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혜린 Aug 16.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4)

10 (1)

10 (1)






  민형은 공사장에서 실수로 떨어뜨린 벽돌을 맞았다고 생각했다. 툭, 소리와 함께 정수리를 비낀 왼쪽 머리에 충격이 있었다.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타고난 균형 감각으로 넘어지지 않고 제자리에 겨우 서 있을 수 있었다. 충격이 있던 곳에 망치로 때린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두개골이 뻐개지는 느낌이었다. 머리를 문질러 보았다. 오랫동안 이발하지 않아 잔뜩 길어 버린 더벅머리 사이로 혹이 튀어나와 있었다. 만질수록 혹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머리를 맞힌 뒤 바닥에 떨어진 덩어리를 보았다. 우박이라고 하기에는 색이 거무죽죽했다. 숯과 비슷했지만 속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였다. 얼음은 얼음인 모양이었다. 검은 우박은 석영처럼 빛나고 있었다. 크기도 어린아이 주먹만 했다. 지름이 5센티미터는 되어 보였다. 정수리에 맞았다면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제야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단 몇 센티미터의 차이가 생사를 가를 수도 있었다. 혹으로 끝난 걸 감사해야 했다.


  민형은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집었다. 주워 올리려다가 손이 떨려 한 번 놓쳤다. 다시 그것을 주워 들었을 때, 우박도 새로 떨어졌다. 첫 번째 우박을 자세히 살펴보기도 전이었다. 이번에 우박은 머리를 지나 왼쪽 어깨에 맞고 퉁겨 올랐다.


  “아!”


  감탄인지 아픔인지 모를 탄식이 터져 나왔다. 꽤 아팠다.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감쌌다. 그 바람에 오른손에 들려 있던 검은 비닐봉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비닐봉지 안에서 통조림들이 굴러 나왔다. 꽁치나 참치, 옥수수, 파인애플, 복숭아, 번데기 등의 통조림들이 경주하듯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통조림들을 필사적으로 좇았다. 시야에서 하나라도 빠져나갈까 봐 두려웠다. 그것들을 다시 안전한 곳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팔을 뻗었다. 어깨가 무너지는 것처럼 아팠다. 어깨를 돌려 보았다. 조금 뻐근하긴 했지만 어깨는 무사히 돌아갔다. 뼈가 부러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한동안 어깨를 문지르고 있을 때였다. 한 남자가 민형에게 다가왔다. 회색 점퍼를 입은 스포츠머리의 남자였다. 키가 크고 말랐지만 잔근육이 많아 전체적으로 다부진 느낌이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 피부도 그 느낌에 힘을 실어 주었다. 메밀눈의 남자는 허리를 굽혀 통조림들을 줍기 시작했다. 주운 통조림을 비닐봉지 안에 친절하게 넣어 주기까지 했다. 바닥에 있던 통조림들이 금세 제자리로 돌아갔다.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나도 저 통조림처럼 돌아가야 하는데.’


  4년 만의 귀환이었다. 그동안 굴에 단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쌍끌이 어선이라고도 불리는 대형기선저인망에서 갑판원으로 일했다. 주로 오징어를 잡았는데 그 수가 줄어 오징어는 점점 비싸졌다. ‘금오징어’라고 불릴 정도였다.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나, 하고 오징어를 잡으면서 의아할 때도 있었다. 오래전의 일이었지만 오징어회 정도는 가끔 입맛을 돋우기 위해 사 먹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선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잡은 오징어를 회나 무침으로 먹을 일이 없었다. 쪼가리 생선들만 먹었다. 민형의 입은 먹을 때 외에는 잘 열리지 않았다. 묵묵히 일하는 동안 다른 선원들의 대화만 엿들었다. 승선할 때마다 스무 명 조금 넘는 이들이 일 년 가까이 배 안에서 함께 먹고 자다 보니 입은 열지 않아도 귀는 열게 되었다. 그들의 입에서 가족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도 일단은 돈이 중요했다. 육지에서 쉴 때도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서울에 오지 않았다. 선원 일을 하면 목돈을 만질 수 있었다. 바다에서 일 년을 지내면 사천만 원이 넘는 돈을 벌 수 있었다. 육지에서는 정규직이 아닌 이상 벌어들이기 힘든 돈이었다. 원양 어선 쪽은 동남아 출신의 선원들이 많다고 해도 국내 어선 쪽은 일자리가 종종 있었다. 신용 불량자도 받아 주는 곳이었다.


  민형은 선원 모집 공고에서 ‘하려고 하는 마음과 의지가 강한 사람’, ‘신용불량자도 임금에 아무 불이익 없이 승선 가능’이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바로 지원했다. 면접 때 민형의 마른 몸과 흰 얼굴을 본 면접관이 고개를 저었지만 민형은 온 가족이 다 죽게 생겼다며 제발 일을 달라고 사정했다. 그 자리에서 팔굽혀 펴기를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해 보이기도 했다. 한 번에 팔굽혀 펴기를 백 개 가까이 한 건 처음이었다. 얼굴이 땀에 푹 젖고 팔이 후들거렸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합격자 중에 결원이 생겨 겨우 승선할 수 있었다.


  무단 이탈자나 중도 포기자가 많은 일이었지만 민형은 몸이 부서질 때까지 일해 재계약을 세 번이나 했다.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분의 목숨이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둘 중 한 사람의 몫으로는 더 많은 돈이 들어갈 터였다.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등본과 초본을 떼다가 조금 울기도 했다. 아내인 유우가 아무개로 성공하면 등본에서 이름이 지워질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실종된 지 5년이 지나 사망 선고를 받으면 서류상으로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아이도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아 호적에 없었다. 아직 이 세상에 있도록 허락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영의 존재였다.


  그런 유우와 아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돌아가야 했다. 돈도 모았으니 아이를 빨리 호적에 올려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가족으로 만들어야 했다. 신고 기간이 한참 지나 과태료를 물겠지만 상관없었다. 출생한 곳이 병원이 아닌 굴이라서 출생 증명을 하는 게 어려울지도 몰랐다. 유우와 아이를 만난 뒤에 생각해 보기로 했다. 상황만 정리되면 서류는 자연스럽게 뒤따라올 터였다.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이의 얼굴을 얼른 보고 싶었다. 그러니, 모습을 함부로 들키면 안 되었다.


  민형은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튀지 않게, 최소한 눈에 띄지 않게. 이것만 잘 지켜야 했다. 하필 모자나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아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다행히 남자는 민형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것 같지 않았다. 남자는 말없이 통조림들을 모두 주워서 비닐봉지에 넣은 뒤 민형에게 돌려주었다.


  민형은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런데, 어디 전쟁 났습니까? 피난 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해도, 맛대가리 없는 통조림을 왜 그렇게 많이 사셨는지 궁금하군요.”

  “아, 요리하는 것을 귀찮아해서요.”

  “이상하군요. 전자레인지 하나만 있으면 먹는 건 일도 아니죠. 건강식도 쉽게 먹을 수 있고. 요새는 도시락이나 반찬도 매일 다른 식단으로 배송해 주던데요. 불이나 전기가 없는 곳에 사시는 것처럼 구는군요. 원시인도 아니고.”


  남자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 순간 민형은 섬뜩해졌다. 남자에게서 멀어져야 했다. 재빨리 몸을 틀었다. 다리 쪽에서 비닐봉지가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치지직. 비닐봉지가 구겨지는 소리는 불이 났을 때 연기가 피어오르는 소리 같았다.


  민형이 남자에게 등을 보이자마자 남자가 민형의 등을 덮쳤다.


  ‘걸렸구나!’


  민형은 눈을 감았다. 남자의 힘은 민형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셌다. 뱃일을 하면서 근력도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위기의 순간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남자의 깍지 낀 두 손이 민형의 허리를 오랏줄처럼 묶고 있었다. 그 안에서 몸을 꿈틀거려 보았다. 그 순간에도 놓지 않은 비닐봉지가 흔들리는 소리만 들렸다. 차작, 차작. 우박이 떨어지는 소리일지도 몰랐다.


  남자는 민형의 허리를 잡은 채 옆으로 넘어졌다. 민형은 남자에게 깔린 자세로 고개만 옆으로 돌렸다. 방금 전까지 자신과 남자가 있던 자리에 검은 우박이 쏟아지고 있었다. 민형을 때렸던 검은 우박은 이제 바닥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장작이 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바닥에 떨어진 우박은 팝콘이 튀듯이 사방에 퍼지기 시작했다.


  최초의 블랙 헤일(Black hail)이었다.


  검은 우박들을 보자 민형은 우박을 맞고 죽은 사람의 뉴스를 본 일이 생각났다. 인도에 갔다 온 친구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도 연이어 떠올랐다. 인도에서 200g이나 되는 우박이 떨어져 수십 명이 죽었다고 했다. 살인 우박이나 다름없었다. 이보다 더 큰 덩어리가 떨어진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무조건 안전해야 했다. 자신의 몸은 자신의 것만이 아니었다. 집에 가는 길을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서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남자가 걸리적거렸다. 남자는 아직도 민형을 놓아주지 않았다. 남자의 표정이 보고 싶었다. 검은 우박을 보고 민형만큼 충격을 받았을지도 몰랐다. 마지막에 떨어진 블랙 헤일은 크기가 야구공만 했다. 블랙 헤일은 금세 그쳤다. 어디에 있었을지 모를 블랙 헤일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얼굴에 공포가 담긴 표정들이 떠올랐다. 바닥에 떨어진 블랙 헤일들을 보고 머리를 손으로 감싸기도 했다.


사람들은 민형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하늘을 한번 쳐다보더니, 곧바로 고개를 숙인 채 건물 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이상했다. 무성 흑백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사람이 아니라 종이 인형들 같았다.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히면 소리도 안 나온다던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민형의 입에서도 아직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민형은 몸을 비틀었다. 남자는 생각보다 쉽게 민형을 놓아주었다. 일어나자마자 비닐봉지를 찾았다. 아까 남자가 자신을 덮쳤을 때 놓친 비닐봉지는 하필 우박 가까이에 있었다. 그쪽으로 다가갔다.


  “위험합니다!”


  남자가 민형에게 외쳤지만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소중한 식량이었다. 먹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었다. 음식이 아니라 목숨을 주우러 가는 셈이었다. 비닐봉지를 집기 위해 허리를 굽히려고 할 때였다. 찰칵. 사진을 찍는 소리가 났다. 한 여자가 정면에서 민형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그 여자도 사진을 찍자마자 건물 쪽으로 도망갔다. 민형은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얼굴을 가리는 와중에도 다른 팔로 비닐봉지를 집었다. 한낱 민간인에 불과한 자신의 사진이 인터넷에 쓸데없이 퍼져 빚쟁이들이 그것을 보게 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도대체 왜 자신의 사진을 찍는지 알 수 없었다.


  민형은 비닐봉지를 손에 쥐자마자 뛰었다.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쪽을 파고들었다. 민형에게 떠밀린 사람들이 짜증을 냈다. 다행히 남자는 더 이상 민형을 쫓아오지 않았다.





이전 03화 장편 소설 <아무는 개>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