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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Aug 12. 2019

삼십 대 흰머리와 나는 나비


 주말에 염색을 했다. 멋 내기가 아니라 순전히 흰머리 감추기가 목적인 염색이었다. 삼십 대에 흰머리를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머리를 묶거나 머리를 들췄을 때 보이는 흰머리 수가 제법 만만치가 않다.
 

 잦은 염색과 파마에도 거뜬히 버텨주었던 이십 대의 머릿결과 달리,  상태가 예전 같지 않음을 인지 하고나서부터 (커트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지가 3년 정도 돼간다. 이런 상황에서도 흰머리 염색만은 예외인데 (염색 모발이 아닌 검은 머리라 그런지) 흰머리가  삐죽 나오면 유독 보기 싫게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나의 흰머리는 이십 대 초, 중반 고시공부를 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나기 시작했다. 한 때 이것이 고민이 되어 흰머리의 원인에 대해 검색해 본 적이 있었는데 유전, 스트레스, 노화 등이 그 이유로 적혀 있었다. 십 년 전만 해도 스트레스가 가장 큰 이유였다면 지금 나의 경우엔, 이 세 가지가 다 합쳐진 느낌이다.






 사실, 나는 흰머리 자체를 싫어하진 않는다. 연륜이 주는 선물 같은 흰머리를 보면 오히려 멋있다 생각하고, 세월만이 줄 수 있는 백발을 볼 때면 그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당할 때가 더 많다. 다만 뭣도 없는 내가 이 나이에 흰머리가 있는 게 어색하고 보기 싫을 뿐이다.




저번 주 금요일, 록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그날 내가 가장 즐겼던 무대는 YB 무대였다. 몇 년 전에 콘서트도 갔었는데 이번엔  가까이 봐서 그런지 밴드가 등장할 때부터 그 어떤 아우라가 느껴졌다.
 

 워낙 YB 노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노래와 연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단단한 자신감과 멤버 전원이 무대를 즐기고 있다는 여유로움이 특히나 멋있었다. 대체 저 멋있음의 근원은 무엇일까 궁금해하던 공연 중간쯤, 보컬인 윤도현 님이 데뷔한 지 벌써 24년이 되었다고 했다.  

 24년... 그 긴 세월 동안 한 길을 걸으며 버텨 온 것도 대단하지만, 24년간 활동한 결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열광케 하는 그 재능과 경력이 참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24년이 되었다고 해서 아무나 그런 성과를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뮤지션이 아니니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순 없지만, 세상에 데뷔한 지 24년이 흘렀을 때의 내 모습은 어떨지 잠시 상상해보았다. 불안해만 하고 별다른 노력 없이 시간만 보내는 것을 가정했을 때 뻔한 모습이 쉽게 상되었다. 그저 세월만 보냈구나를 짐작케 하는 그렇고 그런 24년 차의 모습, 거기에 흰머리가 있다고 한들 그 어떤 멋도 찾을 수 없을 터였다.

 예전엔 이런 염려조차 하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작게나마 계획도 세우고 뭔가도 하고 있는 지금, 많이 달라진 거라면 달라진 거다. 게다가 여태껏 실컷  평범하게 살아와놓고 갑자기 스스로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건 도둑놈 심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연륜과 자연스레 어우러져 멋진 흰머리나,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커리어의 아우라를 볼 때면 자꾸만 나의 오늘에 대해 조급한 맘이 든다.






 YB가 나는 나비라는 노래를 부를 때, 첫 소절부터 목구멍이 뜨거워지고 코끝이 시큰거렸던 건 그 노래가 오늘의 내 모습과 꼭 닮아서였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앞길도 보이지 않아
나는 아주 작은 애벌레
살이 터져 허물 벗어 한 번 두 번 다시
나는 상처 많은 번데기


누군가는 훨훨 나는 것도 같은데,

 나는 아직도 애벌레와 번데기 그 어디쯤을 헤매는 중에  어울리지 않는 흰머리를 감추려니 오랜만에 감상 빠었다.


 래도 야무진 꿈 갖는 건 모두의 자유니까 멋진 흰머리를 가진 나비가 되길 욕심 내보며, 매일 조금씩 파닥파닥 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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