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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서정 Jun 19. 2024

6.26.



“아메리카노 아이스로 한 잔 주세요.”

“네. 2500원 입니다.”


카드를 내밀었다. 알바생이 익숙한 동작으로 내 카드를 쌩하니 긁었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핸드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보나마나 결제 확인 문자였다. 알바생은 내게 카드를 돌려주고 급히 에스프레소 머신 앞으로 갔다. 그라인더로 원두를 가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그는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얼음을 담고, 물을 받고, 기계가 뱉어낸 에스프레소를 끼얹었다. 삼 분이 채 되기 전에 알바생은 군더더기 없는 매끄러운 동작으로 내 커피를 완성했다. 그리고 플라스틱 컵에 종이 홀더까지 씌워서 내게 쑥 내밀었다. 겨우 시급 6500원 남짓 받는 알바생이겠지만 프로와 맞먹는 몸놀림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픽업대에서 내 커피를 들고 깜빡이는 신호등 아래로 마구 달렸다. 겨우 횡단보도를 건너고 보니 아직 한 입도 마시지 않은 커피가 뚜껑 가운데 난 빨대 구멍으로 조금 솟아나왔다. 나는 그것을 못 본 척하고 얼른 회사 로비로 들어갔다. 출근하는 직원들이 나처럼 불편한 옷을 입고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검은 옷, 흰 옷, 회색 옷. 게이트 센서에 사원증을 찍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겉옷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지를 꺼냈다. 컵 위로 솟아나온 커피가 손으로 흘러내리는 것은 매일 아침 있는 일이라 집에서 미리 휴지를 넣어오는 쪽이 편했다. 정신없이 커피를 닦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김이지씨, 굿모닝.”

“부장님 안녕하세요.”


내 입에서 상냥한 인삿말이 자동응답기처럼 툭 튀어나갔다. 부장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나는 커피로 반쯤 젖은 휴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딩동.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속이 빈 엘리베이터로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다들 1초라도 더 빨리 사무실에 가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 안에 탄 것은 나였다. 다행히 중량초과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다. 지난주 내내 야근을 하고 3킬로그램 빠졌던 것이 도움이 되었을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내 눈 바로 앞에서 닫혔다. 혹시 가방이라도 끼일까봐 가방을 붙잡고 몸을 한껏 움츠렸다. 내 바로 옆에 딱 붙어 선 부장님이 말했다. 부장의 입에서는 매캐한 담배냄새와 구린 입 냄새가 났다. 나는 어떻게든 그를 피해보려고 했지만 어림없었다. 자기 딴에는 친절하다고 여기는 능글맞은 표정을 하고 부장이 말했다.


“김이지씨, 어제 나한테 보낸 사이트 개편 기획서 말이야. 내가 보니까 오류가 많더라고. 오늘 오전 중으로 수정해서 보내줘.”

“네 부장님.”


얼굴이 저절로 방긋 웃었다. 땡. 4층입니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사람들에 떠밀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나는 경보를 하듯 걸었다. 얼른 내 책상, 3면이 파티션으로 둘러싸인 나만의 공간에 들어가고 싶었다. 목이 마르다 못해 따갑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부장님 앞에서 커피를 쭉쭉 빠는 건 삼가는 편이 나았다. 부장님은 습관처럼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난 말이지, 길에서 뭘 먹으면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이해가 안 가. 아침부터 쓸 데 없이 부장님의 눈 밖에 날 필요는 없었다.


“김이지씨, 수고. 이따가 메일 보내면 톡 해줘.”

“네, 부장님.”


부장님이 등을 돌리고 자기 자리로 사라졌다. 웃는 얼굴은 자동으로 나타났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어, 신입 왔어?”


1년이 넘도록 신입이라고 부르는 윤대리를 피해 내 자리에 겨우 앉았다. 연녹색 파티션이 감싸고 있는 자리가 오늘따라 아늑했다. 책상에 커피를 내려놓고 가방을 책상 밑 빈자리에 밀어 넣었다. 메쉬망으로 된 말랑한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아 컴퓨터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컴퓨터를 부팅하는 동안 손을 뻗어 드디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손끝에서 시작된 차가운 감촉이 빨대를 타고 입 안으로 이어졌다. 오늘따라 씁쓸한 커피향이 혀의 돌기 하나하나를 자극하는 것 같이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 흐렸던 시야가 아까보다 훨씬 또렷하게 펼쳐졌다. 따갑던 목의 통증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이제 좀 일할 만했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부장이 보낸 메일을 확인했다. 줄글로 쭉 쓰여 있는 그의 의견을 해석하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어제 내가 보냈던 기획서의 페이지나 카테고리, 맥락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네가 말하는 건 현실성이 없다는 식의 훈화성 줄글이 무려 25줄이나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별 내용 없는 메일을 읽으면서 신문물과의 괴리를 전장에서 얻은 훈장쯤으로 취급하는 부장의 뽐내는 얼굴을 쉽게 떠올렸다. 늘 이런 식이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글을 보고도 그 속내를 모두 파악해서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뽑아내야 ‘일 잘하는 직원’이 될 수 있었다. 지겨운 레퍼토리에 양쪽 관자놀이가 쿡쿡 쑤셨다. 얼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얼마 전 한 동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 우리는 죽어서 화장하면 카페인만 남을 거야. 뼈가 있는 농담에 같이 커피를 마시던 동기들은 모두 웃었다. 나는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어제 만든 기획서 파일을 열었다.


20xx년도 사이트 개편 기획안. 커다란 글씨의 제목이 눈앞에서 뿌옇게 이지러졌다. 눈을 세게 한 번 감았다 떴다. 글자가 조금 번져서 보였지만 읽을 수는 있었다.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글자가 좀 더 선명해졌다. 글자 아래 빨간색 회사로고는 나를 비웃듯 늘었다 줄었다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가장 급한 건 부장이 언급한 부분이 어딘지 찾는 거였다. 50페이지가 넘는 기획안을 마우스 휠로 쭉쭉 내렸다. 부장이 ‘애매모호한 목적’이라고 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가 안 됐다. 멍한 얼굴로 의미 없이 마우스 휠을 올렸다 내렸다 했다. 사실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제도 10시가 넘어서 퇴근했고, 새벽까지 잠을 설치다가 겨우 4시간 자고 나와야 했다.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는 정신이었다. 하지만 아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났던 부장의 말이 양쪽 귀 안쪽에서 윙윙 울리는 것처럼 맴돌았다. 오늘 오전 중으로 수정해서 보내줘. 오늘 오전 중으로 수정해서……. 오늘 오전 중으로……. 뻐근한 목 뒤를 한손으로 무자비하게 주물렀다. 안 봐도 느껴지는 빨간 손자국이 딱딱하게 굳은 피부를 콕콕 찔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전 중에 보내야만 한다.


“김이지씨.”

“네.”


파티션 위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더니 과장이 내 쪽을 보고 있다. 안 그래도 할 일이 쌓였는데 또 무슨 일인가 마음속이 타들어 갔다. 과장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웃었다.


“지금 우리 팀 전체 회의 할 거니까, 차 주문 좀 받아요. 회의는 저쪽 3회의실에서 할 거야. 아, 나는 카라멜 마키아토. 차가운 걸로.”

“네, 알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포스트잇 메모지와 볼펜을 챙겼다. 분위기를 파악한 윤대리가 제일 먼저 소리쳤다.


“나는 카페모카. 크림 잔뜩 올려서.”


뱃속 깊은 곳부터 올라오는 한숨을 참고 주문을 받았다. 총 7잔이었다. 내 것까지 8잔. 캐러멜 마키아토 하나, 카페모카 둘, 아이스 아메리카노 셋, 카페라떼 하나, 카푸치노 하나. 한손에 주문 목록을 들고 얼른 뛰어나갔다. 이럴 거면 통일이라도 하지. 원망스러운 생각이 불쑥 들었다. 주문은 늘 제각각이었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커피를 배달하면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타박받는 게 일상이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허겁지겁 올라타 닫힘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 알림판에 흰색으로 떠오르는 숫자가 천천히 바뀌는 것을 보다가 채 마치지 못한 기획서를 떠올렸다. 오전 중에 달라고 했는데. 어떡하지.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의 홈버튼을 눌러 시계를 보았다. 오전 10시 48분. 회의를 한 시간만 해도 기획서를 다시 볼 수 있을 확률은 0에 가까웠다. 솔직히 말하면, 0에 가까운 게 아니라 0이다. 회의하고 팀 전체가 점심을 먹으러 간다는 것쯤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딩동. 1층입니다. 교양있는 안내멘트가 끝나기 무섭게 다 열리지 않은 문을 비집고 뛰어나갔다. 뾰족한 구두굽이 미끄러져 몸이 휘청거렸다. 그래도 무시하고 뛰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 다리나 구두가 아니었다.


양 손에 커피 캐리어 두 개를 들고 배달을 마친 것은 회의가 시작되고 5분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그렇게 뛰어갔다 왔는데 결국 늦고 말았다. 과장은 또 미간을 찌푸리고 나를 쳐다봤다. 말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늦지 말랬더니 왜 이렇게 늦게 오냐. 하여간 저렇게 느려터져서 어쩌려고 저러는지 원. 공기가 진동하지 않아도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 때문에 턱에 힘이 들어갔다. 애써 웃는 얼굴로 커피를 모두 나누어주고 빈 의자에 앉았다. 빔프로젝터 스크린 위에는 화려한 파워포인트 문서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팀장은 그 앞에 서서 무슨 말을 열심히 하고 있었고, 팀원들도 회사 노트에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었다. 거기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나밖에 없었다. 팀장의 목소리에도, 스크린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습관적으로 눈앞에 있는 플라스틱 컵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차가운 커피가 빨대를 타고 입 안으로 쭉 들어왔다. 동시에 컵을 잡은 손끝이 시큰했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깜짝 놀라 얼른 컵을 내려놓았다. 얼른 손끝을 살펴보았지만, 뭐가 잘못된 건지 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너무 차가운 것을 잡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김이지씨. 내 말 듣고 있어요?”


잠깐 딴 생각을 하기 무섭게 과장이 나를 다그쳤다. 또 미소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죄송합니다.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과장은 탐탁지 않은 얼굴로 다시 회의를 진행했다. 사실 회의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것이, 보통 회의는 과장의 일장 연설로 시작해서 훈시말씀으로 끝나곤 했기 때문이다. 나는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손가락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던 시큰한 느낌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결국 오전 중에 보고서는 완성하지 못했다. 회의가 끝나고 팀 전체가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버렸지만 나는 거기 없었다. 다 마시지 못한 커피컵을 들고 자리로 돌아가 보고서를 마저 완성해야했다. 1시 13분. 보고서를 첨부한 메일을 부장에게 보냈다. 보내라던 톡도 보냈다. 드디어 끝났다. 긴장이 풀려 안도감이 들었다. 의자에 푹 기대 누워 잠깐 눈을 감았다. 점심을 먹고 돌아온 사수가 한마디 했다.


“집 안방이 따로 없네, 아주.”


깜짝 놀라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그는 딸기 주스를 쭉쭉 빨면서 한심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내가 표정관리를 할 겨를도 없이 얼굴 근육이 움직여 시무룩한 얼굴을 만들어냈다. 사수의 옆에서 멀뚱히 있던 윤대리가 괜히 나서서 말했다.


“왜 신입을 괴롭히고 그래. 좀 피곤할 수도 있지.”

“내가 괴롭히긴 뭘. 혼자 피곤하면 되는 걸 자꾸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피곤하게 만들잖아.”


너무 피곤하고 정신이 없어서 사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내가 욕을 먹고 있구나 하는 분위기만 눈치챘을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자동적으로 사과의 말이 나왔다. 사용자가 명령어를 입력하면 원하는 답을 출력하는 로봇의 메커니즘 그 자체였다. 사람이 로봇이 되는 SF적 상상이 현실이 된 걸까.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다가 사수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디서 그따위 거나 배워가지고. 부모 욕 안 먹이려면 앞으로 똑바로 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지금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들릴락 말락 작은 목소리로 내가 대답하든 말든 사수는 자기 책상으로 가버렸다. 나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가다가 마주친 직원 몇 명이 말을 걸었지만 나를 부르는 지도 모르고 화장실로 쏙 들어갔다.


막 점심시간이 끝난 참이라 화장실은 텅 비어있었다. 가장 구석진 칸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변기 커버를 덮고 그 위에 앉았다. 무슨 생각을 하기도 전에 눈물부터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눈물은 나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생각은 아무것도 나지 않았다. 우느라 뜨끈하게 달아오른 눈이 터질 것처럼 아팠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아프지 않을까. 그 생각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화장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회사 화장실이라 차마 크게 울지는 못했다. 누군가 회사 화장실에서 큰소리로 엉엉 운다면, 그 소문이 회사를 한 바퀴 도는 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소리는 내지 못했지만 눈물과 콧물이 멈출 줄 모르고 줄줄 흘러나왔다. 어떻게 멈춰야 할지 방법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무기력하게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기만 했다. 곧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발소리가 들렸다. 이 안에서 울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흘러내리는 눈물을 무시하고 숨을 죽였다. 잠깐 물소리 같은 게 나는 것 같더니 사람이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1분정도 지나자 곧 끝났다. 그 사람은 코를 팽 풀더니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기분이 나빴다. ‘네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 누구도 한 적 없는 말이 마음속에 소용돌이쳤다. 더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다만 가슴께가 칼에 찔린 것처럼 욱신거렸다.


칸막이 문을 열고 나와 세면대 앞 커다란 거울 앞에 섰다. 역시나 눈이 벌겋게 부었다. 휴지로 대충 눈물을 닦아내고 화장실을 나왔다. 사무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사무실 안 그 누구도 마주치기 싫었다. 컴퓨터 바탕화면 가득 저장된 업무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지치고 피곤했다.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엘리베이터 벽에 기댄 내 모습이 초라했다. 딸이 좋은 회사 다닌다고 동네방네 자랑했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찢어지는 마음을 얼기설기 억지로 기웠다. 그래도 별로 힘이 나지 않는다. 어깨가 축 쳐진 채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위태로운 정신으로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커피를 시켰다. 기다리는 동안 카운터 앞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일어나서 먹은 음식이라고는 커피 두 잔이 고작이었다. 하루종일 왜 이렇게 힘든지 이제야 깨달았다. 당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카운터 앞에 진열된 초콜릿쿠키를 하나 집어 결제했다. 이거라도 먹으면 힘이 날지도 모른다. 힘없는 손으로 쿠키 봉지를 뜯자마자 픽업대에서 나를 불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샷추가 나왔습니다.”


몇 걸음 안 되는 거리지만 얼른 뛰어가서 커피를 받았다. 차가운 플라스틱 컵에 홀더를 씌우고 빨대 껍질을 벗겨 구멍에 끼웠다. 자리로 가져가려고 컵을 들자마자 순식간에 놓치고 말았다. 아까 회의시간에 느꼈던 날카로운 통증 때문이었다. 뜻하지 않게 컵을 내동댕이친 나는 갈라지는 것처럼 시큰한 느낌이 들었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다섯 손가락 모두 손톱 끝이 시커멓게 물들어있었다. 얼른 다른 쪽 손끝을 보았다. 반대쪽 손은 괜찮았다. 그제야 바닥에 쏟아진 커피가 눈에 들어왔다. 알바생은 깜짝 놀라 대걸레를 들고 뛰어오고 있었고 손님들은 모두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새로 만들어 드릴까요?”


바닥을 닦던 알바생이 물었다. 자기 잘못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네.”


차가운 것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걱정이 되어 따뜻한 것을 다시 주문하기로 했다. 바닥을 대충 정리한 알바생이 얼른 카운터로 가 내 주문을 다시 받았다. 돈을 내겠다는데도 안 받는다고 하기에 그냥 뒀다.


픽업대 앞에 서서 시커멓게 변한 손끝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손톱 끝뿐만 아니라 그 아래쪽 살까지 검게 물들어있었다. 엄지손톱으로 살이 검게 변한 부분을 꾹꾹 눌러보았다.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색이 변한 곳이 마비되거나 지나치게 아프지도 않았다. 색이 검게 변한 것만 빼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러다 곧 괜찮아지겠지. 나는 찜찜한 마음으로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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