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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Aug 13. 2019

국민학교 6학년, 짝꿍 바꾸기



지금은 사라진 단어, ‘국민’ 학교 시절의 일이다.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젊은 선생님이었다. 항상 열정과 의욕이 넘쳐나셨고, 우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신 적 없이 늘 깊은 관심을 가져주셨다.

여느 때와 다름없었던 평범한 날의 쉬는 시간.

같은 반 친구 하나가 대뜸

“선생님, 땡땡이가 누구누구 좋아한대요~” 하고 말을 하였다.

여기서 땡땡이는 나였고, 누구누구는 우리 반 남자 애중의 하나였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소녀 시절에도 내 감정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수줍어한다거나 부끄러워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공식 발표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 나이에 흔히 할 법한 울음을 터뜨린다거나 강한 부정 없이 야, 왜 그래~ 하지 마. 이게 내 반응의 전부였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놀림 성 고자질(?)을 들은

담임선생님께서는 별말씀 없이 그저 웃고만 계셨다.

 그런데 그 날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다소 파격적인 전달사항을 고지하셨다.

“내일 짝을 바꾼다. 방식은 여학생이 남학생을 선택해서 옆에 앉는 걸로. 이상.”

 생각지도 못했던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반 전체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땡땡이의 감정과 그 감정이 폭로된 사실 하나 때문에 갑자기 반 전체의 짝꿍이 바뀌게 될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 시절 짝꿍이란 자고로 키순서나, 이름의 가나다 순서라는 식상한 기준으로 정해진 대로 대충 앉는 것이었다. 게다가 당시에 ‘여’ 학생이 ‘남’ 학생을 짝꿍으로 선택해서 앉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담임선생님도 참 재밌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 나는 또 그것을 굉장히 진지하게 받아들여 어차피 멍석 깔린 거 제대로 한 번 춤춰보자는 마음으로 반드시 그 누구누구의 옆에 앉겠다고 결심하였다.

 종례가 끝나고 당연히 반 전체는 웅성웅성해졌고,

여학생들은 내일 당장 누구 옆에 앉는지가 인생 최대 고민이 되었다. 이 사태의 주인공인 나만 빼고 모든 여자 친구들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확실히 누구 옆에 앉을 것이라는) 답이 정해져 있었지만, 나와 친한 무리의 여자 친구들 역시 다른 친구들처럼 깊은 고민에 빠지었다.

여유 뻗치게 내가 친한 친구들에게 물었다.

“애들아, 내일 누구 옆에 앉을 거야?”

그러자 우리 무리 중에 한 친구가 대답했다.

“그러게, 아 우리 반에 맘에 드는 남자애 진짜 한 명도 없는데. 누구 옆에 앉지? 그나마 누구누구가 제일 귀여운 데. 그냥 확 걔 옆에 앉아 버릴까?”

여기서 누구누구는 바로 내가 마음에 둔 그 남학생이었다.

그리고 그 대답을 한 애는 하필 우리 반에서 가장 예쁘고 성격도 좋아서 반 친구들(특히 남자)에게 인기가 많은 친구였다. 그것도 모자라 남자 보는 눈 까지 있는 나쁜 계집애(!)였던 것이다. 지금 같았으면 야! 이게 누구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상도덕과 톤 앤 매너를 지키라고 바로 치고 들어갔겠지만, 당시 나는 (내 감정에는 당당했어도) 차마 이런 말까지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 친구가 까르르 거리면서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 몹시도 얄밉게 느껴졌지만, 그럴수록 반드시 내일 내가 좋아하는 그 친구 옆에 앉겠다는 열망이 더욱 커져갔다.

 나는 그날 밤 당연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 반에서 가장 예쁜 아이가 내 라이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시종일관 잠을 설치었고 결국 한 잠도 잘 수가 없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국민’ 학교 6학년에게는 정말 이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새벽 6시였다. 나는 그 시간에 일어나 등교를 하려고 모든 준비를 끝내었다. 심지어 엄마 아빠도 아직 일어나시기 전이었다.

사랑 앞에서는 국경도 나이도 다 소용없는 것이었지만, 아직 그 나이에 새벽의 어두운 공기는 홀로 감당해내기엔 무서운 것이었다. 나는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던 만만한 연년생 남동생을 깨우기 시작했다. 착한 내 동생은 누나 잘못 둔 죄로 졸린 눈을 비비면서 새벽 등교를 하게 된다.

너무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결전의 날을 맞이한 나의 교실은 텅 비어있었다. 아니 학교 전체가 텅 비어 있었다.

그 시간에 학교에 있던 학생은 나와 내 동생 오직 둘 뿐인 것 같았다.

나는 안심하며 그 누구누구의 옆자리에 앉아 반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특히 ‘국민’ 학교 6학년이었던 나로 하여금 인생 최초 새벽 6시 등교를 하게 만든 그 예쁜 친구를 기다렸다. 그 친구가 누구 옆에 앉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 예쁘고 얄미운 친구를 제치고 내가 원하던 바로 그 누구누구의 옆에 앉았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사랑을 짝꿍 바꾸기로 응원해준 담임선생님과 사랑에 눈이 먼 누나를 (반강제) 지원 사격해준 동생 덕분이었다.



그때 짝꿍을 바꿨던 시기는 6학년 2학기 10월 중순쯤이었는데,  나는 무사히 내가 그토록 원하던 친구와 짝꿍이 되어 설레는 한 달을 보냈다. 한 달이 지나고 담임선생님께서는 이번에는 남학생이 여학생을 선택하여 짝꿍을 바꿀 것을 제안하셨다. 내가 새벽에 등교한 날 보다도 더 긴장되는 날이었지만 다행히 그 누구누구는 (나의 용기 있는 사랑에 감동한 탓인지) 내 옆에 앉아 나의 사랑을 해피엔딩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친해져 졸업하기 전 겨울 방학에 내게 편지까지 보내주었다. 지금은 없지만 그때 그 편지를 꽤 오래도록 소중하게 간직했던 기억이 있다.

 돌이켜보니 어린 시절의 나는 참 잔망스러운 아이였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만 나올 뿐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평생의 짝꿍을 여태 못 찾았는데, 그때 그 친구는 좋은 짝꿍을 만나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누구의 짝꿍이든 나의 첫사랑, 그 누구누구가 평생의 짝꿍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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