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과정은 석사 과정과 완전히 다릅니다. 주중에 직장을 다니고 주말에 공부를 한다는 것은 같지만, 마음가짐이 완전히 다릅니다. MBA 과정은 경영학 지식을 잘 배우기만 하는 것이라면, 경영학 박사 과정은 경영학 지식과 자신의 전문 지식을 함께 풀어내는 방정식을 찾는 것입니다. 방정식의 해법은 논문으로 정리합니다. 그런데 방정식을 풀기도 전에 좌절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서울과학종합대학교에서 MBA를 마치고 박사 과정을 다니는 중입니다. 대학원은 학생들이 이미 경영학과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다는 것을 전제로 가르칩니다. 학생들은 양질의 논문을 쓸 수 있도록 첫 학기 내내 연구 방법론의 두 축인 양적 연구 방법론과 질적 연구 방법론을 배웁니다. 양적 연구 방법론에 기반한 논문을 쓰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통계 프로그램인 자모 비(Jamovie)와 SPSS (Statistical Package for the Social Sciences), 인공 지능 및 머신 러닝 소프트웨어인 오렌지 (Orange) 소프트웨어, 시스템 다이내믹스 프로그램 Vensim을 배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적 연구 방법론을 배웁니다. 한 학기 내내 통계와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배웠지만, 통계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계속 바닥에서 헤매기만 합니다.
박사 과정을 처음 시작할 때 필자의 마음속에는 근거를 알 수 없는 자신감과 공부를 향한 열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이 있었습니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지금 필자의 마음속에는 완전히 다른 감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공부를 향한 열정은 활활 타오르기보다는 쉽게 사그라들었고, 자신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지식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무지만 늘어납니다. 열 번은 흔들려야 박사가 된다지만 주저앉은 열정은 쉽게 다시 불붙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사 과정 한 학기만에 갈 길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필자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니 어디 즈음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 지를 모르니
어디 즈음에 있는지도 모르다
지난 한 달간 거의 진도가 나가질 못했습니다. 업무가 많아서 집중하지 못했다고 핑계를 대기도 민망합니다. 자모비(Jamovi)와 오렌지 프로그램 사용법을 공부하면서 브런치에 포스팅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공부가 하기 싫어 자기 합리화를 위한 수만 가지 이유만 나열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편도선염까지 걸리니 침대와 소파에 누워 멍하니 핸드폰만 봅니다.
필자는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책상에 앉을 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40대 중반에 공부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일까? 배워서 남주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배워서 어디에 쓸려고 하는 걸까? 배워두면 쓸데가 있는 걸까? 지식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기 더 쉬울 텐데... 차라리 공부를 할수록 쌀이 나오고 밥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MBA 석사 과정은 배운다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지식이 쌓인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박사 과정은 짜증이 자꾸 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식이 아닌 무지만 쌓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해도 모르는 것 투성이이고, 우왕좌왕하다 보니 한 학기가 훌쩍 가버렸습니다. 박사과정은 석사 과정과 완전히 다르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할 듯합니다. 직접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배움을 시작하여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박사가 되기까지를 그린 동영상이 있습니다. 박사는 기존 선행 지식을 공부하면서 지식의 최전방까지 나아가서 자신의 길을 찾습니다. 공부할수록 지식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무지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입니다. 어디에 있는 지를 모르겠습니다.
누구는 무조건 논문부터 읽으라고 말하고, 누구는 지식부터 차근차근 쌓으라고 말합니다. 논문부터 읽다 보면 나침판을 들고 있는 것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1학기를 마치고 방학이 시작되면 아무 생각 없이 필자가 좋아하는 분야에 논문부터 읽어 봐야겠습니다.
방학에는 논문부터 읽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