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지금까지 독서 관련 동호회나 모임은 단 한 번도 참여해 본 적이 없었다. 독서라는 활동 그 자체, 그것을 통해 느끼는 모든 것들은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홀로 독서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편향적인 독서가 돼서, 주로 비문학보다는 문학을, 문학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만 읽어 왔다.
몇 년째, 인생이 뜻대로 안 풀린다고 느끼면서부터 (아주 사소한 영역에서조차) 나의 방식과 선택 하나하나에 의구심을 품게 되었는데 그래서 올 해는 사소한 거라도 지금까지 안 하던 짓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전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면 내 인생도 조금은 달라질까 싶어서다.
그래서 올해 봄, 대형서점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에 처음으로 참여하였고, 일부러 몰랐던 작가와 책으로만 구성된 그룹으로 신청했다. 그 활동의 4회 중 3회가 오늘 마무리되어, 벌써 다음 주면 끝이 난다.
내가 읽지 않았던 종류의 소설을 읽는 것은 사실상 고통이었다. 나의 문학적 취향은 생각보다 견고했고, 독서의 영역은 비문학적인 것에서만 넓히기로 다짐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의도적으로 안 하던 짓을 해보니 (원래의 나라면) 안 갔을 세계를 보게 되었고, 안 했던 생각을 하게 되어 새로웠다. 앞으로 두 발짝 못 갈 땐, 옆으로 한 발짝 걸어보는 것도 방법이었다.
오늘은 특별히 토론하는 소설의 작가가 직접 오셔서 작가와의 만남 시간이 있었다. 역시 내 취향의 소설과 작가는 아니었지만, 이런 시도를 했던 나를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가에게 사인을 받으려고 다른 참여자들처럼 나도 줄을 섰다. 작가님이 이름을 물어보셔서 말씀드리고 기다리고 있는데, 모임의 진행을 봐주시는 (이미 3회의 모임으로 안면이 있고, 토론도 함께한) 다른 작가님이 옆에서 갑자기 질문을 해오셨다.
-혹시 무슨 일 하세요? 예전부터 궁금했어요.
ㅡ저 공공기관에서 일해요.
ㅡ(깜짝 놀라며) 진짜요? 저도 예전에 공공기관에서 일했던 거 아시죠?
ㅡ네? 몰랐어요. 근데 왜 놀라세요, 안 어울리죠?
ㅡ아니요, 오래 잘 버티실 것 같아요.
내 뒤에도 사인을 받으려고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왜 그렇게 생각하시냐고 더 묻진 못했는데 기분이 좀 이상했다.
직장인에게 오래 잘 버틸 거 같다는 게 덕담 혹은 칭찬이라고 생각해서 한 말인 건지, 나에 대한 본인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된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세 번의 모임 동안 (다 합쳐서)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대화로 어떤 사람이 내가 회사에서 오래 잘 버틸 거 같다고 말하는 게 썩 유쾌하진 않았다. 하필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자주 하는 고민이라 예민한 탓일 수도 있다. 암튼 그의 직업이 점술가가 아니라 소설가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기로 한다.
앞으로 회사에서 내가 오래 잘 버틸지는 미지수이나, 분명한 건 내 소설 취향은 쉽게 변하진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