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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Aug 05. 2019

세 살짜리 조카와 야구장 가기


동생 부부가 조카를 우리 집에 맡기고 영화를 보러 갔다. 엄마와 나는 조카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에 걸맞은 액티비티를 고민하다가  도보로 10분 거리인 집 앞 야구장에 가기로 했다. 마침 그날까지 유효한 공짜 티켓도 있었다.

 나는 축구와 배구는 경기장에 가서 볼 정도로 좋아하지만 야구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는 편이다. 룰도 잘 모르고 선수들도 잘 모른다. 다만 탁 트인 야구장의 들썩이는 분위기 속에서 무언가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삼십 년 넘게 살면서도 야구장 간 게 손에 꼽을 정도인데 세 살 조카의 인생, 생애 첫 야구경기 관람은 이렇게 빨리 찾아왔다.





 사람과 함성으로 가득 찬 야구장에 들어서자 그 분위기가 낯설었는지 한참 잘 걷던 조카가 안아달라고 칭얼거렸다. 우리가 앉고 싶었던 구역은 이미 자리가 다 차서 그 주변을 수차례 왔다 갔다 하던 중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발견하였다.  조카가 아니었다면 야구장 내 이런 시설이 있었는지도 몰랐을 텐데 조카 덕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 당연하게도 참새 조카는 방앗간 놀이터를 보자마자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곳은 엄아 아빠 따라서 야구 보러 온 아이들로 붐비는 곳이라, 안전관리상 입장에 인원 제한이 있었다.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드디어 순서가 돼서 입장을 했다. 조카 입장에서는 거인처럼 보일 제법 큰 언니 오빠들이 많았다. 조카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쳐다도 안 볼) 계단 2~3개짜리의 미끄럼틀을 용케 찾아내  20번 가까이 타면서 딱 그 언저리만 맴돌았다.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자기 수준에 맞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의 세상에서도 보이지 않는 질서와 암묵적 룰이 있는 건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참 놀이터에서 놀고 나와 드디어 야구장 한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신나는 음악과 응원소리가 어우러져 야구팬이 아닌 나도 들뜬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들뜬 기분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는지 조카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음악소리에 맞춰 엉덩이를 덩실덩실 흔들며 신나게 박수를 쳤다. 엄마와 나는 물론이고 뒤에서 야구경기를 보고 계시던 아저씨도 조카 행동에 한참을 웃었다.  

 낯을 가리는 조카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울까 봐 걱정했는데 나만의 완벽한 기우였다. 오히려 지나치게 적응을 잘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아까 놀이터에서처럼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손뼉 치면서 춤까지 출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어쩌면 우리 모두 저마다의 흥과 예술성을 갖고 태어났는데 자라면서 그것들이 조금씩 희미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조카가 부쩍 말문이 트인 이후 조카의 기억력에 대해서 매번 놀라고 있는데 이번 야구장 방문을 통해 조카의 사회성(?)과 예술성(!)에 놀라고 말았다.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조카가 다음 만남에는 무엇으로 나를 놀라게 해 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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