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 내놓은 새로운 H-1B 비자 개편안은 단순한 행정적 조정이 아니다. 외국인 숙련 인력 한 명당 연간 10만 달러라는 충격적인 수수료 부과는, 미국이 세계 인재의 허브에서 스스로 물러나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19일 포고령에 서명하면서 “미국인 우선주의”를 강조했고, 백악관 비서관 윌 샤프는 “이제 기업들은 정말 대체 불가능한 인재만 데려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 현장의 반응은 우려에 가깝다.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업은 수억 달러의 추가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핵심 인재를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다. 인공지능이나 바이오 분야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해외 석·박사급 인재를 영입하려던 신생 기업은 이제 선택지가 줄어든다. 한 전 인포시스 CFO는 “10만 달러 수수료는 신규 신청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 결과, 미국 내 혁신 생태계가 다양성을 잃고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 역설적인 효과는 오히려 일자리 해외 이전이다. 카토 연구소의 데이비드 비어는 이번 조치가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비싼 수수료를 피하기 위해 캐나다 토론토나 인도의 벵갈루루로 연구개발 거점을 옮기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 캐나다는 이미 글로벌 인재 스트림(Global Talent Stream) 프로그램을 내세우며 미국의 빈틈을 적극적으로 메우고 있다.
인재 개인의 선택도 달라질 수 있다. MIT 박사과정을 마친 인도 출신 연구자는 미국 기업의 채용 제안을 받더라도, 불확실성과 고비용 구조를 고려해 캐나다, 독일, 혹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벤처 투자자 디디 다스는 이번 조치를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인재를 미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막는 disincentive”라고 꼬집었다. 이 흐름이 장기화된다면, 미국은 AI·반도체·생명공학 등 미래 산업에서 경쟁국보다 뒤처질 위험이 있다.
정책의 법적 기반도 취약하다. 더그 랜드 전 USCIS 고위 관료는 “10만 달러 수수료와 입국 금지를 연계하는 조치는 법정에서 단 5초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만약 소송으로 정책이 무력화된다 해도, 이미 외국 인재와 기업들은 “미국 제도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불신을 가질 것이다. 제도의 불안정성은 그 자체로 글로벌 인재 유입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정치적 논란은 이미 불붙었다. 엘론 머스크는 과거 H-1B의 가치를 옹호하며 “이 문제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발언했다. 반면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은 “모든 대형 기업이 찬성한다”고 말해 혼란을 더했다. 노동단체들은 외국인 저임금 노동력 남용이 임금 성장을 억눌렀다고 비판하며, 이번 정책을 일정 부분 지지하면서도 “임금 기반 비자 할당제”와 같은 더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 조치는 H-1B 제도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제도는 원래 숙련 인력 부족을 보완하는 장치였다. 그러나 이제는 ‘누가 돈을 낼 수 있는가’라는 고비용 장벽으로 전환되었다. 더 나아가, 대안적 비자(L-1, O-1, TN 등)에 수요가 몰리면서 또 다른 병목현상이 생길 수 있고, 제도 전반의 효율성과 신뢰성은 흔들릴 것이다.
따라서 H-1B 비자 정책 변화는 단순한 행정 명령 이상의 파급력을 지닌다. 이는 미국 노동시장의 재편, 글로벌 인재 흐름의 이동, 법적 분쟁, 산업 생태계의 양극화까지 촉발하는 거대한 제도적 전환점이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세계 기술 경쟁에서 “인재를 끌어모으는 국가”에서 “인재가 기피하는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음을 담고 있다. 제도의 성격이 바뀐 순간, 그 사회의 미래도 바뀐다. 이번 개편은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