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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가주 Nov 02. 2022

여름날의 손

 대개 그렇듯이 입사 한 회사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곳이었다. 한 여름 뜨거운 태양의 열기보다 컴퓨터가 내뿜는 열이 더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살인적인 업무의 연속이었다. 긴 시간을 힘겹게 버티었지만 결국 나는 지쳐버렸다. 더운 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평일 어느 날 나는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짐을 챙겨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은 외롭고 쓸쓸했다. 낙오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내 몸 전체를 휘감았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이 끼어들 틈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패잔병과 같은 심정으로 침대 위에서 천장만을 바라보며 며칠을 보내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회사에 적응은 잘하고 있냐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안부 전화에 나는 신입이라 그런지 일이 많아 정신이 없다는 거짓말로 어머니의 불안을 예방했다. 아버지 생신이 이번 주말이니 바빠도 시간을 내서 집으로 내려오라고 하셨다. 통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쥔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손바닥은 어느새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잔인한 주말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나는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모임 장소는 일찍 결혼을 해서 아들을 벌써 두 명이나 낳아 양가 부모님의 사랑을 가득 받고 있는 여동생의 집이었다. 동생 가족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체질적으로 유난히 땀이 많은 나였지만, 퇴사 사실을 숨긴 채 아버지를 만나니 손의 땀은 마르지 않았고 마음도 불편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의 나의 일상을 거짓으로 꾸며내야 한다는 죄책감에 베란다로 도망치듯 빠져나와 창을 열고 바람을 쐬고 있었다.


 어두운 밤 하늘만큼이나 가늠할 수 없는 나의 내일이 갑갑했다. 1인분의 삶조차 책임지지 못하고 버거워하는 내가 한심스럽다 못해 원망스러웠다. 그때 누군가 나의 손을 잡았다. 이제 5살이 된 조카였다. 땀이 많아 다들 불쾌해하는 나의 손을 새하얗고 통통한 손으로 꼭 잡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녀석은 삼촌과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고 싶다고 했다. 그 모습이 고마워 정말 오랜만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매제가 와서 삼촌 말고 아빠와 가는 게 어떠냐며 조심스레 물었지만, 조카는 삼촌과 가겠다며 한사코 떼를 부리며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거실 TV에서는 유례없는 폭염이라며 더위에 대비하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 볕이 내리쬐는 폭염의 날씨에도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처럼 작고 새하얀 손은 그렇게 말없이 선선한 위로를 나에게 건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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