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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Aug 04. 2019

오늘 밤 자고 나면


믿기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말이 가끔 있다.



오늘 밤 자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좋아질 거야.



 당연히 그럴 리가 없는데도, 커피를 마시다 컵을 둘러싼 이 문장을 읽는 데 맘 한구석이 잠시나마 편해졌다.


 사실 최근에 실연 비슷 무리한 감정을 느껴서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꼭 연애여서가 아니다. '사람'이든 ''이든 가까워지나 싶었을 때 한 발짝 멀어져 버리면 통 마음을 잡을 수가 없다. 이것은 몇 번을 겪었다 한들 익숙하지 않고, (내 나이가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어른이라 한들 의연할 수 없는 그런 것이라 며칠을 질척거렸다.





 내가 스스로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간편하게 쓰는 방법은 맛있는 음식 먹기이다. 살이 찐다는 치명적 단점이 도사리고 있지만 짧은 시간에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얻는 효과는 크다.

 이렇게 구멍 난 마음을 메꿀 음식이 뭐가 있었지 생각해보다가 집에서 밥을 비벼야 하나 잠깐 생각했다.
요즘엔 드라마를 잘 보지 않아서 이런 장면이 아직도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드라마 여자 주인공이 실연을 당하면 양푼에 온갖 재료를 때려 넣고 밥을 비벼 먹는 장면이 제법 나왔었다. 그 장면을 보고 언젠가 한 번 따라 해 본 적이 있었는데 나의 경우 기분이 풀리기도 전에 오지게 체하기만 했었다.  밥을 비비는 건 체했던 경험 때문에 패스하기로 하고 다시 다른 음식들을 생각해본다.  

(아주 우울할 때는 그 어떤 음식도 넘어가지 않더니, 식욕이 살아있는 걸 보면 그래도 이번 건이 아주 심각한 일은 아니었나 보)

그리고 그 끝에 떠오른 음식은 이것들이었다.



이 분식집을 알게 된 것은 입사 후였다. 나름 꽤 알려진 맛집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전혀 모르던 곳이었다.
 몇 달 전에도 여기에서 친구랑 이것저것 시켜놓고 먹으면서 꿀꿀했던 기분을 풀었던 것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먹었던 딱 그 맛의 떡볶이, 계란 프라이가 열일 하는 김치볶음밥, 두말하면 입 아픈 사랑의 돈가스와 그 옆에 찰떡인 마카로니 샐러드.


아쉽게도 집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곳이라 작정하고 가야 하는 분식집이긴 한데 조만간 방문해서 먹고 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불과 그제 친한 언니를 만나 둘 다 마흔 전에는 멋진 몸 한번 가져보자고 진지하게 다짐했는데, 먹을 걸로 마인드 컨트롤하는 이 버릇을 쉽게  버지 못하고 또 이러고 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내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통해 마음을 달래는 것도 하루빨리 시도해야 텐데... 오늘부터 시작하기에는 날이 너무 덥 않냐는 빈약한 핑계를 바로 찾는다.  


오늘 밤 자고 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좋아질리는  없다.

그래도 손과 음을 놓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계획대로) 발버둥 치다 보면 오늘보다 조금은 좋아질 거라 믿는다. 


 오늘 밤 자고 나면 음식을 먹든 운동을 하든 흩어졌던 마음을 다시 한번 모아 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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