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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Oct 15. 2024

극성의 사랑 (1)




* PC 화면으로 보았을 때 더 정확한 정렬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선택해요.

                                                                                                    나를 닮은 사랑을 하든지,

                                                                                                    상대방을 닮은 사랑을 하든지.   

  


  다온의 말에 해운은 손을 내밀었다. 중지 끝이 다온의 팔에 닿으려는 순간, 해운의 몸이 뒤로 밀렸다. 동시에 다온의 몸도 반대쪽으로 밀렸다. 같은 극의 자석이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다.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플러스성(+)인 해운과 마이너스성(-)인 다온은 찰떡처럼 붙어 있어야 했다. 첫 만남에서는 그랬었다. 여름과 가을이 붙는 시점에서, 조경기능사인 해운이 국제 생태 박람회 폐막식 무대의 정원을 만들기 위한 견적을 내러 미주시에 갔을 때. ‘낮의 정원’이라는 이름을 지닌 무대 입구에 리본화단을 만들지, 포석화단을 만들지 공연의 의상 디자이너인 다온과 얘기하면서 바닥을 가리키기 위해 검지를 뻗었을 때. 그때 자석의 반대 극에 이끌리듯 다온의 팔에 손가락이 붙었었다.


  몸이 닿는 순간 두 사람의 몸에 전기가 흘렀다. 사랑에 빠졌다는 비유가 아니었다. 플러스성과 마이너스성은 선천적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성격과 환경이 결합해 새롭게 나타나는 체질에 가깝지만 혼자서는 발현되지 않았다. 자신과 맞는 반대의 극을 만났을 때, 그때에만 반짝였다. 그러니 해운은 두 사람이 운명의 극이라고 생각했었다. 다온을 밤에 만나기 전까지는.     






  다정한 것이 지능이자 재능이 된 시대였다. 다정함을 기준으로 성격과 마음에 따라 플러스성과 마이너스성으로 나뉘는 세계였다. 혼자 산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나를 둘러싼 세계는 그렇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의 극성과 끊임없이 마주치고 얽히기 마련이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극성이 더 중요했다. 플러스성은 혼자서도 충만하다고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는 것은 선택지에 있지도 않아 ‘있는 것들이 더하다’라는 원성을 받았다. 반대로 마이너스성은 상대방에게 퍼 주기만 해서 ‘없는 것들이 없는 것의 마음을 안다’라는 동정을 받았다.


  마이너스성끼리 만나면 배려하면서 아름답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플러스성끼리 만나면 파국이겠지만, 그들은 자기와 똑같은 사람을 만나 제대로 데면서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아서 같은 극끼리 만나면 서로 멀어지고, 다른 극끼리 만나야 서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같은 극끼리도 플라토닉 러브만 한다면 연애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상호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해운 씨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네요.     


  이번에도 그 얘기를 들었다. 당장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아무리 귀찮아도 일은 외면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끝내야겠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해운은 일할 때 늘 무표정이었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상대방과 눈 맞춤을 하는 것도 어려워했다. 조경기능사 일은 클라이언트와 상담할 때를 제외하고는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이번처럼 여러 명의 스태프나 관계자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의견을 내야 하는 상황은 드물었다. 식물이 아닌 사람을 대하는 일은 난감했다. 식물 앞에서는 표정을 꾸밀 필요가 없어 마음이 편했지만 사람 앞에서는 자신의 표정을 본 뒤의 반응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상대방의 표정에 드러나는 메시지에 답장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생겼다. 대부분은 전달할 수 없을 메시지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금 재미도 없고, 제가 많이 불편하시지요? 네, 사실은 그렇습니다. 저도 재미없고, 재미있게 만들 자신도 없구요.


  경력이 많은 것도 아닌데 폐막식 공연 프로젝트에 추천되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의아했다. 자신처럼 영업과 홍보에 소질 없는 사람이 어떻게 언급되었는지 궁금했다. 조경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는 이십 대 조경기능사가 흔치도 않은 데다 신선함과 발랄함을 콘셉트로 한 행사가 젊은 인력들을 찾기도 했고, 개인 주택의 정원을 의뢰받아 일했을 때 귀찮음을 진중함으로 친절하게 번역한 고위 인사의 추천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보름간의 긴 출장을 오게 된 폐막식 장소에 와서야 들었다. 지금은 개인이 살고 있지만 사후에 기념관으로 만든다는 정보를 미리 듣고 깔끔하면서도 웅장한 정원을 만들어 준 보람이 있었다. 나무를 다듬어 만든 나무 상의 반응이 좋았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 것 같아 쇠로 만들지 않고 나무로 바꾼 게 통했다. 새 기념관이었기에 여러 새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모습을 나뭇잎처럼 표현했더니 고위 인사가 나무 상을 보자마자 오랫동안 손뼉을 쳤었다.


  다온은 해운이 봐도 추천될 만했다. 누가 시답잖은 말을 해도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귀 기울여 듣고 손뼉까지 치면서 호응해 주었다. 일할 때도 눈을 똑같이 떴지만 입을 앙다문 채 집중력을 발휘해서 멋지게 해냈다. 다온이 일하면서 제일 많이 한 말도 재미있다는 말이었다. 해운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다온을 희귀 식물을 보듯 쳐다보았다. 익숙해질수록 더 재미없어지는 게 밥벌이고 일이었다. 다온도 이번 일이 첫 경력이 아닐 텐데 스케치 한 장을 완성하거나 의상 아이디어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재미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재미있어요. 진짜 신나요. 너무 흥미롭지 않아요?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들으니 사회생활을 위한 추임새가 아닐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다온은 정말로 일을 재미있게 하는 것 같았다. 놀이를 하는 것처럼 밥 먹는 시간 외에는 내내 뛰어다녔다. 아니, 항상 뛰는 건 아닐 수도 있었다. 총총거리면서 빠르게 걷다 보니 걷는 것도 뛰는 것처럼 보였다. 통이 넓은 청색 멜빵 바지를 입고 있어 키가 백칠십 센티미터 가까이 되어 작은 키가 아닌데도 아이 같았다.


  다온이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 공연에 출연하는 모든 출연진의 사이즈를 재고 공연 의상을 스케치하는 것까지 마치는 모습을 보고 해운도 가느다란 눈을 조금 키웠다. 자신은 정원을 콘셉트로 하는 야외 공연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 고민만 하는 단계였다. 머릿속으로는 아이디어를 생각하면서 다온을 계속 바라보았다. 해운의 단점은 아이디어를 빨리 떠올리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렇게 말없이 자신만 보던 해운에게 다온이 말한 것이다. 참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자주 듣던 말이었기에 상처를 받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온이 이어서 말했다. 



                                                                                       해운 씨가 만든 나무, 회오리감자 같아요.  

   


  다온은 해운이 다듬은 나무를 가리키며 크게 웃었다. 납작한 타원형이 겹겹이 쌓인 모양으로 나무를 다듬었더니 정말 회오리감자 같았다. 아직 아이디어를 내는 단계지만 손이 심심해서 기본형으로 하나 만들어 놓은 거였다. 가장 자신 있기도 해서 맡은 정원마다 빼놓지 않고 만드는 모양이기도 했다.


  해운은 최근에 귀밑까지 오는 단발로 자른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았다. 자신이 만든 정원을 보고 폭소를 터뜨리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기분 나쁜 웃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개성 있는 별명을 붙여 주어서 고마웠다. 어쩐지 쑥스러웠다. 회오리감자나무. 신선하고 생생한 초록색 감자.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듬직해 보이기도 했다. 다온은 눈을 반달 모양으로 휜 채 계속 웃고 있었다. 그 미소를 보니 앞으로 마스코트처럼 회오리감자나무를 많이 만들고 싶어졌다. 미소를 거둔 다온이 해운의 눈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차분하게 재미있는 사람 같아요.

                                                                                               저는 떠들썩하게 재미있는 사람인데.

                                                                                               우리 균형이 맞을 것 같지 않아요?  

   


  다온의 마지막 말을 듣자 소리가 작아서 심장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해운의 가슴에서 쿵, 소리가 났다. 심장이 약간 아픈 것 같기도 했다. 첫 만남 때가 다시 생각났다. 무심코 닿은 몸들끼리 달라붙었을 때, 서로 다른 극성이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스쳐 지나가듯 했던 생각이 자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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