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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가주 Nov 02. 2022

인생은 한 갑의 성냥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고


먼 길을 운전할 때면 팟캐스트를 듣는다. 유일하게 듣는 팟캐스트 방송이 ‘이동진의 빨간책방’ 이다. 몇 년 전 부산에 갈 일이 있어 어김없이 팟캐스트를 켰다. 여러 에피소드 중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다루는 방송을 들었다. 평소 기억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작가인 모디아노도 기억이라는 테마로 대부분의 책을 썼다고 하니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부산을 다녀와서 여러 가지 처리해야 될 것들이 많아서 책을 사서 바로 읽지는 못하고 서재에 꽂아 두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잊고 살다가 며칠 전 서재에서 이 책을 보고 그날의 호기심이 되살아 나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의 분량이 많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을 거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하지만 책을 읽어 가면서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 들었고, 다 읽은 후에는 미지의 생명체가 내뱉은 하얀 안개가 주변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보이지 않는 허공에 팔을 허우적대며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주된 내용은 기억을 잃은 주인공 ‘기 롤랑’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가며 겪는 이야기이다. 사설탐정인 그는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과거를 추적해 나가지만 정확한 자신의 과거를 찾지 못한 채 이야기는 모호하게 끝을 맺는다. 기존의 추리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책에 대해 분명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과거를 정확히 보여주지 않고 주위를 빙글빙글 돌다 끝나는 이 형식이야말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 24명의 피실험자들이 있다. 그들이 직접 겪었던 추억 세 가지와 그들이 쇼핑몰에서 길을 잃었다는 가짜 기억 한 가지를 적은 작은 소책자를 준비한다. 피실험자들은 그 소책자를 읽은 후 자신들은 유년 시절에 추억을 얘기하며 쇼핑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것도 아주 생생하게. 이건 ‘쇼핑몰에서 길을 잃다’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이다.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 대해 믿음이 있지만, 인간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염되기도 하고 재해석 되기도 한다. 기억이라는 것은 어떤 시점이나 상황에서 불러오느냐에 따라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변형이 일어난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정확해지고 점점 모호해진다. 하지만 이것은 비극이 아니다. 단지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변화를 요구 할 뿐이다. 기억은 절대적인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오히려 가벼워질 수 있다. 지금의 현재는 미래에 과거가 된다. 과거가 되어버린 지금의 현재는 미래에서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미래에는 똑같이 다시 느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현재를 정확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이니 지금을 충실히 느끼고 살아야 된다. 과거는 모호하고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니,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집착은 아무 의미도 없는 헛된 발버둥에 지나지 않는다.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었다. 그들은 어느 날 무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린다. 미의 여왕들, 멋쟁이 바람둥이들, 나비들.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위트는 ‘해변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한 인간을 그 예로 들어 보이곤 했다. 그 남자는 사십 년 동안이나 바닷가나 수영장 가에서 여름 피서객들과 할 일 없는 부자들과 한담을 나누며 보냈다. 수천수만 장의 바캉스 사진들 뒤쪽 한구석에 서서 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룹 저 너머에 수영복을 입은 채 찍혀 있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왜 그가 그곳에 사진 찍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어느 날 문득 사진들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나는 위트에게 감히 그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해변의 사나이’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하기야 그 말을 위트에게 했다 해도 그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해변의 사나이’들이며 ‘모래는 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고 위트는 늘 말하곤 했다.


주인공은 자신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들은 세월이 지난 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하고 때론 잘못 알아보기도 한다. 우리는 타인에게 얼마나 쉽게 잊힐 수 있는가. 위에 인용한 문구처럼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해변의 사나이’다. 타인의 삶에 들어가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만들지만 결국 우리는 그들에게 작은 파도에도 없어져 버릴 해변 위의 발자국일 뿐인 것이다.
 
 나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기억은 정확한 과거를 매 순간 상기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에게 잠깐의 흔적만 남기고 사라 질 뿐이다.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를 증명할 수 없고, 누군가에게도 그저 스쳐가는 옅은 바람인 것이다.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깊게 각인될 수 없는 인생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쓸쓸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느끼고 만끽하면서 인생을 가볍게 대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삶을 무겁고 진지한 태도로 대해 왔지만, 이제는 힘을 빼고 사뿐거리며 봄날의 발레리나처럼 남은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비록 철이 없다며 손가락질 받는다 하더라도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치진 않겠다.


일본의 작가 류노스케의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인생은 한 갑의 성냥과 같다. 귀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위험하다. 하지만 귀중하게만 다루는 것은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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