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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롭게

안드레와 올리브나무

[영화롭게 16] 언제나 그 풍경을 담고 싶었어요.

by 리오라

제목을 보는 순간,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두 영화가 동시에 떠올랐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그리고 압바스 키아슬로타미의 <올리브나무 사이로>. 단지 호감이 가는 단어들의 조합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마음이 동했고, 식당 앞, 분재처럼 다듬어진 올리브나무 한 그루와 미슐랭 2스타 셰프 안드레 치앙이 폐점을 선언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먼저는 그의 요리가 궁금했고,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요리보다 삶, 아니 삶을 감싸는 어떤 영적인 결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요리하며 살아가던 그가, 어느 순간 삶 자체를 요리하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요리하는 사람, 삶을 요리한 사람

13세 요리를 시작해, 20세에 대만에서 프랑스 요리 셰프로 인정, 25세에는 프랑스 미슐렝 3스타 식당 책임 셰프가 되었다. 34세엔 싱가포르 식당(Restaurant André)으로 미슐랭 2스타, 38세에는 대만 식당(Raw)으로 미슐랭 2스타를 받았다. 그리고 41세, 그는 싱가포르 식당 폐점 선언하고 이듬해 실제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동시에 두 식당의 미슐랭 별점 반납했다. 영화 이후 행보도 만만치 않다. 48세에는 대만 식당 개업 10주년을 기점으로 최전선에서 은퇴하고 공간을 요리 아카데미로 바꾸어 인재 육성에 나설 예정이다.


그는 두 권의 책도 출간했는데, 『옥타필로소피(Octaphilosophy)』에는 그의 여덟 개의 요리 철학(Pure, Salt, Artisan, South, Texture, Unique, Memory, Terroir)을 담겼으며, 이는 영화의 키워드로도 쓰인다. 그리고 두 번째 책 『시간의 파편(Fragments of Time)』으로 싱가포르 래플스 호텔의 ‘래플스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네 번째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호텔은 루돌프 키플링, 조셉 콘라드, 서머셋 몸 같은 작가들이 머물며 영감을 받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책 제목만 보아도 그의 요리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문화와 시간을 관통하는 예술의 경지에 다다랐음을 짐작하게 한다.


초심이라는 뿌리

이 영화뿐만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추동하는 힘은 ‘초심’이다. 대만의 자연과 어머니는 그 초심을 지켜주는 든든한 뿌리이기도 하다. 폐점 소식을 듣고 프랑스에서 달려온 스승은 식당 앞에 남프랑스에서만 자라는 올리브나무를 심겠다고 했을 때 이미 그의 성공을 예감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올리브나무는 그가 프랑스에서 지낼 때, 방 창문 너머로 보이던 풍경이다. 그는 그것을 보며 요리를 꿈꿨고,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뿌리가 내려가는 순간,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을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절대 잊지 않겠다고. 그렇게 실제로 그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는 대만에서 겸손을 배우고, 프랑스에서 미각과 창의력을 훈련했으며, 싱가포르에서 독특한 존재로 만들어졌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이 진심으로 와닿는 것은, 그가 다시 그 뿌리에서 교육의 열매를 피우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얼마나 더 많은 결실이 맺힐지, 기대되고 설렌다.


왜 그는 내려놓았을까?

답을 듣기 전부터 확신할 수 있었다. 더 높은 곳을 향한 야망 때문은 아니라고. 피곤할 정도로 완벽주의자인 그가 뉴욕타임스 선정 세계 10대 레스토랑의 셰프라는 자리에서 내려오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내려놓음은 요리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어떤 요리를 완벽하게 해내면, 곧장 메뉴에서 제외한다. 그런 그가 화려함의 중심지인 싱가포르를 떠나 고향 대만으로 돌아가, 로컬 시장을 돌아다니며 웃고 있는 모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의 목표는 미슐렝 3스타가 아니었다. 완벽함을 좇는 사이에 놓쳐버린 많은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지 못한 시간에 대한 후회가 그의 결정을 이끌었다. 이제껏 쌓아온 명성과 명예를 추억하며 으스대는 대신 미련 없이 내려놓으며, 더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조용히 말하는 그의 모습에는 세상의 기준을 초월한 초인적인 면모가 엿보였다. 이는 끝없는 자기 증명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누군가는 다 이루었으니 가능한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않는가.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증명하고 싶어 진다는 걸. 그는 진짜 행복이 뭔지 알고 있었고, 이제 그것을 찾아 나섰다. 외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식당을 내려놓았다면, 그보다 더 멋진 이유가 또 있을까?


올리브나무 사이로, 그리고 함께 움직이는 원

영화 <올리브나무 사이로>에서 카메라는 인물을 클로즈업하기보다는, 늘 배경과 함께 담는다. 그리고 인물은 풍경 안에서 살아 있고, 풍경은 인물과 함께 호흡한다. 그렇게 이 영화는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이 영화 역시 주인공을 중심에 두되, 아내와 동료, 가족, 지인들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가 곧 그들이고, 그들이 곧 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말보다 눈빛과 행동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화면을 뚫고 전해지는 그 침묵의 감각이 그를 더 깊게 바라보게 만든다.


특히, 마음에 오래 남는 일화가 있다. 자전거 여행 중 오른손의 신경 손상을 입고, 다시는 손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마틴이 일을 못 할 것 같다고 하자 건네는 그의 말이 압권이다. 그럼 머리를 쓰라고. 머리로 다양한 디저트를 만들고 맛을 조합해 보라고. 그리고 그를 위한 자리이니 돌아올 때까지 비워놓겠다며 용기를 준다. 그 한마디가 어떤 마음에서 나왔는지, 그리고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삶의 원을 넓혀가고 있는지를 단번에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처럼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요리에 어떻게 진심이 빠질 수 있겠는가.


희생처럼, 다시 무(無)를 향해

영화 <희생>은 죽은 나무를 심고 물을 주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아들에게 죽은 나무에 매일 물을 주었더니 3년 후에 꽃이 피었다는 오래된 전설을 들려준다. 이 죽은 나무는 믿음, 희생, 그리고 희망의 상징으로, 절망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끈질기게 실천하면, 언젠가 변화와 기적이 찾아온다는 메시지다. 타지에서 뿌리내리고 꽃을 피운 젊은 셰프의 여정 역시 마찬가지다. 이방인으로서 척박한 환경에서 뿌리를 내리고 그 꽃을 피우는 게 어찌 쉬웠겠는가? 그의 아내는 또 얼마나 많은 감정을 삼켰겠는가. 의식과도 같은 희생과 인내 없이 이룰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함께 매일 그들의 꿈에 물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성장해 나갈 수 있었고, 그들의 고백은 하나하나 울림을 남긴다.


<희생>의 주인공 알렉산더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겠다고 기도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자 자신의 전부(가족, 예술, 집)를 불태운다. 자신을 해체하고 새로운 존재로 이행하는 알렉산더의 모습은 어쩐지 그와 겹쳐 보인다. 그 역시 자신이 정한 시간 단위로 삶을 정리하고, 스스로 태워 없애며, 다시 무(無)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이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흘려보내고,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 그 안에는 묘한 영성마저 스며 있었다.


그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태우고, 다시 세워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어디서든 삶을 요리하며 다시 또 하나의 세계를 내놓을 거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언젠가 정말로, 요리로 세상을 구하게 될지.


[zoom in]

-손님 100명 중의 한 명이라도 우리가 디테일에 공들인 걸 알아챈다면 가치가 있는 일이죠.

-저는 행복한 셰프가 되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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