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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Jun 24. 2022

버릇

지랄머리 찾기


나는 두 가지 안 좋은 버릇을 갖고 있다. 하나는 머리카락을 뽑는 것 그리고 입술을 뜯는 것이다. 이 행동들은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느꼈을 때 즉각 나타나는데, 머리카락을 뽑는 버릇이 조금 더 심하고 외상에 치명적이다.


머리카락을 뽑는 버릇에도 나름 규칙이 있다. 머리카락 중 심히 꼬불꼬불한 일명 '지랄 머리'라 불리는 빌런을 찾아 뽑는 것이다.

그렇다. 심히 지랄인 머리카락을 찾았을 때 느끼는 쾌감을 못 잊어 여적 못 고치고 있었다.


이 이상한 버릇의 시초는 친언니다. 언니는 어렸을 적부터 두피 염증으로 고생을 해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그 스트레스는 머리카락을 뽑는 행위로 이어졌다. 결국 언니는 고3 때 학업 스트레스까지 맞물려 머리카락을 너무 뽑아 구멍을 내고야 말았다. 그리곤 최후의 처방이라며 하얀색 주방용 비닐장갑을 끼고 공부를 하던 언니의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나도 언젠가부터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내 머리의 구멍은 재수생 때 났다.


몇 달 전부터 나는 지랄 머리를 찾고 울퉁불퉁한 느낌을 엄지와 검지 손끝 촉감으로 느끼긴 하지만 더 이상 뽑지는 않는다.


휴가로 떠난 제주도에서 한껏 화장도 하고 머리도 예쁘게 묶고 사진을 찍었는데, 지난 세월 동안 지독히 뽑아댔던 두피 부분이 심하게 비어있었다. 매일 거울로 볼 땐 잘 몰랐던 내 휑한 두피가 사진으로 보니 여실히 텅~ 비어있는 것이다.

돌아와 포토샵으로 이리저리 만져봤지만 잘 가려지지도 않고, 또 현실 타격(현타)이 커 그만두었다. 그렇게 결국 제주도 감성 사진을 정말로 단 한 장도 건지지 못했다.


10 넘게 고치못한 악성 버릇도 노화 앞에선 쉽게 힘을 잃었다.

그래도 이제 "머리카락 좀 뽑지 마라"란 주변의 원성 소리는 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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