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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Aug 16.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9)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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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우연히 거기에 있었다니까요!”


  경찰에게 붙잡힌 민형이 몸을 뒤틀며 소리쳤다. 사람들이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에 민형의 말은 묻혀 사라졌다. 


  “저 사람이 소리를 지르자마자 우박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요. 그냥 우박도 무서운데 검은 우박이라니…… 진짜 지구가 멸망하는 거 아니에요?”

  “봐요. 우리는 보는 것도 무서운데 저 아무개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걸 손에 쥐고 있잖아요?”


  한 여자가 민형이 손에 우박을 쥐고 있는 것을 보고 외쳤다. 민형도 그제야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블랙 헤일을 쥐고 있는 손에서 땀이 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세게 쥐고 있었다면 땀 대신 피가 흥건했을 것이다. 


  어제 민형은 자신의 어깨를 때렸던 블랙 헤일을 손에 쥔 채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유우가 있는 굴이 발각될까 봐 거기로 바로 가지 못하고 일단 은신처로 갔다. 은신처는 유우의 어머니가 살던 집 마당에 팠던 굴이었다. 거주지가 될 뻔한 곳이기도 했다. 사람 한 명이 누우면 꽉 차는 크기였다. 전쟁 때 징용을 피하려고 집 근처에 파 놓는 방공호 같았다. 처음에는 그곳에서 지내려고 했지만 유우의 어머니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일주일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나고, 그 집에 다른 사람들이 이사 오는 바람에 굴만 파 놓은 채 그 집을 떠났었다.


  민형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잠든 시간을 기다려 몰래 담을 넘었다. 다행히 개를 키우고 있지 않았다. 마당 구석에서 굴을 찾았다. 구멍을 볏짚으로 채운 뒤 그 위를 다시 흙으로 덮어 놓았었다. 문 옆에 있던 삽으로 흙을 떴다. 삽을 움직이는 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다섯 번의 삽질만으로 겉의 흙을 파헤쳤다. 그 뒤에는 볏짚을 모두 끄집어냈다. 흙은 말라 있었지만 굴 안은 여전히 축축했다. 비닐봉지를 구석에 놓고, 손에 블랙 헤일을 쥔 채 웅크린 자세로 잠이 들었다.


  이불 하나 없이 맨몸으로 자서 밤새 떠느라 다음 날 새벽에는 온몸이 쑤셨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깨기 전에 다시 볏짚과 흙을 덮고 나왔다. 곧바로 굴에 가려고 했지만, 뉴스와 SNS에 올라온 민형의 얼굴을 알아본 이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민형을 경찰에 신고했다. 현상 수배가 된 것도 아니고 연예인이 된 것도 아닌데 SNS는 일반인도 순식간에 유명인처럼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얼굴이 팔리고 싶지는 않았다.


  어제부터 쏟아졌던 기사들의 댓글에서는 민형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민형은 연예인이 아니었으므로 포털 사이트에서 댓글이 막히지 않았다. 민형의 기사는 사회면에 있었다. 선한 일을 했거나 죄를 지었을 때 오를 수 있는 곳이었다. 의심의 영역에 있는 존재였으니 신상이 보호되지도 않았다. 민형의 이름과 나이, 출신 학교까지 공개되었다. 출신 학교는 고추장이 유명한 고향까지 드러냈다. 진짜 동창인지 아닌지 모를 사람들이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2반. 학창 시절에도 음침한 구석이 있었지. 고3인데도 수능에는 1도 관심 없어 보였음. 맨날 뭔가 멍 때리고 있는 것 같았는데.     


  김민형과 중고등학교 같이 나온 동창입니다. 존재감이 좀 없기는 했어요. 친한 친구들도 없어 보였고, 졸업한 후에는 뭘 하고 사는지 아무도 모르더라구요.     


  말 한번 섞어 본 적도 없고, 항상 무표정했어요. 약간 사이코패스 같은?     



  심지어 민형의 성씨를 틀리게 쓴 댓글도 있었지만 몇몇 사람만 답 댓글로 지적했을 뿐 대부분 신경 쓰지 않았다. 친하지도 않은 동창인데 성씨를 틀리게 기억할 수도 있다는 답 댓글도 있었다. 민형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어디에 사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에게 집이 없을 것 같다는 댓글이 달렸다. 그러자 그가 아무개가 아닌지 묻는 답 댓글들이 이어졌다. 그것이 민형을 더욱 수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 같았다. 


  뉴스에서는 어제 처음으로 떨어진 블랙 헤일에 대한 내용들도 연달아 나왔다. 어제 전국적으로 한 시간 동안 수많은 블랙 헤일이 내렸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사람들은 외계인이 블랙 헤일을 내리게 한 것처럼 요란했다. 하늘에서 악마가 떨어뜨리는 공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이 모든 것은 지구가 종말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라는 말까지 나왔다.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경찰차에 태워진 민형의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지나갔다.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유우였다. 아직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의 얼굴도 떠올랐다. 아이의 얼굴은 유우의 어렸을 적 모습으로 나타났다. 신용 불량자인 데다 집도 없으니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이상한 곳으로 보내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굴속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느라 고생했을 텐데. 그래도 돈을 받을 때마다 통장에 꼬박꼬박 넣었으니 굶지는 않았겠지. 통장에 찍힌 내 이름을 볼 때마다 내 생각을 했을까. 경찰서에 가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유우의 이름만 안 대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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