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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드라마 Oct 23. 2023

 친정집이 살아났다

엄마가 집으로 가셨다

2023년 6월 1일에 엄마는 당신의 집으로 가셨다. 잘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친정집 마당에 피어있는 개망초, 어릴때 계란꽂이라 불렀었다.


지난 5월 21일 엄마는 갑자기 고열로 인한 오한으로 응급실에 가게 됐다. 최대한 빠른 진료가 가능한 응급실을 찾아 병원을 세 군대나 옮겨 다녔다. 엄마는 세 번째로 찾아간 병원에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엄마는 고열로 몸에 경련이 오는지 오들오들 떨었고 힘들어했다. 수액을 맞자  엄마는 진정되셨다. 엄마는 몇 가지 검사를 했다. 의사는 요로감염과 염증으로 갑자기 당수치까지 높아진 상황이라고 했다.

"누워서 생활하시는 할머니들께서 요로감염에 잘 걸리십니다. 염증수치가 높아서 동맥으로 들어가는 항생제를 써야 합니다."

의사는 염증수치를 낮춰야 하니 입원을 권고했다.  문제는 입원을 하면 보호자가 병원 밖을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입원에 기댈 수 있는 건 전에 엄마를 간호해 주던 이모님뿐이었다. 간병인 이모님께 전화를 했다. 또 전화할 일이 없길 바랐는데, 전에 이모님과 헤어질 때 연락하라던 그 말이 데자뷔가 된 듯하다.

 연락하라던 그 이모님은 다른 환자를 간병 중이라고 했다. 언니와 난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간병인을 구할 수 있었다.

엄마는 입원하셨던 5일 동안 열심히 치료받고 괜찮아져 엄마의 생신 전날 퇴원하셨다. 언니들과 난 예약했던 한정식집도 취소하고 집에서 간소하게 생신상을 차려드리기로 했다. 언니는 엄마의 기분을 전환시키자며 굴비용돈을 만들고 나는 수제케이크를 맞췄다. 직장인인 조카들도 할머니께 용돈도 드리며 모두들 엄마가 기쁘기를 바랐다. 엄마의 퇴원축하 겸 생신축하는 기분 좋게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엄마의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샤워를 하고 창문을 열어놓고 주무시더니, 그것이 문제였을까. 한여름인데도 엄마는 신생아처럼 보살펴야 했었다.

 입원했던 병원에 다시 전화를 하고 엄마의 증상을 말하니 담당의사는 진료를 오라고 했다. 대체공휴일이었는데 오전진료가 가능하단다. 

엄마는  입원을 원하셨다. 입원을 싫어하던 엄마가 스스로 입원을 한다니 언니와 나는 놀라고 얼마나 아프면 또 입원을 하신다 할까 생각이 됐다. 입원절차에 따라 엄마는 코로나 PCR검사를 했다. 30분 후 결과가 문자로 왔다. 예상을 빗나갔다. 코로나 양성이었다.

가족 중  코로나 확진자는 없었다. 언니와 나도 서둘러 검사를 했고 언니만 양성이었다. 그리하여 언니와 엄마는 동반입원을 했고, 언니는 처음으로 코로나에 감염되어 고생을 하면서도  엄마를 간호해야 했다. 간병인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언니의 확진이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이 일은 두고두고 웃기고 슬프다며 언니와 얘기하곤 한다.


 두 차례의 입원과 퇴원을 하고, 엄마는 엄마의 집으로 돌아가셨다. 따뜻한 밥 한 끼, 감사했다는 말도 전하지 못하고 급작스레 엄마를 시골집으로 떠민 것 같아 죄송했다.

언니는 혹시 코로나가 우리 아이들에게 옮길지 모른다며 이 기회에 엄마를 시골집으로 모시자고 했고 나는 말없이 그 뜻을 따랐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던 엄마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 마음이 죄책감으로 변해가고 있다. 더 큰 죄책감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보자' 마음먹었다.

엄마의 항아리에 아직도 고추장이 있었다

시간 내어 주중에 두 번 친정집에 간다.

 "엄마, 나왔어"

예전처럼 크게 엄마를 부르며 현관문을 연다. 여전히 엄마의 목욕을 돕고, 머리를 말려드린 후 함께 점심을 먹는다. 엄마는 시골집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밥을 맛있게 드신다. 


 4년 동안 사라졌던 그리웠던 친정집이 다시 살아나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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