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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정 Feb 04. 2024

프리다이빙의 역사(1)

고대 친초로 문명, 덴마크 에르테뵐레 문명, 사하라 사막의 암벽화

프리다이빙이란

프리다이빙은 수중에서 "숨을 참는" 행위를 주요 활동으로 삼는 스포츠 및 레저 활동입니다. 숨을 참는 행위로 인한 위험성이 더 직접적이고 절박하게 다가와서 일까요. 모든 스포츠는 어느 정도의 위험성을 내포하지만 프리다이빙은 그중에서도 '극한(extreme)' 스포츠 범주에 속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숨을 잠시 참고 물에 몸을 담그는 행위는 물에서 놀면서 당연히 경험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물에 들어가 헤엄을 치거나 놀다가 바닥에 실수로 수경을 떨어뜨려 주워야 하는 경우라거나 강가 또는 얕은 해변에 숨을 참고 들어갔다 빠져나오는 경험이라도 프리다이빙의 일부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저도 어릴 적 수영 훈련 시간에 숨을 안 쉬고 영법을 하면서 50미터를 숨을 안 쉰 채로 최대한 빨리 가본다거나 스타트를 한 후 최대한 오래 잠영을 해본다거나 하는 훈련을 받아본 적이 있는데요. 이런 것도 프리다이빙의 일종이었다는 것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프리다이빙이 새삼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잠시라도 숨을 참고 물에 들어가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경험 속에 존재합니다. 이는 마치 프리다이빙을 소소하게나마 체험한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지요. 이런 고찰로 우리는 역사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프리다이빙이 인간의 삶과 끊임없이 교감하며 한 획을 그어왔을 것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고대문명 고찰: 수영과 프리다이빙

친초로(Chinchorro) 문명: 기원전 7,000년부터 1,500년까지

(*친초로는 작은 예인망, 거룻배, 가벼운 해먹 등을 뜻합니다.)

친초로 고고학 유적지. 이곳 길이가 약 4km정도 되는데,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여기를 “Kilometer 4”라는 별명으로 부릅니다.

인류가 물에 들어가 헤엄을 치고 프리다이빙을 했다는 초기 증거 중 하나는 현재의 칠레 북부와 페루 남부에 위치한 아타카마 사막의 해안 지역에서 살았던 이들의 '친초로 문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9,100년부터 3,500년 전, 즉 기원전 7,000년부터 1,500년까지 이어진 남아메리카의 고대문명인 친초로 문명은 오늘날 칠레 북부와 페루 남부 지역의 태평양 연안에 정착한 어부들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건조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담수 자원이 풍부하여 인간의 정착이 가능했습니다. 사막에는 고대 호수의 흔적이 발견되어 작은 인간 집단을 지탱하는 데 충분한 규모였음을 시사합니다.("Settlement and Artificial Mummification of the Chinchorro Culture in the Arica and Parinacota Region".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Retrieved 2021-11-06.)

친초로 문명 사람들은 장례를 치를 때 미라를 만들었습니다. 고대문명에서 미라는 고대 이집트 문명이 대표입니다. 그런데 시기로 보면 친초로 문명이 고대 이집트 문명보다 앞섭니다. 독일 고고학자 막스 울레(Max Uhle)에 의해 1917년에 처음 발견된 친초로 문화의 미라는 이집트의 미라보다 이천 년 이상 더 오래 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이집트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미라는 기원전 약 3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친초로 미라의 경우 기원전 약 505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아타카마 사막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미라는 기원전 약 7020년경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로컬 아티스트 파올라 피멘텔과 존니 바스케스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세운 두 조각상은 친초로 미라를 묘사합니다. 사진: CNN 마크 조한슨(Mark Johanson), 2019

프리다이빙에 왜 미라 이야기를 꺼내냐고요? 그 이유는 바로 이 미라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발견되는 유물, 유골들이 친초로 문명의 프리다이빙 문화를 살펴보는 데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유물들에서 우리는 친초로 사람들이 솜씨 좋은 어부들이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정교한 어로 도구를 개발했습니다. 조개와 선인장으로 만든 낚싯바늘, 그리고 망을 원하는 깊이에 둘 수 있도록 돌로 무게를 조절하는 장치 등 효율적인 어로 장비를 다량 보유했지요. 바구니와 매트를 솜씨 좋게 짜는 기술도 알고 있었습니다.

전시 중인 친초로 미라와 유물들. 사진: delpuertoluces
친초로 문명 매장지 다이어그램
친초로 유골 오른쪽 귀에서 발견된 외이도 골종의 흔적

(Wise, K., Clark, N. R., & Williams, S. R. (1994). A Late Archaic period burial from the south-central Andean coast. Latin American Antiquity, 5(3), 212-227.)


유골에서도 프리다이빙 혹은 입수를 기반으로 한 해양생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뼈에서 발견되는 '외이도 골종(external auditory exostoses)'이 그것입니다. 흔히 '서퍼스 이어(surfer's ear)'로 알려져 있는 이 증상은 다이버, 서퍼, 윈드서퍼와 같은 사람들이 흔히 겪는 질병입니다. 차가운 바람과 물로 인한 자극으로 외이도 공간에 새로운 뼈가 자라나 외이도가 압박되면서 좁아지게 되죠.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면 외이도 공간이 아주 좁아지거나 완전히 막힐 수 있습니다.

친초로 사람들의 미라에서는 그들의 식이 및 생활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미라의 머리카락과 인간 뼈의 안정동위원소분석에 따르면, 친초로 사람들의 식이의 거의 90%는 해양 식품원에서 왔으며, 나머지 10%는 육지 동물 및 식물에서 왔다고 나타났습니다.(Hirst, K. Kris. “Chinchorro Culture.” ThoughtCo, March 8, 2017. https://www.thoughtco.com/what-was-the-chinchorro-culture-170502.) 연안의 부두나 정교한 어로 도구들과 같은 다른 고고학적 자료들과 함께 이 점은 친초로 사람들이 주로 생선, 연안 조류 및 해양 동물을 먹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고대 친초로 사람들의 유골에서 외이도 골종을 앓은 흔적과 미라 분석으로 나타나는 과학적 증거들은 바다에 들고나며 수렵 채집 생활을 했다는 것, 이들이 수영을 했으며 자연스럽게 물에서 숨을 참고 하는 행위라는 의미에서 프리다이빙 또한 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합리적으로 뒷받침합니다. 기계적인 보조 수단이 없었던 이 시대에는 물속을 탐험하고 해산물을 채취할 방법으로 프리다이빙이 유일한 대안으로 존재했을 것입니다.


덴마크 에르테뵐레(Ertebølle) 문명과 이집트 사하라 사막 암벽화: 기원전 6500년에서 4400년까지

오늘날 프리다이빙은 많은 경우 '웻슈트'를 입고 하기 때문에 수영을 못해도 관계없습니다. 웻슈트의 부력으로 인해 디폴트 상태가 구명조끼를 입은 것처럼 물에 뜨는 상태거든요. 그러나 고대에는 이런 장비가 없었으니 맨몸이었을 겁니다. 이때 다이빙에 앞서는 핵심 기술은 수영입니다.

고고학자들의 가설은 이렇습니다. 바로 다이빙이 수영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했다고 가정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먼저 해변 지대에서 음식을 모으기 위해 모험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아마 더 많은 것을 찾기 위해 물에 발을 담그게 되었을 것이고요. 결국 누군가는 뭔가를 찾기 위해 물속으로 몸을 담그게 되었을 텐데, 이것이 더 흔해짐에 따라 프리다이빙이 탄생했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이러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는 예로는 덴마크의 에르테뵐레 문명이 있습니다.

덴마크 에르테뵐레 문명 위치

에르테뵐레는 덴마크의 유틀란트반도 서북부에 있는 유럽 중석기시대 후기 패총문화(貝塚文化)의 대표 유적지입니다. 기원전 5300년 경부터 3950년 경까지 존재한 에르테뵐레인은 주로 바다에서 생계를 찾았습니다. 물고기로 풍부한 식단을 통해 번영하며 성장하고 번식했습니다. 그들은 패들(paddle)로 물 위를 능숙하게 다니며 역사에 남은 많은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고래와 같은 포유류를 사냥할 수 있었습니다. 도구로는 주로 나무를 사용하되, 필요에 따라 뼈, 뿔과 같은 단단한 재료를 활용했습니다.

에르테뵐레 유적지에서 발견된 세라믹으로 된 보트 모델. 에르테뵐레 인들이 해양생활을 한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에르테뵐레 인들의 모습은 아마도 이러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사진: TimeVista Archaeology

에르테뵐레 유적지에서는 다양한 물고기 종이 발견되었습니다. 가장 흔한 것들은 장어, 흰 송어, 대구, 멸치 등이며, 광어와 상어의 잔해가 발견된 유적지도 있습니다. 심해 어종과 상어를 포획했다는 증거는 에르테뵐레 어부들이 배를 타고 종종 깊은 바다로 나가기도 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때 프리다이빙은 분명 수영 기술이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며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정입니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이 아무 장비 없이 배에서 깊은 바다로 뛰어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수영을 할 줄 안다는 가정 하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배에서 작업을 하다 필요에 따라 다이빙을 하는 행위는 몇 천 년 동안 사용된 기술입니다. 따라서 최초의 프리다이버들은 고대 북유럽 지역에서도 수영을 할 줄 알았던 중석기시대 수렵채집인들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참에 수영 이야기를 함께 하겠습니다. 수영의 가장 오래된 증거는 바위그림에서 발견됩니다. 이집트 사하라 사막의 남서부에 위치한 길프 게비르(Gilf Kebir)에는 사암 지대가 있습니다.

길프 게비르 지역 전경

이 지역에는 벽화가 그려진 동굴이 발견되었는데요. 이 동굴은 수영인의 동굴(Cave of Swimmers)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원전 6500~4400년 경 신석기시대 암벽화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수영하는 사람들을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집트 사하라 사막의 와디 수라 동굴의 수영하는 사람들 암벽화

그러나 이 주장에는 논란이 있습니다. 사하라 사막의 건조함을 감안하면 그림 속 인물들은 수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화적인 '저승의 강'을 떠다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맞다는 주장이 학자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은 것이죠. 특히 수영하는 사람들이 일렬로 표현되어 있기에 이 주장에 더 큰 힘이 실렸습니다.

흥미롭게도 반대의 주장도 있습니다. 바로 그림 속 한 수영자는 벽 반대편을 향하고 있어 이 해석이 옳지 않다는 주장인 것이죠. 특히 사하라 남쪽에서 약 200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막화가 일어나기 전, 이 지역에 호수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발견됨에 따라 수영하는 사람들을 그린 것이 맞다는 의견입니다.

수영하는 사람들을 그렸다?! 아니다?! 당신이 보기엔 어떤 주장이 맞는 것 같나요?

30,75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고대의 거대 호수. 이미지: Boston University Center for Remote Sensing / Ghoneim

호수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암벽화가 실제 수영하는 모습을 묘사하였다는 사실이 힘을 얻습니다. 신화 속에서처럼 죽은 자들이 강을 떠다니는 것이라면 아마도 특정한 동작 없이 말 그대로 부유하는 모습을 보일 텐데, 벽화 속에 그려진 이들은 명확한 수영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무릎이 구부러지고 손이 앞으로 멀리 펼쳐져 있습니다. 이 정도의 수영 실력을 갖춘 이들이라면 숨을 참고 물에서 활동을 하는 프리다이빙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리 엄청난 도약이라거나 도전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추정입니다.


프리다이빙으로 나아가는 또 다른 길은 이집트의 벽화에서 나타난 것처럼 더 발전된 기술인 예인망을 활용한 낚시일 수 있습니다. 고대에서는 프리다이빙은 물속 깊은 곳으로 가기 위한 것으로 수영의 발전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연재를 기획하며 첫 꼭지로 '프리다이빙의 역사: 고대에서 근대 이전까지'를 다루려고 했습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당최 모르겠네요. 문명 두 개를 간략하게 훑었을 뿐인데 지면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프리다이빙은 최소한의 장비로 실제로 숨을 참으며 하는 행위라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근대가 오기 전까지는 큰 발전이 없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 하나에만 의지하여, 한 꼭지로 고대에서 근대 직전까지를 한번에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매우 잘못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꼭지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고대 그리스의 다이빙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이것도 더 쪼개게 될 수도 있을 텐데, 실제로 써봐야 알겠습니다.

맛보기 자료입니다. 저는 그림을 보기만 해도 벌써 신납니다.

이번 화는 선사시대여서 고고학적 증거들에 기반하여 '추정'할 수밖에 없는 시대였으나 앞으로 갈수록 시간이 흐르며 훨씬 많은 이야기가 올라옵니다. 이야기에 덧붙일 재밌는 역사 조각들, 에피소드를 아는 분들이 계시다면 알려주세요! 저도 여러 논문들을 바탕으로 공부하며 글쓰고 있거든요.




혹시 이 글을 읽으며 프리다이빙에 관심이 생기신다면?!

알로하프리다이브 를 찾아주세요!  << 클릭 혹은 인스타그램 @alohafreedive 디엠 문의 환영입니다.


고대인들은 수영을 할 줄 알아야 다이빙을 안전하게 했겠지만, 기원후 2024년이 흐른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웻슈트, 마스크, 스노클, 오리발까지- 모든 퀄리티 장비가 다 있습니다. 오기만 하세요!


해볼까 말까 할 때엔 해보는 쪽을 선택합니다. >v<

신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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