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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니 Jun 19. 2023

프리랜서 시작하려고 하는데 뭘 해야 하죠?

첫 일 물꼬 틀기


계획에는 늘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애매하지만 잔기술이 많은 사람에게 작은 기업은 애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마케팅은 다 알아야 한다'는 대표님의 모토 덕에 애매한 재능은 시너지를 발하게 되었고, 일은 일대로 늘어나는 건 기본, 대부분의 부서 회의에 껴있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 (가끔씩 연구실 (혼내는) 회의에 앉아 있다 영혼이 탈곡되기도 하고, 연구실 회의에 같이 있다가 매출 안 나온다고 혼나기도 했는데 퇴사 직전쯤 되니 이 쓸모없는 회의에 대한 회의감이 극에 달했다.)



뭐든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라고, 덕분인지 때문인지 모를 기회들로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이것저것 손대다 보니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지, 어떤 일이 스트레스가 심한지, 어떤 환경이 일의 능률을 올리는 지도 알게 되더라.



그 당시 걸쳐 있던 분야는 마케팅 - 디자인. 둘을 넘나 들다 보니 브랜드의 A-Z를 꾸려볼 수 있는 브랜드 디자인에 관심이 갔다. 회사로 돌아가지 않을 선택지를 만들던 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부족한 경험을 메꾸기 위해 지역 내 몇 군데 있는 에이전시에 지원해 볼까도 생각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가는 중, 일단 도전해보자 싶어 강의 들으며 포폴 준비를 하기로 결정! '인풋도 중요하지!' 외치며 브랜딩 잘 됐다고 하는 '힙'한 브랜드를 방문하기 위해 가벼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가고자 하는 길을 위해 정진하고 있던 때, 

계획과는 무관한 일이 들어왔다.    





내가 자주 하던 것에 힌트가 있었다


첫 고객은 친구 S. 창업한 회사의 슬로건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회사의 방향, 가치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눈 끝에 한 문장을 전달해 주었다. 다행히도 한 줄이 친구 마음에 와닿은 모양이었다. 곧이어 '띵!' 통장 알림 소리가 들렸다. '들리면 안 될 소리가?!' 빠져나갈 돈만 많은 통장의 외침이라 화들짝 놀라 폰을 열었다. 

출금 아닌 입금 문자였다.

'돈이 들어왔어? 이렇게 돈을 벌어도 되는 걸까?' 무척 얼떨떨했다. 

낯 뜨거워 사양함에도 챙겨주는 친구 덕에 회사 밖에서 '글'로 첫 수익을 얻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직은 직장인 시절, 친구 S가 열 스마트 스토어를 떠올리며 상품 아이디어를 마구 쏟아내던 날이 있었다. 공원에 앉아 말장난을 하며 친구와 도란도란 여러 문장을 주거니 받거니 던져댔다. 



그저 재미있게 던진 말이었는데 그 말 중 하나가 선택됐다. 상점명과 제법 어울리는 슬로건이라고. 

재미있는 건 이 이상한 스타트가 회사 슬로건으로 이어지며 '일'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아이디어를 언어화하는 작업은 즐거웠다. 블로그에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상황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심하며 적는 것이 내겐 꽤나 익숙했다. 전 직장에서도 주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했기도 했고. 홍보 카피 쓰고, 기업 소개하고, 광고 콘티 짜고, 제품 광고 카피를 맡곤 했는데 일에서나 생활에서나 비슷한 활동이었기에 그게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남들이 나에게 요청하는 일


내겐 재주가 없는데 뭘 해야 하나 고민 끝에 흥미 있던 디자인을 선택했다. 새롭게 전문성을 가지고 일해보자 싶어서 선택한 길.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디자이너의 길이 아닌 글을 녹여내는 길이 열렸다.

주로 하던 일이었음에도 나는 이 일이 프리랜서로써 살아갈 일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어쩌다 시작된 일을 받아 들며 그제야 '남들이 내게 무엇을 요청하는지 살펴보라'라고 했던 말이 똑바로 들렸다. 



내 모습을 보려면 타인이라는 거울이 필요한 것 같다. 나에게 당연한 것은 내게 보이지 않기에 내겐 당연하고 쉬운 일들이 어떤 사람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려면 '비교'가 필요하다. 



아직까지도 글이 돈이 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이 무척 낯설다. 나의 '일'을 '일'로서 제대로 대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분명 며칠씩 고민하며 단어와 씨름해도 '이렇게 돈 벌어도 되는 거야?' 하는 의문이 계속 떠오르며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미안함이 든다. 



지금은 나의 노동시간에 대한 답례라 생각하기로 하고 미안함을 삼킨다. 사실 이것도 '나는 왜 미안함을 느끼는가'에 열심히 고민한 후 나온 답변이다. 나름 외부와 내부의 극적 타협이랄까.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심각하고 떨린다. 시작에 선 사람들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내게 당연한 일이 돈이 되기도 한다. 내 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다른 이상한 비교 말고 남들보다 내가 쉽게 하는 것, 내게 남들이 요청하는 것을 비교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독립을 하며 알게 된 가장 큰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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