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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Aug 16.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3)

목차 / 프롤로그


목차 

         

프롤로그

10

-1

9

8

7

6

5

4

3

2

1

0

에필로그





프롤로그






  엄마는 굴에 사는 아무개였다.


  아무개에게서 내가 태어났을 때 배 속만큼이나 어둡고, 좁고, 테두리가 둥근 그 굴은 나를 불안하게 품어 주었다. 나는 태어난 뒤에도 한참 뜸을 들인 뒤 울었다고 했다. 울 수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일지도 모른다. 눈물이, 새로운 세상의 문을 밀고 나간 뒤 비로소 터지는 낯선 감각이 고일 새가 없었다. 익숙함 뒤에 익숙함이 따라와 그저 어리둥절했을지도. 굴 안에 열 달 동안 있었는데 나온 뒤에도 굴이었으니 세상의 빛을 느낄 틈이 없었다.


  굴 안에는 나를 씻길 따뜻한 물조차 없었다. 1.5리터짜리 생수가 두 병 있었지만 불이 없어 목욕물은 사치였다. 요새 집마다 있는 인덕션은 물론이고 가스버너 하나 놓을 수 없었다. 불이 있어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사람 사는 느낌을 주었으니. 인기척을 최대한 없애야 했다. 살아 있다는 기운을 퍼트려서는 안 되었다. 통조림이 주식이 된 지 오래였다. 가장 오래 둘 수 있으면서 먹는 시간을 가장 적게 들일 수 있는 간편식이었다.


  미역국 하나 얻어먹지 못한 엄마의 얼굴은 푸석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굴 안에는 나와 엄마뿐이었다. 아빠는 굴에서 나가 바다로 간 지 오래였다. 막막해진 엄마는 눈물만 내처 흘렸다. 엄마의 눈물은 뜨거웠다. 뜨거운 눈물이 내 몸을 씻어 주었다. 엄마는 쉴 새 없이 울면서, 내 몸에 떨어진 눈물들을 손바닥에 비벼 내 몸을 닦아 주었다. 눈물이 내 몸속으로 스며들어 손바닥이 마르면 두 손바닥을 비벼서 열을 내기도 했다. 몸이 따뜻해지자 내 속에서도 울음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물이 그치는 것과 동시에 나도 우렁찬 울음을 터뜨렸다. 내 울음이 반사된 벽들이 소리 없이 울리는 듯했다.


  - 아무개 하나 추가되었구먼.


  굴에 돌아오자마자 새로운 냄새를 맡은 남 노인이 나를 보고 한 말이었다. 남 노인은 우리와 함께 굴에 사는 세 명의 거주인 중 한 명이었다. 남 노인은 뒤이어 내 냄새가 갯내를 닮았다고 했다. 바다에 나간 아빠의 냄새였다. 아빠와 최초로 닮았던 부분이 냄새였던 셈이었다. 가장 넓은 눈물의 맛과 향이었을 바다를 처음으로 본 건 그보다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남 노인의 말에 엄마는 대차게 외쳤다. 


  - 저 아이는 아무개로 키우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내 태생이 아무개라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곳은 나의 고향이었다. 지금은 막혀 버린 나의 고향. 고향에서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는 남 노인이 가르쳐 주었다. 내가 태어난 날 생일 축하 노래 대신 불렀다던 그 노래, 축하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그 노래를 말이다. 


  내 울음이 잠깐 그친 사이를 틈타 남 노인은 코를 두어 번 킁킁거리더니, 앞니가 다 빠진 입을 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굴에 사는 개, 아무개

  굴은 넓지도 깊지도 않아

  개는 귀엽지도 무섭지도 않지

  아무개는 개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야



  내 얼굴에 가까이 와서 노래하는 바람에 헐거워진 입에서 나오는 침이 그대로 내 얼굴에 튀었다. 그 침을 맞은 나는 더 크게 울었다.


  - 그놈 참, 울음소리 한번 크네. 더 큰 세상을 호령할 만해. 여기에서 썩긴 아까워.


  내가 여자애인 줄 알고도 그렇게 말하는 남 노인의 말에 엄마는 미소를 지었다. 그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이 묻어나 있었다. 남은 두 명의 거주인도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선희 이모는 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귀한 황도 통조림을 기꺼이 내주었다. 오랫동안 기침이 멎지 않았던 선희 이모였지만 잇몸까지 다 보일 정도로 활짝 웃는 동안에는 기침하지 않았다. 동민 아저씨도 아껴 두었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내놓았다. 늘 굳어 있던 얼굴이라 그때도 표정은 없었지만 속으로는 기뻤을 것이다. 이 정도면 축복받은 탄생이라고 할 만했다. 


  아빠는 내가 이곳에서 세 해를 지내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첫 번째 아무개였던 아빠의 이름은 이민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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