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고비
처음이라는 고비
살만했다. 그동안은 그러니까. 딱히 어딜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책상 앞에 앉아 업무만 보면 됐으니 내 몸을 건사하는 덴 큰 어려움이 없었다.
옷들이 점차 짧거나 길거나, 딱 달라붙거나 오버핏으로 나오는 등
극단적 시장 상황에 처해서야 '운동을 해야겠구나' 생각을 했다.
배 시려 보이는 상의를 보며 적어도 뱃살이 접히지 않으면 시도해 보자 싶어
생애 첫 다이어트 계획을 짜게 되었다.
근육은 없지만 든든한 뼈의 힘으로 살아온 나날.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책상 밑에서
나날이 듬직해져 가는 하체와
스마트폰 보느라 거의 접힌 채 살던 팔뚝에 어느 날 옆 날개가 생겼다.
심지어 조금만 움직이면 기분 나쁘게 푸드덕거리니 여간 자극적인 게 아니었다.
살이 안 찌는 체질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이가 찰 때마다 함께 발맞춰 비례하듯 증가하던 몸무게는
이제는 지수 함수 그래프처럼 무지막지하게 증식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다이어트해야지'란 목표로 운동을 하기도 했다.
며칠의 몸부림으로 막을 내렸지만.
본격적으로 운동을 실행으로 옮긴 건 정작 다른 이유였다.
열과 성을 다해 놀겠다고 새벽같이 준비해서 서울로 떠났건만
말도 안 되는 시간에 체력이 동나 버리고 만 것.
기껏해야 3-4시였는데 집이 그리워졌다니
이건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덜 논 것도 억울한데 외출의 여파는 며칠이나 지속됐다.
놀면 얼마나 놀았다고 며칠을 누워서 떨어진 에너지를 채우느라 고군분투.
그날의 외출이 무려 2,3일 치의 체력을 끌어다 쓴 것임을 인지한 후에서야
사태의 심각함을 느끼고야 말았다.
2층을 올랐을 뿐인데 뻐근해진 허벅지와 가슴을 차고 나오는 가쁜 숨으로 알았다.
내 몸은 더 이상 나와 편하게 살자는 암묵적 약속 따위에 더 이상 협력할 생각이 없음을.
좀비 세상이 오면 나는 바로 물리겠지. 그렇담 좀비들에 편향해 걱정 없이 함께 살리라.
그랬는데... 그전까진(?) 살 순 있겠니 하는 비웃음 어린 몸의 반응은 직격타였다.
진짜 살기 위한 운동을 시작해야 했다.
3번의 헬스 시도는 헬스장 기부 천사로 막을 내렸고,
하고 싶던 테니스는 내 예상 보다 가격의 허들에 막혀 포기했다.
그나마 둘이서 하면 괜찮을 것 같았던 '복싱'.
나름 '꼬마돌'로 유명한 단단한 뼈력에 괜찮겠다 싶어 시도해 보기로 했다.
어찌 됐든 거의 죽어가는 체력을 살려 보잔 차원에서.
첫날은 핸드랩을 감는 것부터 시작했다.
친절한 코치님 덕분에 잘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2일 차 다시 감으려고 하니 다 까먹었더라.
생각보다 붕대가 길어서 손목에 여러 번 감았는데
양 조절은 가뿐히 실패.
아무튼 손목은 든든히 감아놔서 그대로 진행했다.
역시 주먹은 블랙이지.
시크한 블랙으로 백 글러브 선택.
사실은 때가 덜 탄다는 나름의 실용적(?)인 이유로 골랐다.
무난하잖아.
스트레칭, 줄넘기, 스텝 연습까지 험난했다.
아직 두 번째라 그런가.
줄넘기만 뛰어도 힘들었다.
힘듦에 아픔은 덤.
줄넘기에 계속 맞아서 팔뚝만 채찍질당한 것 마냥 부풀어 올랐다.
그래. 여기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문제는 스텝.
서는 자세부터 불편하더니만 가볍게 제자리 뛰는 것부터 종아리에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
앞발, 뒷발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내 다리들은 몹시도 독립적이었다.
어쩜 갓 태어난 송아지 같지,
뭐가 잘못된 건지 어찌 보면 칼춤 추는 망나니 같기도 했다.
거울 앞 쫑쫑쫑 뛰는 내 모습을 보는 건 정말이지 극강의 수치심을 몰고 왔다.
'어떻게 발이 같이 움직이나요?'
라는 질문은 조금 이상한 질문이었나 보다.
그럼에도 친절하신 코치님은 다시금 친절히 시범을 보여주셨다.
감사한 것과 몸이 따르는 건 별개의 문제.
지친 송아지가 되어 운동을 마쳤다.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
특히 종아리는 멀쩡했던 걸음걸이를 절뚝이게 만들었다.
걷는 게 이리도 고통스러울 줄이야.
풀어준다고 고통을 무릅쓰고 종아리에 땅콩볼로 그렇게 밀어댔건만
단단히 삐친 근육들은 좀처럼 화를 풀지 않았다.
하루만 쉬면 될 줄 알았지. 이틀이 지나도 종아리에 자리 잡은 알들은 나갈 기미가 안 보였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무릎이 접히긴 해서 다시 복싱장으로 돌아갔다.
이틀차 스텝은 지옥맛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근육들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한 번 뛰고 종아리 쥐고,
한 번 뛰고 종아리 쥐고를 반복하다가 끝끝내 항복하고야 말았다.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는 나의 사정을 봐준 덕분에
스텝 없이 주먹만 쓸 수 있었는데
근데 말입니다. 또 놓친 게 있었어요.
다행이다 싶었고, 그나마 이건 되겠지 싶었던 주먹질.
(잽 아니고 내가 한 건 거의 주먹질에 가까웠다.)
그마저도 힘들다는 것이었다.
팔뚝에 근육은커녕 지방이들만 존재한다는 걸 잊고 있었던 것.
비로소 알았다. 내 팔이 이렇게 무거운 존재였구나.
30초가 너무 길었다.
'느려지면 안 돼!', '스탭도 안 하는데 이건 빨리해야지!'
라며 코치님이 소리친 것 같았는데.
죄송하게도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종은 언제 치는지 이 악물고 있었던 상태라
거의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오랜만에 맛본 극강의 수치 레벨에 나는 움츠러들었다.
어딘가 숨고 싶고, 말을 따르지 않는 내 몸에 충격과 부끄러움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함께 한 친구는 에너자이저 그 자체였는데 너무 부럽다 못해 자괴감이 들 지경.
나는 왜 이리 엉망인가.
진득이 눌어붙은 기분 나쁨에 휩싸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선
무엇이 문제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문득 나의 목표, 시작한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아, 그래. 내 목표는 '누구보다 더 잘하기'가 아니었다.
'인정받기'도 아니었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훈련하는 것.
단 하나. 나의 목표는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위해 더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이리 쭈뼛거리는 걸까.
아, 또다시 찾아온 '완벽주의' 녀석 때문이구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배우는 과정은 누구나 엉성할 텐데.
나는 나에게 꽤 고된 기준을 쥐여주고 있었다.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목표'.
그리고 '처음'이라는 사실.
종종 어느 환경에 들어서면 이상하리만치 잊게 된다.
나에게로 집중됐던 시선이 바깥으로 퍼지는 순간이 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단 자만이 찾아오기도,
누구보단 나아야 한다는 비교 의식이 찾아오기도,
잘 보이고 싶단 인정 욕구가 미친 듯이 쏟아 오르기도 한다.
때때로 나를 괴롭히는 건 '나'다.
언제부터인진 모르겠지만
뭔가에 문제가 있으면 일단 멈춰서 나를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감정적으로 꼬였을 때.
예전이었으면 부끄러워하며 금방 그만뒀을지도 모르겠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내면에서 엉겨 붙어 싸우던 감정들을 못 본 체
'이 운동은 나랑 맞지 않아' 금세 재단해 버리고 끝끝내 멀어졌을 테지.
지금은 좀 더 나아졌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적어도 뭐가 문제인지는 파악이 되니까.
부끄럽다고 움츠러들어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
무엇보다 나를 위해, 나의 목표를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내 생각과 감정과 좀 더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며칠 전만큼 자괴감이 들지 않았다.
아프지만 덩실덩실 스텝도 뛰고,
뻣뻣한 몸이라 리듬 사이로 삐걱삐걱 움직이지만
뭐, 처음이니까.
'처음'은 조금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그냥 신나게 삐거덕 거려보자.
나름 웃음 치료 아닌가.
헤실한 웃음을 지으며 움직여보자.
그나저나
절뚝이는 다리는 언제 풀릴까.
덤으로 건장해진 어깨는 어떻게 풀지.
아무래도 처음이 좀 길어질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