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워싱턴 D.C.의 공중보건은 거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보건복지부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 위원 17명을 전원 해임했다. 해고 통보는 이메일도, 전화도 아니었다. 당사자들은 신문을 통해서야 자신들의 ‘퇴직’을 알게 되었다. 장관은 그들이 “백신에 무조건 도장을 찍는 기계”라고 비난했고, 대신 백신에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인사들을 새 위원으로 임명했다.
9월 회의에서 새 위원회는 즉각 기존 권고안을 흔들었다. 코로나19 백신은 “모두에게 권고”에서 “개별 선택”으로 바뀌었고, 유아용 MMRV 혼합 백신은 분리 접종으로 되돌려졌다. 신생아 대상 B형 간염 백신 권고안은 표결조차 하지 못한 채 보류됐다. 과학적 합의가 아니라 이념적 방향성이 우선하는 순간이었다.
의료계와 학계는 즉각 반발했다. 미국소아과학회와 감염병학회를 비롯한 주요 단체들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행정절차법 위반”을 주장했다. 여러 전직 CDC 고위 관계자들도 의회 증언을 통해 “과학이 아닌 정치가 권고를 좌우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 사이, 서부 해안 네 개 주는 ‘보건 동맹’을 결성해 독자 지침을 내놓으며 연방 정책과 노골적으로 대립했다. 매사추세츠와 플로리다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미국의 백신 정책은 지역마다 다른 메뉴판처럼 조각나기 시작했다.
이제 무대는 완전히 바뀌었다. 백신은 더 이상 공중보건의 도구가 아니라 개인적 신념의 장식품이 되었다. 약국에서는 사람마다 “오늘은 면역을 좀 줄래요?” 하고 주문하듯 백신을 요청한다. 약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론이죠, 다만 집단 면역은 재고가 없습니다”라며 안내한다. 광고 문구처럼 들린다. ‘선택은 자유, 결과는 복불복.’
법정 역시 과학의 성지가 아니라 풍자극 무대에 가깝다. 판사는 의료 협회의 주장을 들으며 “정부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겁니까? 정말 순진하군요”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배심원들도 미소로 화답한다. 합리성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유물일 뿐, 오늘의 유행은 ‘불합리한 낭만주의’다.
TV 뉴스는 장관의 인사 조치를 다루며 배경음악으로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를 틀어준다. 전문가들은 “증거가 부족하다”고 호소하지만, 증거는 더 이상 학술지에서가 아니라 토크쇼 시청률에서 평가받는다. 논문보다 틱톡의 30초 영상이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 혼돈 속에서 사람들은 역설적인 민주주의를 체감한다. 누구도 백신을 강요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질병은 자유롭게 확산되고, 병실 침대는 자유롭게 공유된다. 이것이야말로 ‘자유의 나라’의 완성 아닐까?
그리고 훗날 역사가들은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21세기 초반, 미국은 과학을 정치로 대체하며 자국의 백신 체계를 해체했다. 그 결과 홍역과 풍진은 돌아왔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기침을 나누며 민주주의의 본질을 호흡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