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의 일시성과 머무름의 건축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 인간이 지상에 머무르는 방식이 바로 ‘짓기(bauen)’, 거주함(wohnen)이다.”
— 마르틴 하이데거, 「건축, 거주, 사유」
오늘날의 집은 점점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스쳐가는 시간의 틈’이 되고 있다. 통계청(2025)에 따르면 30대 초반 세대의 월세 거주 비율은 세대가 바뀔수록 꾸준히 증가했으며, 1970년대 초반생의 17%에서 1980년대 후반생은 21%를 넘어섰다. 서울의 비(非)아파트 주택—단독, 다가구, 연립, 다세대—에 거주하는 임차인 중 약 60.3%가 월세로 살고 있는데, 이는 2011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전세 사기 등 불안정한 부동산 환경 속에서 월세는 오히려 ‘안전한 선택’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실제로 청년 1인 가구의 60% 이상이 월세 거주자로 파악된다.
이 변화는 단순히 주거 형태의 문제가 아니다. ‘집’이 더 이상 삶의 중심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의 임시적 거점으로 재정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때 영속적 안식의 상징이던 주거는 불안정한 노동과 유동적 자본의 리듬 속에서 계약 기간만큼의 시간성을 갖게 되었다. 건축이 과거에는 고정된 물질의 예술이었다면, 오늘의 주거는 시간이라는 조건 속에서만 존재하는 임시 구조물에 가깝다. 우리는 더 이상 한 곳에 뿌리내리지 않는다. 머무름은 지속의 약속이 아니라 이동의 기술이 되었고,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양식이 되었다.
하이데거는 「건축, 거주, 사유」(1951)에서 “우리는 거주함에 이르러야 비로소 건축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거주(dwelling)"는 단순한 생활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 안에서 존재하는 근본적인 방식이었다. 건축은 그 거주의 형식, 곧 존재의 방식이 공간으로 응결된 결과다. 집은 피난처이기 이전에 인간이 세상과 맺는 관계의 구조였고, 그 안에서 우리는 세계를 경험하고 자신을 이해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도시에서 거주함은 더 이상 안정된 상태가 아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로서의 인간은 공간 속에 단순히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라, 공간과 관계 맺으며 자신을 구성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현대의 건축은 그 관계를 공간에서 시간으로 옮겨놓았다. 짧은 계약, 빠른 철거, 재조립의 리듬 속에서 건축은 더 이상 ‘영속(permanent)’이 아니라 ‘시간적(temporal)’ 존재로 변모하고 있다.
하버드 디자인 매거진의 「The Theory and Practice of Impermanence」(2005)는 “건축 형태는 시간적이다(Architectural form is temporal)”라고 말한다. 건축은 더 이상 견고함의 표상이 아니다. 변화의 속도 속에서 생성되고 사라지는 현상적 실체다. 하이데거가 말한 ‘거주의 존재론’은 오늘날 ‘거주의 조건론’으로 변해버렸다. 우리는 더 이상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 속에 머무는 존재가 되었다.
오늘의 도시에서 ‘집’은 더 이상 하나의 목적지가 아니라 이동 중 잠시 머무는 중간지점이다. 셰어하우스, 모듈러 하우징, 오피스텔, 코리빙(co-living) 공간의 예는 모두 짧은 시간의 리듬을 견디는 건축이다.
공간은 사용자의 체류보다 오래 지속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짧음을 전제로 설계된다. 벽은 분리보다 전환을 위해 존재하고, 구조물은 분해와 재조립이 용이하도록 만들어진다. 이러한 건축들은 도시의 리듬을 닮았다. 자본의 순환 속도에 맞춰 공간은 더 이상 ‘머무름의 장소’가 아니라 '교환 가능한 자산'이 된다. 거주는 점점 더 ‘시간에 임대한 삶’이 되고, 우리는 계약서의 만료일과 함께 이주하며,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고, 또 다른 짧은 서사를 쓴다. 그러나 바로 그 일시성 속에서 새로운 건축의 가능성이 태어난다. 가벼움, 변환 가능성, 해체 후 재구성의 유연성—그 속성들은 영속적 건축이 가지지 못했던 미덕이다. 불안정한 삶의 조건 속에서 건축은 오히려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살아 있는 존재로서 대응한다. 주거의 일시성은 결핍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자신을 갱신하는 건축의 새로운 윤리이자 생존 방식이다.
건축은 더 이상 영속의 예술이 아니다. 시간 속에서 태어나고, 사라지고, 다시 조립되는 존재다. 우리는 과거처럼 한 장소에 뿌리내리지 못하지만, 그 대신 시간 위에 머무는 법을 배운다. 짧은 계약과 불완전한 벽, 언제든 철거될 수 있는 방 안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거주한다’. 그 거주는 완전한 정착이 아니라 순간마다 새롭게 갱신되는 임시적 존재의 형식이다. 건축의 의미 또한 그 불완전함 속에서 다시 시작된다. 머무름이 불가능한 시대, 건축은 머무름을 상실한 채로도 여전히 머무름의 욕망을 짓는 행위로 남는다. 그 욕망이 바로, 건축이 시간 속에서도 스스로를 유지하게 하는 가장 인간적인 힘이다.
‘일시성’의 시대에 우리는 오히려 ‘진정한 집’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집은 단순히 벽과 지붕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유한한 시간을 감싸 안는 형식이다.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에서 말한 "진정성(Eigentlichkeit)"은 단순히 ‘자기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스스로 결단하여 받아들이는 실존의 상태다. 인간은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Geworfenheit) 임을 자각하고, 그 던져짐 속에서도 자신이 될 가능성을 선택할 때 비로소 ‘본래적 존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단지 외부로부터 보호받는 쉼터가 아니라, 자신의 던져짐과 시간성을 마주하는 장소다. 건축은 인간이 세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유한함을 포용하며, 다시 자신으로 돌아오는 존재의 행위다. 진정한 집이란 완전한 정착이 아니라, 불안을 품은 채로도 자신으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집을 “기억과 꿈의 공간”이라 했다. 그러나 하이데거적 시선에서 집은 그보다 더 근원적인 층위—죽음과 시간의 자각을 담은 실존의 장소—로 확장된다. 그곳에서 인간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그 인식 속에서 오히려 삶의 깊이를 되찾는다. ‘진정성’은 감정의 진실이 아니라,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면서도 그 안에 머무를 결단의 형식이다. 진정한 집은 얼마나 오래 머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얼마나 깊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느냐의 문제다. 건축이 그 깊이를 되찾는다면, 비록 언젠가 떠나야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머무름의 의미를 품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Heidegger, M. (1951). Building, Dwelling, Thinking. In A. Hofstadter (Trans.), Poetry, Language, Thought (pp. 145–161). New York: Harper & Row.
Heidegger, M. (1927). Sein und Zeit. Tübingen: Max Niemeyer Verlag.
Ford, E. (2005). The Theory and Practice of Impermanence. Harvard Design Magazine, No. 23, Fall/Winter 2005. Retrieved from https://www.harvarddesignmagazine.org/articles/the-theory-and-practice-of-impermanence
Bachelard, G. (1958). La Poétique de l’Espace [The Poetics of Space].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English trans. Boston: Beacon Press, 1994.)
Statistics Korea. (2025). Population and Housing Census: Housing Type Statistics. Daejeon: Statistics Korea.
아시아투데이. (2023, 8월 23일). ““빌라 전세는 싫어요” 서울 非아파트 월세 비중 60% ‘역대 최고’”. 아시아투데이. Retrieved from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30823010011531 아시아투데이
동아닷컴(비즈N). (2023, 8월 23일). “서울 非아파트 전세 기피 여전…임대차 계약 60%가 월세”. 비즈N / 뉴시스. Retrieved from https://bizn.donga.com/news/article/all/20230823/120819278/2 비즈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