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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Aug 16.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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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우는 민형보다 성질이 급했다. 이름에서 풍기는 느긋한 분위기와는 반대의 성격이었다. 유우는 유성우라는 본명의 줄임말이었다. 유성우라는 이름은 딱딱해서 싫다고 했다. 유우는 그 이유를 늘 설득하려고 했다.


  “유우라는 발음은 듣기만 해도 마음이 풀어지고 노글노글해져. 이런 이름이 위험하고 불안한 일을 할 때도 긴장이 풀리게 해 줄 거야. 말의 주술성이 중요하지. 부드럽게 해 나가는 거야.”

  “너무 일본어 같은데? 유성우에는 별똥별 비라는 낭만적인 뜻이 있다고. 낭만적인 쪽이 더 좋은데. 우리가 국제결혼 한 것도 아니고…….”

  “별똥별처럼 사라지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럼 자기는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다른 사람들한테는 유우라고 부르게 할 테니까. 자기만 풀 네임 불러 주는 게 오히려 더 설렐 수도 있지. 특별하고.”

  “복잡하게 왜 별명처럼 이름을 바꾸는지 모르겠네. 그냥 주민 등록증에 있는 이름 쓰면 제일 편할 것을.”


  민형은 주민 등록증이라는 단어에서 멈칫했다. 자신에게는 곧 유효기간이 끝날 증명이었다. 그러다가 그 머뭇거림을 지우기 위해 일부러 볼멘소리를 했다. 자기 이름은 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고 싶어, 하고 말하면서. 그 뒤에도 꼭 성우라는 이름을 모두 발음했다. 아니면 차라리 맨 끝 글자만 감탄사도 신음도 아닌 형태로 우! 라고 발음하곤 했다. 유우가 한 번 부를 때 알아듣지 못하면 우! 우! 우! 우! 하고 부르짖기도 했다. 유우는 처음에는 재미있다면서 웃었다가 나중에는 원시인 같아 듣기 싫다면서 정색했다. 등짝까지 얻어맞으면서도 민형은 한 번도 유우라고 부르지 않았다. 장난 같은 이름이라고만 생각했다.


  유우는 토스트의 귀퉁이를 우물거렸다. 민형은 이미 오백 밀리미터짜리 우유 한 개와 토스트 두 개를 먹어 치운 뒤였다. 먹는 데 오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민형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유우는 새로운 토스트를 내밀었다. 식빵 스무 개가 들어 있는 식빵 한 줄을 몽땅 토스트로 만들어 와서 남은 게 많았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딱딱해지니 얼른 먹어야 했다. 유우는 토스트 외에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통조림과 과자, 라면뿐만 아니라 빨리 먹어야 하는 주스와 우유, 삶은 계란, 과일도 가져왔다. 풍성한 식사였다. 오랜만에 불맛을 본 민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무엇보다도 민형이 가장 그리워했던 것은 커피였다. 자판기 커피, 믹스 커피가 웬만한 약보다 힘이 나게 했다. 생명수나 보약처럼 매일같이 마시다가 갑자기 금지당하니 먹고 싶은 욕망이 더 커졌다. 무거워서 많이 가져오지는 못해 유우가 조금씩 챙겨 온 캔 커피는 한 모금만 머금어도 힘이 났다. 입에 꽉 차게 달라붙는 단맛을 끼니때마다 마실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뇨 걱정은 사치였다. 어려운 소망이었다. 굴 안에서는 전기를 쓸 수 없고 가스버너는 부탄가스를 계속 사야 하고, 폭발 위험도 있었다. 조리 과정이 필요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만 가져와야 했다. 모이나 사료처럼. 민형은 평소에 이런 음식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불만이 없었다. 동굴 속에서 마주 보고 토스트를 먹고 있으면 이벤트로 동굴 체험을 와서 오붓하게 식사하는 것 같았다. 완벽한 어둠은 아니지만 엇비슷하니 어둠 속에서 분위기 있게 식사하는 체험 같기도 했다.


  유우는 늘 토스트를 배급했다. 이름은 일본식으로 지어 놓고 식사는 영국식을 고집하는 유우였다. 민형은 새로운 토스트를 허겁지겁 베어 물었다. 오랜만에 만난, 불로 만든 음식을 마음껏 즐겨야 했다. 민형은 지금 2년째 실종된 상태였다. 사망 선고를 받으려면 3년이나 더 있어야 했다. 하산하는 날짜만 기다리며 도를 닦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친환경 콘셉트를 내걸고 인테리어까지 밝게 해서 시작한 피시방 사업이 망하자마자 민형은 휴대폰과 지갑까지 버리고 굴에 들어갔다. 굴의 벽면만 보고 있는 것이 빚쟁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 나았다. 차라리 목숨을 버리고 싶었지만 유우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버려진 폐터널을 찾아내 그곳을 거주지로 삼았다. 불길한 소문이 도는 곳이었으니 아무도 안 올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말아야 했고 휴대폰도 쓰지 말아야 했다. 고지서가 있는 삶이란 세금을 낸다는 것을 의미했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에서 철저히 없어져야 했다. 그렇게 5년만 참으면 구제금을 얻을 자격을 살 수 있었다.


  굴에서 무료함을 죽일 때마다 민형은 받을 수 있는 구제금을 계산하곤 했다. 자신의 목숨값이었다. 그 목숨값으로 두 사람이 살 수 있었다. 어쩌면,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세 사람분의 목숨값이 될 수도 있었다. 보통 실종으로 선고받겠지만 이 역시 홍수가 나거나 배가 침몰하거나 비행기가 떨어지는 재난처럼 특별 실종과 차이가 있겠나 싶었다. 그런 재난은 세상이 바스러지게 만든 거라면, 아무개는 세상이 밀어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재난의 크기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지만.


  자신과 주변 세계가 파괴되니 더 큰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 다른 사람들도 눈에 보일 것 같았다. 노골적으로 이기적이었지만 그때 민형의 심정은 그랬다. 어쩌면 잘살 수도 있었을 텐데, 와 같은 생각은 공상일 뿐이었다. 단기간에 확실하게 부활할 방법은 구제금뿐이었다. 


  역마살이 있던 유우는 자신은 중간에 뛰쳐나올 거라고 말했다. 이십 대에 잠시나마 게이머로 활동해서 좁은 공간에 종일 있는 것에는 자신 있는 민형이 실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을 내건 구제금은 마지막 보루였다. 일시불로 받는 구제금만 있다면 피시방을 차린답시고 진 민형의 빚과 유우의 카드 빚까지 갚을 수 있었다. 패물과 가구부터 시작해서 가방 하나, 책 하나, 옷가지 하나까지 가지고 있던 물건을 전부 팔고 굶어 가면서도 5년 동안 식량을 배급하고 유우도 연명할 수 있는 돈을 유우의 통장에 남겨 두었다. 집세를 낼 일이 없어 가능한 일이었다.


  토스트를 씹던 민형의 눈에 구석에 놓아둔 일력이 보였다. 한 장씩 뜯거나 뒤로 넘기게 되어 있는 일력에는 굴에서 생활한 날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었다.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달력처럼 숫자가 크게 적혀 있는 달력이었다. 민형에게 사망 선고가 내려질 날이 동굴에서 나가는 날이기도 했다. 사망해야 비로소 해방될 수 있는 셈이었다. 나가서도 유사 사망 상태로 지내게 되겠지만. 사망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민형뿐만이 아니었다. 유우가 선고를 더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민형은 입맛이 썼다. 굴에서 나가면 같이 살겠지만, 공식적으로 사망한 민형이 정말로 같이 살 수 있을까. 함께 숨 쉬는 기분이 들기는 할까. 아니, 후회와 후퇴는 없었다. 의지와 전진만 있을 뿐이다. 


  “찜질방 불가마는 땀이 나도 개운한데, 여기는 땀나면 기분 나빠. 완전 꿉꿉하고 습하다. 하루만 있어도 피부 안 좋아질 것 같아. 얼마나 더우면 굴 안까지 이렇게 더울까? 이상 기온은 이상 기온이야.”


  유우가 부채를 더 세게 부치며 말했다. 민형은 고개를 숙였다. 굴 안에까지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건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그랬다. 굴에 고여 있던 공기도 날씨가 워낙 더워서 그런지 쉽게 시원해지지 않았다. 더운 음식까지 먹으니 민형의 등에서도 땀이 계속 흘러내렸다. 


  민형은 여기에서 지내는 게 힘들지는 않은지 한마디도 묻지 않는 유우를 원망하지 않았다. 말없이 입안에 토스트를 욱여넣을 뿐이었다. 한 달 만에 본 유우는 민형을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유우는 초기에는 일주일 만에 오더니 마지막으로 본 한 달 전에는 당분간 못 온다고 통보하면서 통조림들과 과자들을 던지다시피 두고 갔었다. 왜 못 오는지는 물어봐도 답해 주지 않았다. 전화가 없으니 연락할 길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민형에게는 돈이 없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굴에서는 돈을 쓸 일이 없기에 얼마 되지 않은 돈이나마 유우가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유우가 오기를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 달 만에 온 유우는 오늘 아침에도 봤었던 사람처럼 민형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다. 이미 민형이 없는 생활에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컴퓨터 없는 게 제일 힘들어. 게임을 못 하니 세상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민형은 유우를 보자마자 어리광 부리듯 말했다. 네가 없는 게 제일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유우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낯설었다. 불로 만든 음식들을 주기적으로 배급해 주기는 했지만, 딱 그만큼의 역할만 하는 것 같았다. 둥글고 하얀 유우의 얼굴이 발그레했다. 단발머리는 어느덧 어깨를 넘은 길이로 자라 찰랑거렸다. 머리숱은 적었지만 따로 미용실을 가거나 관리하지 않아도 늘 머릿결이 좋았다. 민형은 길게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 꽁지머리로 묶인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유우는 말이 없었다. 고개를 비스듬히 숙일 뿐이었다. 


  간단한 영국식 식사를 함께하고 나면 공기가 답답하다면서 쌩하니 가 버리는 유우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바깥도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가 그다지 좋을 게 없어 보였는데도 유우는 밖으로 나갈 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으로 보아 미세먼지에 예민한 것 같지도 않았다. 자주 마주쳐서 얼굴만 알고 있는 택배 기사 같았다. 마주치면 인사 정도는 나누지만 택배를 전달하고 나면 할 일을 다 했으니 택배 기사는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다음 배달 장소로 이동할 뿐. 유우는 민형과 있어도 어느새 다음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식량 배급자 외에는 유우의 역할이 없다고 생각하니 슬퍼졌다. 유우를 더 가까이 느끼고 싶었다. 말 없는 것도 참기 힘들었다.


  민형은 손을 뻗어 유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유우가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약간 뺐다. 벽에 등이 닿았다. 유우는 민형의 손길에 놀란 자신에게 또 한 번 놀랐다. 그제야 자신이 오 년 이상 같이 살았던 민형을 처음 본 사람처럼 어색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그가 집이 아닌 굴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민형의 얼굴을 보았다. 다크서클이 짙었다. 미안했다. 같이 망한 인생을 민형이 홀로 책임지고 있는 것 같았다. 


  민형이 유우의 머리를 지나쳐 목과 어깨를 쓰다듬었다. 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 민형의 목과 어깨를 어루만졌다. 민형이 유우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유우는 민형의 목에 손을 둘렀다. 민형이 자신의 안에 들어왔을 때야 오늘이 위험한 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굴에 오면서 식량만 챙겼지 피임 도구를 챙기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민형이 음식 먹는 기계도 아닌데 말이다. 그 사실을 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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