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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인하트 Sep 25. 2018

3. 그대를 사랑합니다

오래된 부부도 사랑을 이야기하는 추억이 필요하다

2018년 9월 1일 아버지의 칠순을 맞아 부모님의 리마인드 웨딩을 하였습니다. 부모님의 리마인드 웨딩을 시간 순서에 따라 준비과정에서 마무리까지 차례차례 정리하기보다는 남아 있는 기억의 편린들을 중심으로 전개합니다.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 아이디어

부모님 두 분이 꽃길 (버진 로드)을 지나 입장하신 후 결혼식과 다른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필요했습니다. 주례를 부탁하는 것도 애매하므로 주례사나 성혼 선언문을 대신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했습니다. 장난스럽게 가장 나이 어린 손주인 준희를 주례로 앉히자는 아이디어에서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끝내자는 아이디어까지 다양했습니다. 


아내 : 부모님 입장 후 주례사나 성혼선언문 대신 서로에게 편지를  낭독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둘째 : 편지는 누가 쓰나요? 

필자 :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막내가 아버지 어머니에게 이야기해 

둘째 : 아버지는 양복 속주머니에 넣어 오시고, 어머니는 어떻게 하죠?

아내 : 편지를 지훈이와 승훈이가 꽃길을 따라 전달하면 되겠네요.
          그리고, 케이크 커팅과 편지 낭독 시에 백 뮤직이 있으면 좋겠네요.

막내 : 호텔에서 음악을 준비해 준답니다. 

필자 : 가족 모두가 역할이 생겼네.
         행사만 잘하면 되겠네.  


집사람의 아이디어가 가장 좋았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일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준비되지 못한 아버지의 편지

행사 당일 아침에 어머니가 쓴 편지를 봉투에 넣어 가슴에 품은 막내가 이야기했습니다.


막내 : 형, 어제 어머니는 편지를 썼는 데 아버지가 편지를 안 썼어. 어떡하지?

필자 : 그럼 간단하게 어머니가 읽은 편지에 답사를 하시라고 해야겠네.

아내 : 안돼! 사람들 앞에서 차근차근 이야기하기 어려워

필자 : 자기 말이 맞아. 그럼 시라도 적어서 읽으시라고 할까?

아내 : 인터넷에 좋은 시 찾아봐요


인터넷에서 부랴부랴 찾은 시가 김 현태 시인의 '사랑하는 당신에게 드리는 글'이었습니다. 호텔에서 프린트를 하였지만 글씨가 너무 작아 아버지가 읽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사촌 여동생에게 부탁하여 손글씨로 쓰게 하였습니다.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다

성혼 선언문을 넣어두던 두꺼운 붉은색 커버에 넣은 편지를 전달해 주기 위해 아이들이 천천히 꽃길을 걸었습니다. 지훈이는 아버지에게 승훈이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전달하였습니다. 편지를 받아 든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을 걸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먼저 편지를 읽어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어머니는 갑자기 목이 메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도 천생 여자입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려 하니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었나 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먼저 편지를 낭독해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아버지도 한두 번 읽는 연습을 하셨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숙제를 하시 듯 너무 빨리 읽으시는 바람에 사람들이 내용을 잘 이해하질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시를 다 읽으실 즈음 어머니는 마음이 진정되신 듯 편지를 읽으셨습니다.



몽근씨! 우리 이제부터 시작이야
그러니 술 조금 먹어요. 알겠어요?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요
여보 사랑합니다.


아들, 며느리 손주 모두 다 행복하게 살아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아들, 며느리 모두 고맙다



어머니의 질문에 대답을 받기 위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필자 : 아버지 어머니의 술을 좀 줄이라는 부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버지 : 줄여야지

필자 : 아버지! 여기 하객분들이 모두 들으실 수 있게 크게 말씀해 주세요?

아버지 : 마침맞게 먹겠습니다.

필자 : 아버지! 잘 안 들립니다.

아버지 : 술을 마침맞게 먹겠습니다.

필자 : 오늘부터 하객 여러분들도 우리 아버지와 술 드실 때는 기억해 주세요
         우몽근 옹께서 술을 마침맞게 드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두 웃으면서 박수를 쳤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골백번도 더 한 약속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지키시길 기대해 보았습니다. 


필자 : 아버지! 어머니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머니가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 (두 손을 번쩍 드시며) 사랑합니다.

필자 : 아버지! 어머니에게 사랑의 키스 부탁합니다.

아버지 : (두 손을 저으시며 볼에 살짝 뽀뽀) 쪽

필자 : 아버지! 어머니! 사랑의 키스는 입술에다가 하는 겁니다.


끝내 두 분은 키스를 하지 않으셨고, 어머니가 아버지 볼에 뽀뽀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오래된 부부도 사랑을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필자와 자식들은 부모님을 한번도 서로 사랑하는 부부로 바라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곁에 계셨고 오래오래 별 탈 없이 살아 가시는 부모님의 이미지만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리마인드 웨딩을 통해 삼 형제와 모든 가족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두 분이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었다는 것을 


오래된 부부도 사랑을 속삭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리마인드 웨딩을 시작하기 전에 창밖에서 야외 사진 촬영 중인 오래된 부부의 모습입니다. 세월이 두 분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어도 서로가 사랑했던 그리고 사랑하는  순간들을 잊지 않고 오래 간직하길 바랍니다. 


부모님의 리마인드 웨딩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삼 형제와 며느리들에게도, 오신 50여 명의 하객분들에게도 멋진 행사였습니다. 멋진 하루, 온 가족이 함께한 시간은 여백을 남긴 사진 한 장에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드리는 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굴만 떠올려도 좋은 사람

이름만 들어도 느낌이 오는 사람

아침 내내 그렇게 그립다가도

언덕 끝에 달님이 걸린

그런 밤이 되면 또다시 그리운 사람


내 모든 걸 다 주고 싶도록

간절히 보고픈 사람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알고부터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작은 파문으로 

일렁이기 시작합니다.


길을 가다가 혹여 하는 마음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고

매일 오가다 만나는 집 잃은 고양이들도

오늘따라 유난히 귀여워 보이고

지하철역에 있는 대형 어항 속의 금붕어도

이제 외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그 그리움이 사랑으로 자라고

그 사랑이 다시 사람과 사람 간의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때

이것이 이것이야말로

힘겹고 괴로운 삶이라도

우리가 참고 견디는 이유였음을…


그리하여 세상에 숨겨진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고 가꾸는 것이

또 하나의 큰 사랑임을 알았습니다.


한 사람만을 알고 사랑을 배우고

진짜 한 사람만을 더 깊이 배우는 그런 삶

행복합니다.

사랑을 알게 한 사람

당신이 고맙습니다.


김 현태- 행복을 전하는 우체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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