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적인 조직 개편으로 내가 일하던 부서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인사이동이 났다. 그리고 나는 신입사원 시절 일했던 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근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사무실. 책상을 정리하면서 그때 앉았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9년 전 앉았던 자리에서 지금 앉아있는 자리로 오려면 열 걸음 정도 걸어야 한다. 저기에서 여기로 옮기기까지 약 10년이 걸린 건가. 한 걸음에 1년이라니. 헛웃음이 났다.
입사 후 몇 번의 직원 채용이 있었기 때문에 후배 직원들이 있지만, 내가 일하는 지점으로 신입사원이 발령 난 것은 입사 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가 신입으로 일했던 곳에서 신입직원과 일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자꾸 나의 신입시절을 소환하게 되었다.
신입 직원들의 최종 합격이 결정되고 각 지점에 배치가 결정되는 순간까지 한 동안 그들은 회사 내의 뜨거운 관심사였다. 어떤 이력을 가진 친구들이 들어온다, 나이는 몇 살이다 등등 한 동안 그들이 그야말로 큰 이슈였다. 개인적으로 내가 신입사원들에게 가장 궁금한 건 '왜' 우리 회사를 지원했냐는 것이었다. 어쩌면 오늘의 나를 향한 질문이기도 했다.
신입사원들 중 두 명이 우리 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지점 회식에서도, 개인적으로 밥을 사주는 자리에서도 나는 똑같은 질문을 했다.
“우리 회사에 '왜' 입사했어요? 어떤 회사인지 알고 지원했어요?”
두 명 다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알고 왔다고 했다. 이 회사가 ‘공공기관’이고 ‘안정적’이라 주변 사람들 모두 축하해준다고 했다.
우리 회사를 지원한 이유에 대해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음...‘워라밸’이요.”라고 대답한다.
사실 어떤 특정한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냥 일에 대한 요즘 친구들의 생각은 어떤 걸까 하는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워라밸이라... 이 회사에서 근무도 안 해 보고 어떻게 저렇게 명확한 기대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 회사는 특정 주기를 제외하면 일과 삶의 균형이 비교적 가능한 회사다. 유독 바쁜 시기가 있긴 한데 일 년 내내 지속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체로 놓고 보면 워라밸이라는 것이 가능한 편이다. 나 역시 그것 때문에 여기서 10년 가까이 버틴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입직원 때 끄적인 글들만 봐도 일에 대해서 전혀 흥미를 못 느끼고, 회사 분위기에 대해서도 힘겨워하고 있지만 (워라밸이라는 용어를 몰랐던 그 시절에) 워라밸로 추정되는 것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회사에 말할 수 없었던 진짜 입사동기
이십 대 후반인 저는 여전히 남들과 달라지는 것에 대해 극도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제 주변 사람들은 ‘다수가 가는 길’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적어도 제가 사는 세상에서 남들 다 가는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은 인생 낙오자 혹은 갑자기 튀는 애가 되는 느낌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왜 내가 저 길로 가야 하지? 희미한 의문이 든 적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의문만 품고, 본격적으로 그것에 대해 잘근잘근 씹어본 적은 없습니다. 젊은것 빼면 시체라서 내 갈길 간다 와다다다 말할 배짱도 없습니다. 남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고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도 쉬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이곳에 저를 은신해놓고 후일을 도모하고 싶습니다.
이십 대 후반에 찾은 은신처에서 울린 워라밸을 누리는 동안 내가 놓친 기회비용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린다. 9년 동안 비교적 성공적인 은신이었다. 하지만 후일을 도모하는 것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이중생활이라는 것을 만만하게 볼 것도 아니었지만 일상의 피곤함과 특유의 게으름이 늘 복병이었다. 그것들은 후일을 도모하려는 의식의 흐름에 매번 철저히 초를 쳤다.
남들과 달라질까 봐 두려워서 선택한 은신처에서 이제는 남들과 같아질까 봐 벌벌 떨고 있다. ‘남’의 선택이 아닌 ‘나’의 선택으로 내 인생을 채워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