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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Aug 16.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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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우가 가져온 임신 테스트기를 본 민형의 얼굴이 굳었다. 임신 테스트기에는 빨간 줄이 정확히 두 줄 그어져 있었다. 그 말은 앞으로 거액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했다. 그것도 당장. 구제금만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아이를 낳는 것도, 낳지 않는 것에도 돈이 많이 들었다.


  민형은 눈을 감았다. 입맛이 썼다. 자신을 탓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생각을 해야 했다. 2년 동안 노력한 것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동안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씻고 싶은 것도 참고, 돌아다니고 싶은 것도 참으면서 고행자처럼 버텼다. 유우를 참지 못한 게 결정적인 실수였지만 후회는 없었다. 사랑은 마지막까지 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유우 혼자 아이를 낳는 것은 불가능했다. 임신 기간 동안 배급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나. 머리가 복잡했다. 민형은 눈을 감은 채 팔짱을 꼈다. 오랫동안 그 자세를 유지했다.

  그때, 유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할게.”


  민형은 눈을 번쩍 떴다. 유우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밖에서는 아이 낳을 곳도, 키울 곳도 없어. 차라리 여기가 나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여기에 있겠다고. 자기는 나가서 우리 먹여 살릴 돈 벌어 와. 입이 하나 더 늘었잖아.”

  “말이 되는 소리야? 이제까지 했던 고생은 어쩌고?”

  “카운트다운을 다시 시작하는 것뿐이야. 아이 낳고 키우다 보면 5년은 생각보다 금방이야. 그리고 밖에서 아이와 함께 있으면 집세도 꼬박꼬박 나가게 되고……. 처음부터 이럴 걸 그랬네. 괜히 내가 굴에 들어오기 싫어서 고집 피우는 바람에 자기만 더 고생시켰어. 2년 날린 건 미안해. 그래도 이렇게 된 게 내 책임만은 아니니까…….”

  “그래도 여기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공간은 아니잖아.”

  “눈치 보면서 왔다 갔다 하면 돼. 아이가 있으면 오히려 나한테는 시선이 덜 갈 수도 있어. 아이한테는 미안하지만 당분간 호적에 안 올리면 세상에 띄지 않을 거야.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나갈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자기와…… 우리의 2세까지 아무개로 만든다는 건…….”

  “아무개? 그게 뭐야?”

  “……내가 지은 거야. 굴에서 개처럼 아무나, 아무렇게나 사니까 아무개지. 2년 동안 있다 보니 그런 말이 저절로 떠올랐어. 여기에서 며칠만 있어도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서 병 걸릴 거야. 내가 당장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지.”

  “다 같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아이를 위해 돈을 벌어 와. 내가 이 몸으로 일할 수는 없잖아. 나가서 뭐든 해. 원양 어선이라도 타라고.”


  “그동안…… 아이는 어떻게 키울 거야? 그리고 5년이 지나면…….”

  “여기에 있으면 집세도, 공과금도 나갈 일이 없잖아. 남은 거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을게. 5년이 지나면 구제금도 얼마씩이든 받을 수 있을 거야.”

  “5년이 지나면 유우 너는…….”

  처음으로 민형에게서 자신이 좋아하는 호칭을 듣자 유우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어차피 둘 중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어.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어. 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이대로 거리에 나가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난 그때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되고. 나 하고 싶은 거 많은 거 알잖아. 이제 이판사판이야. 힘들 때는 아이만 생각해.”


  유우가 민형의 등을 떠밀었다. 민형의 손에 있던 임신 테스트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테스트기에 그어진 붉은 줄이 호적에 그어진 것 같았다. 붉은 줄이 그어져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유우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민형은 주먹으로 눈가를 훔쳤다. 굴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유우는 끝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민형은 2년 만에 굴 밖을 나왔다. 뒤를 돌아보았다. 유우가 손을 흔들었다. 나비처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일부러 유우의 표정을 보지 않았다. 웃고 있을 거라고 억지로 생각하기로 했다. 유우의 모습은 곧 잡초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돈.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 와야 했다. 자신을 숨기면서.


  민형은 굴을 나가자마자 쌍끌이 어선 갑판원에 지원했다. 굴속보다는 바다가 훨씬 나았다. 가슴이 트였다. 그곳이 어떤 느낌인지 너무나 생생하게 알고 있으므로 유우를 굴속에 5년씩이나 혼자 둘 수는 없었다. 그 전에 목돈을 모아서 돌아가야 했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보지 못할 테지만 아쉬움은 접어 두기로 했다. 자신이 돌아갈 때까지 잘 버텨 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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