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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Aug 16.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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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이 어둡고, 무섭다고 느끼지만 않으면 이곳에서 태교하는 데 큰 무리가 가지는 않았다. 혹시 몰라 촛불조차 켜지 않았다. 굴의 입구가 길어서 불이 나면 질식사하기 쉬웠다. 


  유우는 나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고 끊임없이 주문을 외웠다. 배 속에는 유우 2세가 있었다. 태명도 따로 짓지 않았다. 나중에 민형이 오면 함께 제대로 된 이름을 짓고 싶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피가 이어지는 아이였기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싶어 당분간 유우 2세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이를 위해 가끔 밖에 나가 설렁탕을 먹고 오기도 했다. 안 나가는 게 가장 안전하겠지만 안 나가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서 나갔다. 뽀얀 빛깔의 국물을 마시면 없던 힘도 솟아났다. 마음까지 든든해서였을까. 유우는 굴에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뒤를 누군가가 따라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유우가 굴 안에 들어와 늘 바닥에 깔아 놓는 티셔츠 위에 앉았을 때였다. 누군가가 유우의 어깨를 짚었다. 


  “으악!”


  유우가 소리를 지르면서 옆으로 넘어졌다. 넘어지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배를 감쌌다. 그 모습을 본 이가 놀라며 외쳤다. 


  “어이구, 애 떨어질 뻔했구먼. 애기 가진 엄마인 줄도 모르고 큰일 낼 뻔했네. 미안해, 애 엄마. 일부러 놀래키려고 했던 건 아니여.”


  유우를 따라온 사람은 칠십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할머니였다. 구불거리고 숱이 많은 퍼머 머리는 생기발랄한 은색을 띠고 있었다. 반묶음을 하고 있었는데도 묶여 있는 부분과 나머지 부분에 머리카락이 많았다. 머리숱이 적은 것이 스트레스였던 유우는 그 상황에서도 순간적으로 노인이 부러웠다.


  유우는 몸을 힘들게 일으키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왜 저를 따라오신 거예요?”
   “오늘 애 엄마를 처음 본 건 아니고…… 슈퍼 몇 번 들락날락하는 걸 봤는데 행색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집이 따로 없는 것 같아서 궁금해 따라와 봤어. 사실 나도 오늘부터 집이 없어졌거든.”

  “저를 예전부터 보고 미행하셨다구요?”
   “아니, 뭐, 일부러 본 건 아닌데…… 통조림을 유난히 많이 사 가는 게 이상해서 말이야. 어디 피난 가는 것 같아서. 나도 어렸을 때 전쟁을 겪었는데…….”

  “……용건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도 여기에서 살면 안 될까?”
   “네?”
   “여기에서 혼자 살면 외롭고 무섭잖아. 곧 있으면 애도 나올 것 같은데 도와줄 사람도 없고. 보니까 애 낳을 때도 따로 병원 갈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혼자 낳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앞으로 남 노인이라고 불러.”


  정작 남 노인은 유우가 아이를 낳을 때는 굴을 비웠지만, 그때는 남 노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119를 부를 수 있는 상황도, 병원에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꼼짝없이 굴에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판에 이마의 땀을 닦아 줄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래전에 죽은 엄마가 생각나기도 했다.


  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 노인은 유우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예전부터 살았던 것처럼 익숙하게 굴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마자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옷들을 굴 밖으로 가지고 나가 먼지를 털어 오고, 음식들을 구석에 가지런히 쌓아 놓았다. 밤눈이 밝은 것 같았다. 먼지를 턴 옷들 위에 유우를 눕힌 뒤에는 이마를 한번 짚어 보기도 했다. 그 손이 너무나도 따뜻해서 유우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남 노인이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남 노인은 믿음직스럽긴 했지만 그만큼 정에 약했다. 유우와 둘이서, 곧 태어날 아이까지 셋이서 사는 것도 외롭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만족한 듯이 늘 자글자글한 미소를 띠고 있었으므로 그걸 미처 깨닫지 못한 건 유우의 실수였다. 그 뒤로 일주일도 되지 않아 선희와 동민이 남 노인의 소개로 왔다면서 동굴로 들어왔다.


  “……신세 좀 지겠습니다.”


  동민은 검은색 백팩과 종이가방 두 개에 온통 책을 넣어 가지고 왔다. 옷은 달랑 입고 있는 흰색 반팔 티셔츠와 푸른색 체크무늬 셔츠, 청바지뿐이었다. 이곳에서 몇 년은 있을 텐데 방한용품 하나 보이지 않았다. 퍼머 기 도는 머리에 뿔테 안경을 썼고 키는 백칠십 센티미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동민은 오자마자 책들을 꺼내서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여기는 원래 이렇게 먼지가 많아요? 굴에 오면 시원하고 쾌적할 줄 알았는데……. 석회동굴만 생각해서 그런가?”


  선희는 비닐봉지 안에 옷을 잔뜩 넣어 가지고 오면서 밖에까지 다 들릴 듯한 큰 목소리로 떠들었다. 소풍이라도 온 것 같았다. 이사할 때처럼 떡을 돌린답시고 유우에게 황도 통조림을 주기도 했다. 유우는 황당해서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면서도 오랜만에 맡아 보는 황도의 달큼한 향에 취해 눈을 감았다.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눈감아 주었다. 어차피 이 동굴을 유우만의 것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원룸 정도의 크기였지만 월세를 내고 사용하는 건 아니었으니.


  문제는 그들의 존재가 밖에까지 알려졌다는 거였다. 민형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유우가 우연히 남 노인에게 했던 아무개라는 말이 선희와 동민의 귀에 들어갔고, 그들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들의 배급자에게 그 단어를 전했다. 굴에 사는 개. 인간도, 사람도 아닌 개. 배급자들은 그 말이 자랑도 아닌데 신기한 단어라도 들었다는 것처럼 그 말을 속에 두고 참지 못했다.


  두세 사람에게서 시작된 말은 빠르게 퍼졌다. SNS의 위력이었다. 한때 ‘#굴에사는아무개’, ‘#아무개’라는 해시태그가 실시간 순위에 뜨기도 했다. 이제 세상에서 살기 어려워 굴속에 숨어 들어가는 이들을 누구나 아무개라고 불렀다.      


  주로 통조림만 먹었는데도 유우에게서는 젖이 풍부하게 나왔다. 그 젖을 먹고 유우 2세가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유우는 민형을 기다렸다. 그리고 유우 2세가 굴 안에서 기고, 걷고, 말을 조금씩 하면서 세 살이 되었을 때 유우는 드디어 민형을 만났다. 실제로 만난 것이 아니라 식량을 사기 위해 슈퍼에 갔을 때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보았다. 옆모습만 보았지만 민형이 틀림없었다.


  유우는 텔레비전 속에 있는 민형의 얼굴을 보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참치 통조림을 떨어뜨렸다. 다행히 두꺼운 캔이 발등을 찍지는 않았다. 캔을 주우면서 일부러 고개를 깊이 숙여 표정을 숨겼다. 잠시 뒤 고개만 겨우 들어 민형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그제야 민형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다.


  클로즈업된 민형은 텔레비전 속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유우는 그 표정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민형 대신 굴에 남아 있겠다고 했을 때 민형이 지었던 표정이었다. 음 소거를 해 놓아 소리가 들리지 않는 텔레비전에서 마치 표정이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민형의 얼굴 아래에 떠 있는 자막에는 ‘최초의 블랙 헤일 현장에서 발견된 아무개 이민형 씨 체포’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개라는 말이 뉴스에까지 나올 정도로 퍼진 줄은 몰랐다. 그 말은 민형이 당분간, 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동안 유우의 통장에 찍힌 이름과 금액으로만 생사의 여부를 알렸던 민형이었다. 바깥에 한 번씩 나올 때마다 통장 정리를 해서 통장에 찍힌 민형의 이름을 한참 동안 쓰다듬곤 했다. 이제 민형의 생사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을지 막막했다.


  유우는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속에서 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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