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 김대리의 방랑벽

투 대리 프로젝트

by 앤디


나는 학창 시절 동안 직업으로 회사원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는 엄마가 따로 정해주신 '장래희망'이 있었다. 남들 눈에 그럴듯해 보이는 그 장래희망이 싫지 않았고, 엄마가 워낙 강력하게 원하셔서 꼭 그것을 이뤄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다행히 대학 때 그 공부를 하는데 적성에 맞았다. 재밌었고 만족했다. 하지만, 또 다른 관문을 통과하는 단계에서 열심히 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부모님의 지원을 받는 비겁한 생활이 몇 년 지속되다 보니 취업의 마지노선이라는 그런 나이까지 되고 말았다.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또 어영부영한 선택을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오랜 시간 장래희망이 하나였다 보니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은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새삼스럽게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는 하기 싫고, 자신도 없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나마 지금까지 공부해온 것이랑 연관성 있는 일자리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공기관으로 눈이 돌려졌다. 나의 이십 대는 내가 스스로 심사숙고한 선택이라는 게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부끄럽다.


이십 대 후반에 회사에 들어와 삼십 대에 접어들고 나서도 내 마음의 소리보다는 남들의 소리에 따라 움직였다. 대다수가 선택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나도 특별한 것 없는 보통의 인간이니까 주위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길에 들어서면 잘 적응하고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9년 동안 직장생활을 해놓고 이제와 새삼스레 회사원으로서의 삶 전체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디에 속해있다는 안정적인 느낌, 칼같이 들어오는 월급, 그로 인해 할 수 있었던 딸 노릇, 누나 노릇, 친구 노릇 등으로 보람 있었던 적도 많았다. 다만 일을 하면서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은 없었다. 좋아하는 일도 밥벌이가 되는 순간 싫어진다는 소리를 못 들어 본바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버티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일을 하면서 행복한 순간이 많을 것이란 생각에 늘 부러웠다.






입사한 해 2010년 12월, 여권을 갱신하면서 새 여권을 받아 들고 이 페이지들을 출 입국 도장으로 가득 채워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될 리 만무했기에, 일단 던지고 보는 막연한 농담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농담이 얼추 이뤄지고 있다.


회사 다니는 9년 동안, 좋아서 꾸준히 해 온 유일한 짓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데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을 때마다 해온 것이 여행이었다. 입사 후 9년 동안 해외는 30곳, 국내는 10곳 정도를 여행했다. 마음에 들거나 더 알고 싶은 장소는 두 번, 세 번 그 이상으로 방문했다. 매일의 반복된 생활이 지루하고, 익숙한 곳에서 답답함을 느낄 때마다 낯선 장소에서 다른 걸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참 좋았다. 연차가 허락되는 한, 마음 가는 대로 뛰쳐나갔다. 이 활동은 내가 진짜 즐기고, 스스로 꾸준히 해왔다는 점에서 내 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투 대리 프로젝트의 첫 미션으로 김대리인 나는 나의 방랑기를 쓰는 것으로 정했다. 주객이 심히 전도되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직장생활 9년 동안을 정리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데 첫걸음으로 이만한 일이 없는 것 같아서다. 여행을 위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행 가서 좋았다. 그리고 이것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투 대리 프로젝트, 이제 진짜 시작이다.


김대리와 함께하는 최대리 이야기, 투 대리 프로젝트

http://brunch.co.kr/@thesy/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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