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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혼 결심 계기_초심은 이랬지요

결혼기_승화_1_계기

by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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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계기가 뭐였어?

이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결혼한다는 인사를 나눌 때, 동일한 질문 많이 받으셨나요? 아마도 제가 연애 경험이 적고 결혼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이 질문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셨나요? 지금이라면, 어떤 대답을 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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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계기가 없습니다.

저는 그 사람과 결혼하기로 했어요. 빠른 시일 이내에 해야 했죠. 저는 그렇게 내심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확신을 그 사람은 몰랐고, 저도 몰랐어요. 그 마음을 알아차린 건 택시 안에서 전화로 싸우던 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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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연애 결혼입니다. 그러니 시점을 돌려봅시다.

저희 남편, 연이는 만나기도 전에 제가, 본인을 거절했다고 생각했대요. 저희 둘이 정말 좋아하는 조그마한 술집에 가자고 제안했는데 제가 그날은 퇴근이 늦다고 말했거든요. 연이는 바로 어쩔 수 없다고 말했지만 저는 거기 가면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그 앞에 있는 올리브영에서 뭐도 먹으라고 요청을 했답니다. 저는 정말 그 시간에 못 가는 거였고, 그곳은 정말 맛있고, 당신이라도 행복하라는 마음이었어요. 제 반응에 연이는 용기를 냈어요. 제 일이 끝나고 늦게 보자고 한 거죠. 그날 밤 10시, 가게가 문 닫을 때까지 대화를 나눴어요. 걸어가며 마시려했던 하이볼을 손에 든 채 밤새 강남과 역삼 사이를 걸어다니며 땀범벅 상태로 계속 대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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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로 연애 1일차는 아니었답니다.

연이는 저를 의심했어요. 술집에서였습니다.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바 선반이 기울어지더니 물병이 제게 엎어졌어요. 저는 깜짝 놀라서 흘러내리는 물을 피해 의자에서 일어나며 연이에게 물어봤어요. 의자를 조금 더 그쪽으로 가져가도 되겠냐고요. 연이는 속으로 놀라는 마음, 설레는 마음과 함께 이상한 사람인 거 아닐까 의심했대요. 게다가 데이트를 신청하고 나오면서도 계속 제가 이상한 사람인 거 아닐까, 사기치는 거 아닐까, 그리고 말투가 너무 로봇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반대로 저는 연이가 저를 연애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는 타인의 불륜과 연애, 서로의 연애 히스토리를 공유한데다 연이는 제게 여사친을 갖고 싶다고 말하길래 오늘 좋은 여사친 하나 얻어가나보네, 하고 말았죠. 밤새 걷고 비몽사몽 헤어졌는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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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제가 저녁 일정이 있는 주말이었어요. 연이가 먼저 연락해 점심에 만났을 때, 연이가 본인의 차를 가지고 나타났어요. 차에 타고 어제는 어땠는지, 오늘은 어떤 하루인지 이야기하던 중이었죠. 연이가 갑자기 물어봤어요.


그래서, 생각해 봤어?


저는 전혀 짚이는 게 없어 되물었고, 연이는 태연하게 다시 물었어요. 나랑 사귀는 거, 나랑 사귈래? 저는 어? 그래, 하고 정말 빠르게 대답했어요. 연이의 티볼리 에어 안에서 순식간에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연이는 이날 결혼을 결심했대요. 저희가 주차한 곳 구조가 특이했어요. 1층과 2층 사이 숨겨진 공간이 있었고, 연이는 그곳에 차를 댔어요. 그런데 도통, 그 공간으로 가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서 저희는 햇볕이 뜨거운 7월에 땀을 흘리며 차를 찾아다녀야 했답니다. 저는 그런데 그 순간이 너무 웃기고 재미있었어요. 제가 언제 이곳에서 이렇게 차를 찾아 헤매겠어요. 연이는 제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첫 계기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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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연애를 시작해 11월경, 저희는 부딪히고 있었어요.

저희는 제 생일을 맞아 커플링을 하는데 동의했어요. 하지만 어떤 소재로 하느냐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연이는 제게 금반지를 해주고 싶어 했어요. 저는 왜 그렇게 비싸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었죠. 금보다는 추억을 담아 우리가 만들자고 주장했지요. 그 일로 저희는 계속 충돌했어요. 그런 하루였어요. 제가 야근을 하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던 길, 뒷좌석에서 통화를 하다가 다시 커플링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도돌이표였어요. 그러던 중 제가 물었어요.


커플링을 뭐, 얼마나 끼려고 그래?

한 이 년?

이-이-녀언?

일…년…?

그렇게 오래 낀다고?!


이 말을 끝으로 이날 저희의 통화는 끝났어요. 연이는 조금 울었을 수도 있고, 저는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가에 대해 고민했어요. 그때 알았죠. 제가 이미 결혼을 결심하고 있었던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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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결혼식, 양가 가족, 결혼 이후의 삶과 가족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그리고 데이트 하면서 종종 서로 질문했어요. 특히 싸웠거나 둘 중 한 명이 예민할 때 물어봤어요. 왜 나랑 결혼해? 그러면 늘 같은 대답을 합니다. 문제를 같이 잘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은 사람이라서. 질문을 하면 할수록 더 명확해집니다. 연이는 앞으로 생길 문제들 앞에서 계속 손을 잡고, 저를 기다려주며, 문제를 함께 해결할 제 파트너예요. 그래서 결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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