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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경험 하나가 남긴 큰 인상

이 목욕탕을 다시는 가지 말아야지

by 린지


목욕탕 이미지 /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웹진




목욕탕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공간이다. 옷을 벗고 들어가면 직업도 계급도 사라지고, 마치 자연으로 돌아간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몸만 남는다. 아침 아홉 시 반, 동네 대성 목욕탕에 들어섰을 때도 그랬다. 오래된 건물 지하 1층, 눅눅한 습기와 구석에 먼지 낀 선풍기가 반겨주었다. 탕은 단출했다. 찬물 탕 하나, 43도나 되는 뜨거운 탕 하나. 반신욕으로 몸을 풀다 보니, 금세 내 차례가 다가왔다.


그런데 오늘, 뜻밖에도 목욕탕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내 차례에 세신대에 누워있는 아줌마의 등에 큼지막한 문신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날개뼈 옆의 검붉은 수리검, 허리를 따라 이어진 알 수 없는 무늬, 짧게 민 머리와 굵은 금목걸이까지. 평범한 일상 속 나를 영화 한 장면으로 끌고 들어가는 듯했다. 그냥 몸 위에 그려진 그림일 뿐인데, 그 앞에서 나는 괜히 작아진다.


문신에 대한 내 시선은 늘 이중적이다. 사촌동생은 도자기를 만드는 작가인데, 종아리에 커다란 문신을 새겼다. 그 문신은 오히려 그녀를 더 멋진 예술가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낯선 사람의 몸에 이레즈미식 무늬가 가득할 때면 마음이 움츠러든다. 지율이 돌잔치 날에도 그랬다. 팔 전체에 문신이 있는 마른 아저씨가 들어섰는데, 설명할 수 없는 위압감이 먼저 다가왔다. 그 문신은 마치 흉기처럼 느껴졌고, 풍기는 분위기 또한 심상치 않았다. 아마 이런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내 시선을 만든 걸 거다.


나도 안다. 중요한 건 문신 자체가 아니다. 결국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가 더 본질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큰 문신 앞에 서면 쉽게 위축된다. 그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며 애써 시선을 돌렸다. 숨이 턱 막히는 43도의 열기 속에서, 차라리 그곳이 피신처 같았다. 결국 세신은 포기했고, 탕에서 나와 머리를 감으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이 목욕탕엔 오지 말자. 무서운 아줌마나, 내 차례를 무시하고 지인을 먼저 챙기는 세신사에게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장소는 언제나 그곳에 있지만, 그곳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결국 내가 쌓은 경험에 달려 있다. 오늘의 경험으로 이 목욕탕은 나에게 다시 찾고 싶지 않은 곳이 되었다. 새로운 곳을 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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