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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Aug 16.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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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형의 가족이 포함된 아무개의 거주지는 경기도와 서울의 경계선에 버려져 있는 터널이었다. 북부간선도로 교량 아래에 내려가야 터널의 입구를 겨우 볼 수 있었다. 입구의 팔십 프로 이상이 성인 남자 키를 넘는 잡초로 가려져 있었다. 터널로 가려면 길의 오십 프로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잡초들을 헤치고 들어가야 했다. 아무개의 입장에서는 천연 요새를 만들어 주는 잡초가 많을수록 좋았다.


  이 굴도 도시에 속하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도시 같지가 않았다. 굴에 사는 이들을 도시인들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따금 폐터널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이나 사진 동호회 사람들이 굴을 찾아왔지만 안까지 들어오지는 않았다. 멀리에서 입구만 찍은 뒤 돌아가곤 했다. 머리카락이 넘실대는 듯한 잡초밭을 굳이 건너가고 싶지 않은 데다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에 귀신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귀신이 예술이 잘되기를 도와준다면 또 모를까. 석 달 전에 근처에서 시체가 발견된 뒤에는 발걸음이 완전히 끊겼다.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고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다. 살인 사건을 무서워하지 않는 자들은 범인과 형사와 아무개들뿐이었다.


  그러니 터널 근처에 살아 있는 것도 아무개들뿐이었다. 사람 외에는 잡초 정도가 왕성한 생명력을 지니고 무성하게 자라났다. 더 이상 자랄 일이 없는 아무개들은 구석에 통조림과 생수를 쌓아 두고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그저 존재했다. 인기척을 내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들키면 허탕이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 때문에 항상 깔고 있는 덮개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엎드려 있을 때가 많았다. 숨소리 하나 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덮개라고 해 봤자 제대로 된 게 아니라 평소에 입었던 낡은 옷을 깔아 놓은 거였다.


  “너희 아빠가 오늘은 돌아오지 않을까?”


  오늘도 유우는 유우 2세에게 물었다. 아침마다 묻는 말이었다. 유일하게 자랄 일이 있는 아무개, 이제 세 살이 된 유우 2세는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배시시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물의 이름도 거의 몰랐다. 아빠라는 말을 하면서 꽁치 통조림을 가리키는 아이였다. 그것이 아빠가 바다에 나갔다는 사실을 상징할 정도로 아이가 똑똑하지는 않아 보였으니 반대로 아이가 둔하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유우는 항상 전자에 기대어 유우 2세를 똑똑한 아이로 만들곤 했다. 동굴에 있는 사물들은 한정되어 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애가 뭘 알겠어? 매일 그렇게 재촉하면 애도 진 빠져. 기다린다고 생각하고 기다리는 게 제일 힘 빠지는 일이여. 머리가 기다리지 않고 몸이 기다리게 만들어.”

  옆에서 꾸벅거리면서 조는 줄 알았던 남 노인이 한마디 했다.


  “어떻게요?”

  “기다리는 모습을 닮은 식물처럼, 온몸으로 기다리는 거지.”

  “그러니까 그게 뭐냐구요.”

  “사람, 성질 급하기는. 수양버들 알지?”

  “네, 호숫가에 많이 있는 거, 축축 늘어지는 거 말이지요?”

  “그래, 그거 말이야. 그런데 그 수양버들이 꼭 낚싯대를 닮지 않았나. 낚시한다는 게 뭐지? 낚싯대 드리우고 한없이 기다리는 거야. 꼭 뭘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낚시 자체를 즐기는 거지. 기다림을 기다린다고 해야 할까.”


  “멋진 말이네요!”

  옆에 있던 선희가 끼어들었다. 한때 동대문에서 옷을 팔았다고 했던 선희는 붙임성이 좋아 아무개가 된 뒤에도 언제나 웃는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건강해 보일 정도로 통통하고 혈색도 좋았다. 단단한 팔과 다리로 동대문에서 씩씩하게 장사했을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 웃는 인상인데 활짝 웃으면 하회탈 같았다.


  선희는 그렇게 인자한 친척의 얼굴로 팔다 남은 옷이라며 상태가 좋은 옷들을 거주인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남 노인과 유우도 감색 카디건을 하나씩 얻어 입고 동민도 검은색 티셔츠를 받았다. 유우 2세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굴 안에서는 쓰지 않아도 될 작은 모자 하나를 받았다. 턱 밑을 리본으로 묶을 수 있는 흰색 레이스 모자였다. 흰 원피스와 어울릴 것 같았다. 자신의 낡고 검은 티셔츠를 원피스처럼 입고 있는 유우 2세에게 유우는 미안해졌다. 유우 2세는 모자에 아직은 제대로 먹지도 못할 통조림들을 담으면서 내 거라고 자랑하곤 했다. 모자 안은 통조림 두 개만 들어가도 꽉 찼다. 유우 2세는 지금도 모자 안의 통조림들을 북을 치듯 두드리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남 노인은 유우 2세를 보고 잠깐 미소를 지은 뒤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수양버들도 물과 친하다고 하니 더 어울리지. 게다가 보기와 다르게 강한 식물이야. 어느 곳에서나 뿌리도 잘 내리고, 바람에도 잘 견디지. 수양버들처럼 견뎌. 겉은 부드럽고 속은 단단하게.”


  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굴 밖에서는 동민과 동민의 아내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동민의 아내인 조강은 동민의 배급자였다. 동민은 아무개가 되기 전에는 소설을 썼다고 했다. 십 년 넘게 소설을 세상에 내보내지 못했고 그야말로 내내 습작생이라 동민과 조강이 같이 운영했던 카페로 생계를 유지했다. 테이블이 세 개밖에 없는 작은 카페였다. 그것도 최근에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용 커피를 싸게 파는 바람에 망했다. 이천 원 이하로 파는 대용량 커피를 이길 수 없었다.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동민과 조강은 한강 다리로 갔다. 함께 뛰어내리려고 난간을 짚은 순간, 바람개비처럼 만든 난간이 돌아가면서 둘 다 앞으로 넘어졌다. 두 사람은 엎어진 자세로 울다가 웃었다. 돌아가는 난간은 강물 쪽에만 설치되어 있어 강물 옆 땅에 뛰어내리면 될 일이었지만 그쪽 난간으로는 가지 않았다. 여지없는 죽음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준비가 덜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덜 준비했으니 그만큼의 몫으로서 반쪽만 살아 보기로 했다. 그래서 택한 게 아무개였다. 동민이 아무개가 되고 조강은 찜질방에서 자면서 동민이 공식적으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강이 동민에게 날카로운 소리로 외쳤다.

  “어제, 밖에 나갔었어?”

  동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강이 또다시 외쳤다.

  “내가 오늘 온다고 했잖아! 며칠만 더 참으면 되는데 도대체 왜?”

  찜질방에서 막 감고 나온 듯한 머리가 바람에 날리면서 상쾌한 샴푸 향이 동민에게 끼쳤다. 밝은 갈색의 생머리가 흔들리는 갈대처럼 나부꼈다.

  “……숨이 막힐 것 같아 일 분도 참을 수가 없었어. 잠깐이라도 숨을 제대로 쉬고 싶었다고.”

  “자기가 애야? 그 잠깐도 못 참게. 밖에 나가고 싶어 떼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빨리 포기할 정도로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어? 자기도 이 일을 하는 데 동의했잖아.”

  조강의 표정은 밀랍 인형 같았다. 핏기가 가신 얼굴이었다. 조강은 떨리는 손으로 음식들이 든 종이봉투를 꺼냈다. 그 순간 조강의 휴대폰이 울렸다.


  “……동의했다고 해서 일이 전부 쉬워지는 건 아니잖아.”

  동민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이렌 소리와 비슷한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에 동민의 말은 묻혀 사라졌다. 조강은 전화벨보다 더 큰 소리로 통화했다. 상대방의 목소리도 조강 못지않게 컸다.

  “민자는 하여튼 늘 요란하다니까. 시커먼 우박 몇 개 떨어진 것 가지고 뭘 그렇게 난리야.”

  조강이 짜증을 내면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눈썹을 추켜세웠다. 살이 없는 이마에 주름살이 깊게 팼다.

  동민은 스피커의 음량을 최저로 낮춘 것처럼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생겼어?”

  “우리의 사명과는 상관없는 일이야.”

  “사명이라기엔 너무 거창한걸……. 그냥 우린, 남들처럼 살고 싶을 뿐이잖아.”

  “그 정도의 각오는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지금 우리가 벼랑 끝에 있다는 걸 잊었어? 찜질방 전전하는 것도 지겨워. 자기가 밖에 나간 것 때문에 모든 걸 망칠 뻔했어.”


  “나라고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겠어? 하지만 제대로 살기도 전에 죽을 지경이야. 자기가 처음에 뭐라고 했어? 절에 틀어박힌 심정으로 굴 안에서 소설 하나 제대로 써 보라고 했지. 나도 그러려고 했어. 하지만 너무 답답해. 일단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야 뭐라도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지금 상황에서는 글을 단 한 줄도 쓸 수 없어. 먹고 싶은 것만 잔뜩 생각난단 말이야. 술 한 잔이 간절하고. 갓 튀긴 치킨을 안주로 시원한 생맥주 한 잔만 마셨으면 소원이 없겠어.”

  “팔자 편한 소리 하네. 누구는 뭐 편한 줄 알아? 찜질방에서 자는 것도 얼마나 불편한데. 다음 날 온몸이 다 쑤셔. 그리고 자기가 맥주 한 잔으로 끝날 것 같아? 알코올 중독 직전까지 갔으면서.”

  “…….”

  “게다가 굴에 애도 있다면서 술을 마시겠다는 거야?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럼 자기는 자기가 아닌 내가 굴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거야?”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그럼 다 같이 죽자는 거야?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약 먹고 함께 저세상 가자고? 연탄불이라도 피워? 아님 한강 물에라도 뛰어들까?”

  “왜 그렇게 매사에 항상 극단적이야? 그냥 푸념 정도로 생각하고 들어 주면 안 되는 거야? 그 정도의 아량도 못 베풀어? 내가 뭐 엄청난 걸 요구한 거야?”

  “그러게, 누가 말도 없이 나가래? 자기가 자초한 거야.”

  “나 혼자 재산 거덜 낸 거야? 사업은 나 혼자 망했어? 사업도 같이 했으니 망한 것도 엄연히 공동 책임이지.”

  “몰라, 난 죽어도 굴 안에서는 못 살아!”


  조강의 외침을 끝으로 점점 멀어지는 구두 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쿵. 첫 번째 소리는 조강이 종이봉투를 바닥에 던지는 소리였다. 마른 몸으로 낸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소리였다.


  눅어 가는 햇빛을 배경으로 동민이 굴 안에 들어왔다. 어깨가 처져 있고 형편없이 구겨진 종이봉투를 세게 껴안은 채였다. 유우 2세가 그런 동민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유우 2세의 입가에 볼우물이 팼다. 유우 2세와 눈이 마주친 동민은 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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