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가 왜 거기서 나와

by 앤디


나는 지금까지 주인의식 운운하는 사람이 '진짜' 주인인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주인이란 (주인이 아닌) 직원이 결코 주인의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진짜 주인은 (주인이 아닌) 직원들에게 주인 의식을 가지라고 감히 강요하는 법이 없다.

본인 스스로를 진짜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얕은 사명감을 떠들 시간에 직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끔 복지, 급여, 승진, 근무환경에 대한 실질적 고민부터 할 것이라 믿고 있다.







공공기관은 공공재니 국민 외에 주인이 따로 없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보통 2~3년마다 기관의 장이 바뀌는데, 내가 입사했던 때의 기관장을 빼면 기관장이라고 해봐야 엄밀히 나보다 입사가 늦은 후배다. (애석하게도 선배다운 프로페셔널 기관장을 아직 못 뵈었다)

내가 일하는 이곳에서 일하는 10년간 한 5명의 기관장을 겪었다. 그중에는 유관기관 출신자들이 있었고, 퇴직한 시 공무원들이 있었으며 굳이 왜 여기에 왔을까 하는 분도 있었다. 공개채용은 요식적인 것에 불과할 뿐, 보통 본인이 몸담고 있던 조직에서 끝을 본 자들 중 (공공기관장을 임명하는) 임명권자와 연이 닿은 자들이 기관장으로 온다.

그리고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내 경험으로만 비춰봤을 때, 이곳을 스쳐간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상은 하나같이 다 별로였다. 정치적인 이유로 어떤 한 줄이 필요해서 이력을 만들러 온 자, 탐관오리처럼 회사 법카로 술과 고기를 먹으러 온 자, (공직 세계에서는 얼마나 뛰어난 행정을 수행했는지는 몰라도) 본인이 장으로 있을 기관과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가 떨어지는 자, 여기서 더 나아가 본인이 오너가 아님에도 오너인 줄 착각하고 사리사욕을 위해 조직을 엉망으로 만든 자뿐이었다. (당시에는 싫었지만 구관이 명관이라고, 본인의 타이틀만 이용하려고 했던 (구) 기관장들은 차라리 양반이었다)








현재 일하고 있는 지점의 지점장은 평소에는 칸트처럼 6시 땡 하면 집에 가다가도, 기관장의 불호령이 떨어질 때는 꼭 야근하는 척을 한다. 저번 주 갑작스럽게 본점 책임자 회의에 소집되고 나서, 지점장이 회의라는 명목으로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웬일로 집에 안 가고 남아있나 싶었는데, (본인 빼고) 이미 열심히 하고 있는 우리 지점 직원들을 다른 지점 직원들과 비교하며 주말출근을 압박했다. 발령받고 지금까지 지점이 어떻게 돌아가든 말든 무책임하고 무능하게 행동하더니 지점장으로서 기관장의 말은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제 더 이상 분노할 힘도 남아있지 않고, 인간대 인간으로서 저렇게 살면 안 창피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바로 이것이 저분이 조직생활에서 버티고 살아남은 방식, 어쩌다 저기까지 올라간 방식인 걸까. 유능하고 뛰어나서 달아준 지점장이 아니라도, 회사에서 어떤 타이틀을 달아줬으면 최소한 잘해보려고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에게는 그것마저 없어 보였다.

본인이 지점장으로서 어떻게 하겠다 하는 계획이나 정리는 1도 없이 회사 '오너'가 시키니 별 수 있냐며 계속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면서 다른 지점들 하는 만큼 어느 정도 수준만 맞추자고 결론을 냈다.

회의라더니 지점의 일이 그동안 왜 안 됐던 건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내용은 언제나 그렇듯 빠져 있었다. 기관장에게 혼나지 않으려고 대충 척만 하자는 말도 질리고, '오너'란 말도 그 말이 왜 거기서 나와란 생각이 들 정도로 듣기 불편했다.

대체 이런 회의 같지 않은 회의는 왜 자꾸 하자는 건가 싶어 어이없다가 순간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인) 극적으로 느껴졌다. 바로 그 '오너'가 이번에 저분을 지점장으로 캐스팅한 거였는데, 진짜 주인이라면 저렇게 발연기하는 사람에게 지점장이란 역할을 줄 리 없었을 테니 기관장도 본인 스스로 진짜 주인이 아니란 걸 보여준 셈이다.

나 역시 '조직 생활하는 대리'로서 심각한 발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아마도 내게 주어진 대본은 군말 없이 네 하면서 시키는 대로 했어야 하는 거였겠지만 결국 나는 아무 연기도 하지 못했다. 하기 싫었고, 할 수도 없었다. 기관장의 캐스팅과 디렉션도 터무니없지만, 지점장 역할의 연기자와 연기 호흡이 해도 해도 너무 안 맞기 때문이다.

다시 또 월요일이 되었다.

남의 발연기도, 내 발연기도 억지로 봐야만 하는 한 주가 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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