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해골물,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by 앤디


매일 가기에 만만한 가격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스타벅스에 가고 있다. 우선 사무실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에 있고, 한 시간 남짓의 점심시간 동안 눌러있기에 (스타벅스만큼) 마음 편한 곳을 아직까진 찾지 못했다. 공간의 규모도 그렇고, 각자 용무에 집중하는 그 특유의 분위기도 맘에 든다.


돌이켜보니 글도 주로 스타벅스에서 써왔다. (지금 이 글도 스타벅스에서 쓰고 있다) 습관이 되서인지 일단 와서 앉으면 술술 잘 써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다 보니 글쓰기의 전후 단계인 '생각하기'도 스타벅스에서 자주 하게 된다.






10년 전 신입사원일 때도 이 지점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때도 스타벅스는 있었다. 다만 가서 앉아 있을 생각을 안 했고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일단 취업했으니 (여태껏 그래 왔던 것처럼) 내 방식대로 해나가면 그럭저럭 무탈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보다 1년 선배인 최대리는 내가 입사했을 때 기획총무부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내가 입사 면접을 봤을 때, 그 부서 부장이 면접관 중 한 명이었다.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 최대리가 해준 말에 따르면, 그 부장이 우리 기수의 면접을 보고 나서 부서 직원들에게 내 이름을 언급하며 그렇게 칭찬을 했다고 한다.

애가 참 대답도 잘하고 똑똑하다고.

우리는 그때 서로에게 거짓을 말했다. 아니 서로에게 의도치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해야 정확한 건가.

나는 상사라면 응당 그런 질문 정도를 평상시에도 할 줄 알았고, 내 대답에 귀 기울일 줄 알았다. 면접 때 등장했던 수준 높은(?) 질문은 그 이후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었고, 내가 들은 말 중에 지시 외에 그 어떤 질문이 있었나 싶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내게 정말 있었을지 몰랐던 그 똑똑함(!)을 발휘할 의욕을 잃었고, 애석하게도 나는 상사 말 듣는데 그것을 사용해야 하는 방법과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똑똑함'을 발전시킬 기회가 이곳에는 영영 없다는 것을 작년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10년 전 그때 그 부장이 칭찬했던 직원은 지금 없다. 조직과 몇몇 조직원에 대한 삐딱한 시선으로 내 일만 딱딱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곳을 멋들어지게 빠져나갈까 궁리하는 그런 직원만이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걸 깨닫기까지 10년이나 걸릴 일이었나 싶어 나 자신의 아둔함에 대해 어이가 없을 때가 있다. 심지어 중간중간 다른 사람이 넘어지거나 무너진 걸 봤을 때 힌트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사람 심리가 참 묘하고 재밌다. 남들이 당했을 땐 '아, 어떻게 해, 아프겠다.' 거기 까지지 나에게도 그 아픔이 곧 닥칠 거라는 거까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다를 거야, 나는 달라'라는 착각을 가질 가능성이 더 크다.


나도 넘어져보고 나서야 알았다. 넘어져서 아팠지만, 넘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시점과 스타벅스에서 읽고 생각하고 쓴 시점이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이럴 때면 내 앞에 놓인 스타벅스의 쓰디쓴 커피가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스타벅스의 미소가 부처님의 인자하고 온화한 미소와 닮은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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