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이빙의 역사(3)
그리스인들은 과거에서부터 오늘날까지 4,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영과 다이빙을 해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바다와 함께 생활해 온 이들이었기에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다를 기반으로 문명을 일으키고 살아온 이들은 물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기술로 '수영'을 습득했습니다. 그리고 물에 "뛰어들어" 여러 가지 활동을 했습니다.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예를 들면 페르시아인들에 비해, 우월하게 생각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수영을 할 줄 알았던 그들과 달리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아직 깨치지 못한 이들, 즉 야만인들이라 생각했습니다. 바다를 삶터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수영은 익사를 막는 데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건강을 지키는 데에서부터 전쟁에까지 활용되며 여러 모로 이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문장에도 무지한 이들을 묘사하며 "글도 모르고 수영도 할 줄 모르는...(They know neither letters nor swimming... µήτε γράµµατα µήτε νεῖν ἐπίστωνται, Laws . d )"이라고 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글을 아는 것과 수영을 할 줄 아는 것을 동등한 수준으로 생각했던 시대- 수영을 얼마나 대단한 예술이자 기술(art)로 생각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McManamon, J. M. (2021). " Neither Letters Nor Swimming": The Rebirth of Swimming and Free-diving (Vol. 9). Brill.) 크레타 섬을 포함한 에게해 주변으로 기원전 2700년경부터 기원전 1400년경까지 번성한 미노아 문명에서부터 고대 그리스의 해양문명을 살펴보며, 수영과 프리다이빙의 흔적들도 함께 짚어가 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중심 크레타 섬은 수세기 동안 침입으로부터 자유로웠으며 이집트와 함께 청동기 시대에 지중해에서 가장 진보된 문명 중 하나를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했습니다. 그 문명은 바다에 영향을 받은 독립적이고도 독특한 특성을 가졌습니다.
뭐든 가까이 두고 지내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저는 바다 근처에 살고 있기에 가끔 해변으로 산책을 가면 저도 모르게 예쁘게 생긴 조개껍데기를 보면 주워올 때가 있습니다. 바다와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담은 사진을 찍고 프리다이빙을 하는 남편도 비슷해서 저희가 사는 공간 구석구석에는 바다가 있습니다. 바다 사진과 이런저런 조개껍데기, 작은 해목조각이 품고 있는 바다들이요.
단지 바다 곁에 사는 21세기 "도시인"의 삶도 이러한데, 바다에 전적으로 삶을 의지했던 고대인들의 삶에선 바다의 영향과 흔적이 더 크게 나타났을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유물로는 바다에서의 생활 및 역사적 사건들, 바다 생물과 수영 및 다이빙 장면 등을 그린 예술작품 및 생활용품 등이 많이 발견되어 바다와 밀접했던 그들의 생활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혹시 바다에서 돌고래를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바로 얼마 전 제주바다에서 처음 돌고래를 보았습니다. 1박2일 일정으로 짧게 들린 모슬포 근처에서 하루를 보내고 아침식사를 하며 바다를 보다가 남편이 "저기 돌고래!" 하는 말을 듣고 보게 되었어요.
그리스의 크레타섬에 있는 현존하는 것들 중 가장 규모가 큰 청동기 시대 유적지로, 유럽 최고(最古)의 도시 크노소스에는 돌고래를 그린 프레스코화가 있는데, 정말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아마 고대 미노아인들에게도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영상으로 남기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때는 폰이 없었기에 영상 대신 그들은 벽에 그림을 그려 남겨두었습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돌고래를 보았던 그 순간, 제 눈에는 돌고래들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그림에서처럼 크고 가까이 보이는 것 같았는데, 지나고 영상으로 보니 조그맣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요즘 뇌과학이 인기라 저도 덩달아 대중강의 영상도 여럿 보았는데, 아무리 보아도 기억이 실재를 인상으로 저장하는 방식은 신기합니다. 개인의 인식과 감상에 있어서 '정확하다'는 게 무엇일까도 잘 모르겠고요. 그럼에도 저는 주관주의자인 편인지- 어떨 땐 이미지가 실재보다 옳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지중해 지역에서는 고대에서부터 대규모 해상무역이 이루어졌습니다. 해상무역이 왕성했던 것은 단지 바다가 가까워서만은 아니었습니다. 크레타 섬은 강과 바위가 많은 언덕들로 이루어져 농업을 하기엔 쉽지 않은 지형이었어요. 바다는 침입자들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자연적인 장벽이자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크레타 섬이 바다 교역로에 있어 좋은 위치에 있었던 것도 한몫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출신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역사가 투키디데스(Thucydides, 기원전 465-400년)는 고대 그리스 이전, 크레타 섬을 지배했던 전설적인 왕 미노스가 최초로 해군을 건설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미노스는 최초로 해군을 설립한 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현재 헬라해라고 부르는 해역의 지배자가 되어 키클라데스 제도를 지배했습니다.... 미노스는 이 해역에서의 해적활동을 억제함으로써 자신의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Thucydides, First Book,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431 BCE).)
미노아인들은 상선으로 에게해를 지배했으며, 서쪽으로 스페인에서 동쪽으로 시리아까지 수백 마일을 항해하며 교역했습니다. 와인, 올리브 오일, 주석, 도자기, 청동 조각품 및 금속 공예품과 같은 상품이 크레타 항구를 통해 흘러들어왔고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및 지중해 세계 전역에서 금, 은, 상아, 청금석 및 흑요석을 받았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 가운데에 요행을 바라는 해적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악천후로 선박들은 빈번하게 난파되었고, 결과적으로 다이버들이 바닷바닥에서 난파선에서 흩어진 물품들을 가능한 한 많이 수습하기 위해 고용되었습니다.
다이버들은 전쟁에도 투입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또다른 역사가 헤로도토스(기원전 485-420년)는 기원전 480년에 있었던 살라미스 해전을 기록하며 다이버들이 맡았던 임무를 언급합니다. 살라미스 해전은 제3차 페르시아 전쟁중 그리스 연합해군이 페르시아 해군을 괴멸시킨 전쟁입니다. 이 해전에서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이 큰 함대를 이끌고 그리스로 진격합니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페르시아 군을 7일 동안 막아내어 그리스 해군이 철수할 시간을 벌어주었으며, 그 후에는 아테네의 해군 지휘관 테미스토클레스가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유인하여 전술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서 다이버는 난파 때 잃은 물건들을 회수한 것뿐 아니라, 전쟁 때 함선들과 주변을 순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때 페르시아인들과 함께 힘쓰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스킬리스(Scyllis)였고, 그는 그 당시 가장 숙련된 다이버였다. 펠리온산 앞에서 배가 난파되었을 때 그는 페르시아인들이 잃어버린 대부분의 것을 회수했으며, 동시에 자신에게 좋은 부분의 보물을 확보했다. 그는 그리스로 가고자 했으나 좋은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고, 페르시아인들이 함대를 모으고 있을 때 이번에야 막중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바다로 다이빙해 헤엄쳐서 아르테미시온까지 가는 동안 한 번도 수면으로 올라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아르테미시온에 도착하자마자 그리스 선장들에게 폭풍으로 인한 피해의 전체적인 내용과 주변을 순찰하기 위해 보낸 함선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의 함대 격파에 관한 책 (1) VIII 우라니아 495쪽)
또한, 선박이 난처한 상황에 처한 때에 가능한 경우 다이버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스킬리스는 그의 딸 하이드나(Hydna)에게도 다이빙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그는 딸 하이드나와 함께 크세르크세스의 배가 폭풍우에 어렵게 되었을 때 바다 아래에 들어가 꼬여 있는 닻을 끊는 것을 도와 위기를 모면하게 도왔다고 합니다. 이들의 공적을 기리고자 동상까지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Pausanias, “Description of Greece Translated with a commentary by J. G. Frazer In six volumes Vol I”, Book Tenths, Phocis, XIX, url: https://archive.org/stream/pausaniassdescri01pausuoft#page/526/mode/2up/search/scyllis)
(Brylske A. (2012). The complete diver : the history science and practice of scuba diving (First). Dive Training LLC. February 11 2024)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에는 다이버들이 적군 봉쇄를 피해 메시지 및 지원을 동맹군이나 차단된 부대에 전달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다이버들이 공격 선박의 닻줄을 자르는 데에도 활용되었습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런 능력 때문일까요. 바다에 대한 지식과 수영 기술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였으며, 페르시아인과 트라키아인과 같은 그리스 이외의 집단을 묘사하는 표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의 글에는 전쟁에서 수영을 할 줄 몰라서 전쟁에서 전멸한 이들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페르시아 전쟁 중 기원전 479년 8월 소아시아의 미칼레에서 일어난 그리스 연합군과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군과의 전투인 미칼레 전투에서 트라키아인들이 전멸했다는 기록입니다. 그런데 전멸의 이유가 바로 수영을 할 줄 몰랐기 때문으로 궁지에 몰린 이들이 모두 바다에 수장되었다는 겁니다. 수영이 생존을 지켜주는 우월하고도 '정확한' 기술로, 고대 그리스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외부인인 야만인들에게는 없는 능력이었다는 당대의 이해를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Fragoulaki, M. Thucydides Homericus and the Episode of Mycalessus (.–): Myth and History, Space and Collective Memory.)
좀 더 일상으로 다가가서도 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몸을 씻을 때 스펀지를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 스펀지는 바다에서 가져온 천연해면을 말합니다. 요즘에는 화학 물질 없는 천연 유기조직으로 설거지를 할 때 천연 수세미를 사용하듯 샤워를 할 때 천연해면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고대에는 합성섬유로 된 스펀지는 없었으니 달리 옵션이 있는 게 아니었죠. 구할 수 있는 건 천연해면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욕을 할 때 사용할 천연해면을 바다에서 채집해오는 다이버들이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천연해면인 바다스펀지 뿐만 아니라 조개와 진주도 수집, 수출하여 상업적 이익을 얻었으며, 이는 그리스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편, 다이버를 그린 무덤도 남아 있어 흥미를 끕니다. 직육면체로 된 이 무덤에는 사방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고, 무덤 안쪽 뚜껑 부분에도 그림이 남아 있습니다. 이 뚜껑 부분의 그림이 다이빙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라 이 무덤은 '잠수부의 무덤(이탈리아어: Tomba del tuffatore)'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기원전 5세기 것으로 현재 이탈리아 파에스툼 박물관에 있는 이 무덤은 풀장으로 뛰어드는 고독한 잠수부의 천장 프레스코화라는 신비로운 주제로 유명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수영, 다이빙과 같이 바다에서 자유롭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예술이자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을 그들의 정체성이자 우월성으로 생각한 것은 당시 지리적 특성, 주변환경에 따라 생활방식이 얼마나 달랐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 형성되는 사고관 또한 얼마나 달랐는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일례로 한국에는 생존수영이 필수가 아니지만, 다른 여러 나라들에서는 생존수영을 의무화한 곳이 많다는 사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환경 및 가치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겠지요.
한편, 고대 그리스인들에서부터는 건축도 조금씩 정교화되기 시작합니다. 근원적으로 물은 자연에 존재하지만, 이러한 물을 인공적으로 건물 내부로 끌어들이는 방안들에 대한 고민이 시작됩니다. 그러한 시도들이 건물 여기저기서 발견되고요. 물을 대량으로 건물에 담아 목욕탕이나 수영장, 잠수풀처럼 만드는 데 필요한 각각의 기술이 발전하여 종합시스템으로 적용되기 까지는 수천 년이 걸립니다. 기술 발전은 더디지만 꾸준히 이루어져왔습니다. 물에서의 인간 활동의 역사만 보다보니 건축 이야기는 너무 뒤로 미뤄질 것 같아요. 다음 글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건축이 물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금이 올해 마지막 새해 인사 기회일 것 같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물에서 몸을 다루는 기술을 몰라도 살아가는 데 위험이나 어려움이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배워서 나쁠 것도 없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바다는 지구 면적의 약 71%, 맨몸으로 먼바다에 나갈 일은 없겠지만 더 즐겁게 드넓은 지구의 일부를 즐길 수 있는 몸의 능력치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역시나- 읽는 것보다 해보는 게 훨씬 더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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