던 앤데.. 드디어 어른이 되네요.
마구 흐르던 물이 골짜기로 흘러가듯, 제자리로 찾아가더라고요.
딸을 기다려 준 결과는, 지금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거예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 엄마의 주례 이야기를 꺼낸다.
진실된 말은 오래 남는다. 역시 잘한 선택이었다 싶다.
하객 경험에도 공을 들였다.
이동이 잦은 뷔페 대신 코스로 대접했고, 단독 홀을 빌려 복잡함을 줄였다.
우리가 줄인 건 형식이지, 예의가 아니었다.
길을 덜 헤매고 식사를 편히 즐기는 게, 우리식 환대라고 생각했다.
보통 사회자가 마무리를 짓지만, 우리는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결혼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성장했고, 지금의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짧은 인사였지만, 그 순간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충분히 전하고 싶었다.
대리인이 아닌 우리가 직접 책임지는 일.
결혼식은 그렇게 끝났다.
결혼식 준비 내내, 우리는 계속 물었다.
“이건 정말 우리가 원하는 건가?”
“이건 누구를 위한 선택인가?”
“이 선택이 우리의 가치관과 맞는가?”
질문들이 우리의 결혼식을, 그리고 이후의 삶을 설계하는 기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