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입사 9년 만에 적성 고민

투 대리 프로젝트

by 앤디


직업: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새삼스럽게 직업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9년째 출근을 하고 있는데 지금 이 일이 내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경우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은 맞는데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가 정확하게 빠져있다.


사전적인 의미에 따르면 지금 이 일은 내 직업이 아니다.



-조직원으로서의 적성이란?


나는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을 즐거워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회사란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일하는 곳이기에 나는 내가 조직생활에 퍽 잘 적응할 줄 알았다. 물론 이것이 엄청난 오해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고 보니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 있는데 조직원으로서의 사회성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른 의미라는 것이다. 회사에서 원하는 사회성은 주로 ‘눈치'와 관련된 것들인 경우가 많다. 눈치를 잘 보고 눈치껏 행동하는 사람일수록 아 이 친구 제법 사회생활 좀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눈치란 주로 상명하복 관계에서 요구되는 그 ‘무엇’이다. 그 무엇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상사에 따라 너무 제각각인 데다가 한 마디로 정의될 수 있는 개념도 아니며, 그 실체를 아직도 잘 모르겠어서다. 이럴 거면 회사가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인재상도 회사와 상사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그대로 하는 직원이라고 해주지. 그랬다면 피차 서로 오해도 없고 상처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직장인의 또 다른 이름 홍길동


직장인의 삶은 홍길동의 비극과 닮아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다. 홍길동과 다른 점이 있다면 순서 정도다. 서자이기 때문에 호부호형을 할 수 없었던 홍길동과 달리, 호부호형을 하는 순간 직장인은 회사 내에서 서자가 된다.


A를 B라고 생각하는 회사 앞에서 A를 A라고 했다가는 정 맞을 확률이 높다. 뒤에서는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상사 욕과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다가도 일단 앞에서 ‘네’ 하는 직원은 회사 내 적자가 된다. 한 때 이것 때문에 정신분열이 올 것만 같았다. 남들보다 엄청나게 의협심과 정의감이 많아서도 아니고, 조직의 불합리함을 엎어버리자 하는 행동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대체 이거 뭐지? 하는 일들이 참 많았다. 처음에는 그게 특정 상사들로 인해서 생기는 병폐인 줄 알았다.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그 몇 명의 원흉들만 사라지면 회사가 달라질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10년의 시간 동안 회사는 단 한 번의 흔들림 없이 자기 모습을 지켰다.


-회사에서 발휘해야 할 능력이란 무엇인가?


재직기간 9년 중 두 번 정도 같이 일했던 상사가 나에게 가장 많이 하셨던 말씀이 있다.


“너는 왜 할 줄 아는데 안 하니?”


내가 업무와 회사에 100% 몰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분은 늘 그렇게 표현하셨다. 신입사원 면접 때 면접관이셨던 그분은 그때의 내 대답과 태도를 보고 이 회사와 상사에게 충성을 다하는 전사로 클 거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분이 그 말을 하실 때마다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짓고는 했는데 사실 속으로는 제대로 들켰다고 생각했다. 그랬다. 나는 회사와 일에 대해 나를 불태워 본 적이 별로 없다. 이유는 단순했다. 일하면 일할수록 회사의 일과 돌아가는 회사 구조가 너무 재미없었다. 돈을 받으니깐, 남한테 피해주기 싫으니깐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꾸역꾸역 마무리 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 했다. 더하거나 덜 하는 것 없이 항상 그 선을 지켰다.


한 때는 이런 내가 월급을 받아간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회사를 기만하고 나 자신을 속이는 기분의 연속이었다. 모름지기 이 ‘일’이 나의 ‘직업’이라면 의욕과 열정으로 똘똘 뭉쳐 나와 회사의 발전에 기여해야만 하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들이 다 나보다 먼저 직장인이 됐기 때문에 입사 초기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이런 고민을 친구들에게 많이 털어놓았다. 그럼 하나같이 누가 일을 재미로 하냐고 다 똑같으니깐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차피 직장인의 삶이란 다 거기서 거기인데 안정적이고 워라밸이 되면 좋은 회사라고 그랬다. 그러면서 나보고 영혼을 놓고 다니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베테랑 직장인으로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기제와 노하우를 알려준 셈인 데 9년간 나는 그게 참 지지리도 안 되었다.


-앵무새와 다람쥐 그 어디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 회사는 필요한 기관이고 나름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이유 없이 만들어진 곳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면 이 일을 굳이 왜 내가 해야 하지? 하는 의문이 계속 생긴다. 연차가 더 해진다고 해서 새로운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일에 대해서 대단한 전문성이나 커리어가 쌓이는 것도 아니었다. 선배들의 경우, 나보다 몇 년 더 이 일을 했다고 해서 딱히 나보다 일을 더 많이 안다거나 매끄럽게 처리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건 내가 후배들에 비할 때도 마찬가지다. 누가 일을 더 잘한다고 해서 금전적이나 인사적으로 보상이 더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가 일을 더 못한다고 해서 딱히 피해를 보지도 않았다. 어떤 말에게든 비슷 무리한 당근과 채찍이 주어졌다.


그러다가 가끔씩 벌어지는 승진 이벤트를 보면 업무적으로 100일을 성실히 일한 결과라기보다는 정치적 놀음에 개입하거나 술자리 10일을 참석하거나 어떤 일을 시키든 묵묵히 수행하겠다는 이미지 굳히기로 승부한 결과였다.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9년간 조직생활을 해보고 나서 얻은 나의 결론은 이렇다. 적당히 정치적으로 눈치껏 사회생활하면서, 동일한 성실도를 매일매일 발휘해야 하는 것이 조직원의 능력이라면 이제 나는 확실하게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내가 조직원으로서 완벽한 무능력자였다는 사실을.





회사가 제공하는 각종 업무 관련 교육을 샅샅이 신청해서 듣고, 책을 사들이고, 비교적 역사가 짧은 회사와 동반 성장하면서 이 분야에 획을 긋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다. 여전히 내 책장 중 한 면은 그러한 책들로 한 가득이다. 하지만 이제 내게, 회사 내에서 ‘일’이라는 획을 긋는 것보다 인생에서 나만의 ‘직업’이라는 밑줄을 그리는 것이 중요해졌다. 나 스스로 가늘지만 힘 있는 밑줄을 그을 수 있게 될 때까지만. 딱 그때까지만. 회사가 나를 이곳에 머물게 해 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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