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 후배와 개인적으로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후배에게 물었다. 저녁식사 자리는 후배와 나 단 둘 뿐이었고 서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라 조금은 심오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너는 최종적인 꿈이 뭐냐?” 하고 내가 물었다.
후배가 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좀 부끄럽지만... 건물주요.”
꿈이란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니 아, 그렇구나 하면서도 후배의 꿈에 대해서 더 이상 추가적으로 질문할 건 없었다. 그냥 꿈이 확실해서 부럽다는 생각과, 건물주가 되기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회사를 열심히 다니겠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후배는 평소 부동산에 대해 관심이 상당한 데다가 회사 일도 성실히 하는 편이니 후배의 꿈은 왠지 듣기만 해도 이뤄질 것 같았다.
후배는 자기 꿈에 이어 내가 묻지 않은 회사 사람들의 근황 또한 알려주었다. (알았던 얘기도 있었고, 모르던 얘기도 있었는데) 어떤 차장은 상가 투자를 하고 있고, 어떤 과장은 아파트가 두 채고, 또 몇 명의 대리들은 이미 아파트 분양을 받았거나 좀 더 좋은 동네로 이사하려고 아파트를 매입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었다.
건물주가 되고 싶다는 후배의 꿈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처럼 이 소식에 대해서도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다들 차곡차곡 모아 온 노동소득을 가지고 자본수익으로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구나. 나만 빼고 다들 현실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이도 부동산에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나같이 본래 부동산에 관심이 없고 까막눈인 사람은 결혼이라는 이슈마저 없으면 더더욱 그쪽과는 상관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사실 회사 사람들의 얘기를 듣기 전에도 이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 적이 최근에 몇 번 있었다. 뉴스에서 서울 집값 상승에 대한 걸 떠들어 댈 때마다 그냥 저건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 주변 친구들 이야기가 됐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의 친한 친구들의 반 이상은 서울에서 일을 하고 서울에 살고 있다. 서울에 집을 마련하기 위해 진 빚을 갚느라 한 동안 고생스럽겠지만, 이 추세가 계속 이어지면 몇 년 뒤 자산이라는 항목에서 친구들과 나의 계급(?) 차이는 어마어마해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 나보다 10살 넘게 많으신 지인 분이 그런 경험이 있으셨다. 그분이 사회 초년생으로 막 결혼했던 시절, 나의 지인과 지인의 친구 분은 비슷한 경제 수준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 분은 서울이 직장이라 무리를 해서 서울에 집을 살 수밖에 없었고, 나의 지인 분은 인천이 직장이라 여기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하셨다. 그 친구 분은 꽤 오랜 시간 담보대출 빚을 갚느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빡빡하게 살았는데, 지금 그 두 분의 자산은 시가 기준으로 몇 십억 이상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내가 노력한다고 드라마틱한 소득향상이 있을 리 없는 나 같은 월급쟁이에게 이러한 순간의 선택과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게다가 노동소득인 임금은 자본수익만큼의 상승을 기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나의 꿈이 건물주는 아니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과 격차가 크게 벌어져서 그 친구들을 지금처럼 편하게 보지 못하고, 위축되거나 시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그건 좀 많이 괴로울 것 같다. (나는 분명 그것이 몹시 신경 쓰일 것이고, 그런 격차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정도의 큰 그릇이 못 된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후배의 얘기와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이 맘에 걸려 회사 옆 서점에서 (내 수준에 맞을 것 같은) 부동산 관련 책들을 몇 권 샀다. 쉽게 설명된 것 위주로 샀는데도 몇 장 읽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불현듯 수학을 정말 싫어했지만 좋은 대학 가고 싶어서 억지로 공부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의 교육과정과 입시전형에서 수학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공부 또한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럴 땐 참 특출난 재능 없는 나와, 나의 이런 기호와, 나의 이런 머리가 몹시도 원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