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공동 간병인실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개인 간병인을 쓸 경우 하루에 10만 원이 넘는 높은 가격을 내야 해서 부담스러운데, 내가 있던 공동 간병인실은 한 명의 간병인이 네 명의 환자를 돌보기에 개인 간병인을 쓸 때보다 가격이 삼 분의 일 정도로 부담이 덜하다. 아직 간병 보험을 들지 않아서 내가 스스로 간병비를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공동 간병인실은 여러모로 좋았다. (병원비와 수술비도 여행자 보험과 실비 보험으로 해결되었기에 이번 기회에 보험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특히 베테랑 간병인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입원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방법과 요령들을 배울 수 있었다. 생각보다 입원 생활이 길어져서 공동 간병인실을 떠난 뒤에 스스로 병원 생활을 오랫동안 해야 했는데, 이때 필요한 것들을 공동 간병인실에서 익힌 덕분에 무사히 독립할 수 있었다.
역시 생활 교육은 공동 간병인실에서 하는 것이 좋다!
대체로 아래와 같은 것들을 배웠다.
1. 화장실 가기
수술을 받은 뒤에 가장 힘든 것이 화장실에 가는 것이다. 대부분 휠체어나 하이 워커(성인용 보행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화장실에서 사고가 가장 많이 나기 때문에 방법을 잘 배워야 했다. 나는 다리 골절이라 휠체어를 사용해서 화장실에 가는 방법을 배웠다. 혼자 가려면 무조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봉이 있는 장애인 화장실에 가야 한다.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기와 좀 떨어진 곳에 사선으로 휠체어를 세우고 브레이크를 건다. -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쉽게 움직이기 때문에 멈췄을 때는 무조건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 그다음 옆에 붙어 있는 봉을 잡고 일어나서 다치지 않은 발을 바닥에 비비며 한 바퀴를 돌아야 한다. - 이때 최대한 깽깽이를 안 하는 게 좋다. 깽깽이를 많이 할수록 안 다친 다리에도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 그 뒤에 봉을 잡은 채로 앉아서 볼일을 보고, 일어나서 사선으로 세워져 있는 휠체어에 올라타면 된다. 휠체어에 올라탈 때까지 무조건 한 손으로는 봉을 잡고 있어야 한다.
거상 휠체어와 하이 워커와 목발. 병원에서는 저 셋 중 하나를 사용한다.
내가 휠체어를 탄 채 혼자 화장실에 있으면 배려심 많은 분들이 도와주려고 많이 오시는데, 익숙해지면 혼자서도 어렵지 않다. 그래도 항상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 혼자 휠체어 운전을 할 때는 다치지 않은 발을 중심축으로 삼아서 안전하게 가야 하고, 문을 나올 때도 양옆을 잘 보고 나와야 한다. 단, 한 가지 불만이 있었는데 똑같이 휠체어를 타는데도 여자 장애인 화장실이 남자 장애인 화장실보다 좁다는 것이다. 적어도 휠체어가 들어간 뒤 문을 닫을 수 있는 공간을 동등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침대에 올라갈 때도 휠체어를 사선으로 세우고 브레이크를 건 뒤, 깁스한 발을 먼저 침대에 다리 찢기를 하듯이 올리고 다른 발을 올리면 된다. 이것도 말로만 하면 자칫 위험해 보이지만 연습하면 가장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된다.
2. 기저귀 차기
사실 입원한 뒤에 가장 적응하기 힘든 것이 성인용 기저귀를 차는 것이다. 수치심을 가장 많이 느낀 과정이기도 했다. 공동 간병인실에 있을 때,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기저귀를 거부해서 간병인 선생님이 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어르신들은 밤에 화장실을 가다가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밤에는 잘 때 기저귀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나도 처음에는 적응되지 않았지만 한 번 성공하고 나니 오히려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 직후에는 절대 안정이 필요하므로 초기에는 수치스럽더라도 착용하는 것이 좋다. 다리 깁스를 한 상태에서는 팬티를 입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찍찍이가 붙어 있는 기저귀를 착용한다. 나는 장기 입원을 하면서 운이 안 좋게도 생리를 두 번이나 했는데, 이때에도 기저귀를 활용했다. 찍찍이로 된 기저귀를 먼저 입고, 안에 패드를 덧대서 패드만 갈아 주면 된다.
3. 환자복 입고 벗기
다리 깁스를 한 상태에서는 깁스를 한 다리 쪽이 터진 환자복을 입어야 한다. 보통 단추로 되어 있고, 양쪽 다 터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때 단추와 단추 사이에 틈이 벌어져 있기 때문에 휠체어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옷이 걸려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추를 반만 채우고, 다른 부분을 접어서 반바지처럼 만들고 다녔다. 바지를 입을 때에는 깁스를 한 다리부터 입고, 바지를 벗을 때에는 깁스를 하지 않은 다리부터 벗으면 된다.
4. 식판 치우기
식판도 처음에는 혼자 치우기 어렵기 때문에 매번 간병인 선생님이 치워 주었다. 독립을 한 뒤에는 같은 병실에 있던 친절한 보호자분들이나 걸을 수 있는 환자분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휠체어가 익숙해진 뒤에는 무릎 위에 식판을 놓고 스스로 반납할 수 있는 데까지 발전했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그 외에 물리치료나 소독을 받으러 갈 때, 엑스레이를 찍으러 갈 때, 원장님을 뵈러 갈 때 등 이동이 필요할 때마다 간병인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처음에는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 공동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는 것, 멀리 있는 물건을 가져오는 것, 과일을 깎거나 손질해서 다 같이 나누어 먹는 것, 얼음팩을 얼려서 얼음찜질을 해 주는 것까지도 모두 해결해 주었다. 수액에 문제가 생기거나 수액을 다 맞았을 때, 그 외의 여러 문제가 생겼을 때 간호사 선생님을 호출하는 것도 모두 간병인 선생님이 해 준다. 머리 감기나 샤워 등 씻기는 것은 해 주지 않기 때문에 이는 가족의 도움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서는 따로 쓸 예정이다.) 이후에 독립했을 때는 침대에 호출 버튼이 있거나 내선 전화가 있어서 잘 이용했다.
간병인이 없는 환자들은 주로 보호자가 상주하면서 전적으로 돌보았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식사부터 시작해서 화장실, 씻기 등을 보호자가 붙어서 해 준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보태 가족의 경우에는 감정 노동까지 해야 한다. 사실 보호자가 돌봐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귀한 일인데 특히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의 경우 돌봐 주는 자녀들(그것도 대부분 딸이다)에게 아프다면서 화내고 짜증 내는 걸 많이 봐서 내가 다 민망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봤던 사례들을 통해 살펴보면, 내가 장기 거주자이다 보니 비교적 여러 환자와 보호자를 보았는데 가장 자주 온 가족은 일 순위가 배우자였다. 배우자가 없고 자녀들만 있을 때, 아들과 딸이 있는 경우에는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대부분 딸이 돌봄을 전담했다. 아들만 있을 경우, 결혼한 아들은 가끔 와서 잠깐만 있다 갔으며 자주 오고 오래 있었던 아들은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경우였다. 젊거나 어린 환자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상주해서 돌보았다. 이론으로 많이 공부했던 것처럼, 돌봄 노동을 대부분 여성이 맡아서 한다는 것을 병원 생활을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간병인 선생님에게서 전적으로 도움을 받았던 것에서 혼자 대부분 할 수 있는 독립으로 나아가기까지 돌봄의 과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골절 생활을 통해 돌봄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