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득히 멀어져가던 경순씨의 정신이 다시 돌아온 것은 염치없는 원수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아 그렇다니까는. 나를 몰라요?”
이제 늙어서 그 형체를 거의 다 잃어버렸지만, 분명했다. 열 몇 해 전까지 종종 신문에 등장하던 그 놈, 쯔쿠미찌가 분명했다. 경순씨는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 같아 들고 있던 수세미를 집어던지고 그의 멱살부터 잡았다.
“김종도라고? 쯔쿠미찌 이놈!”
그놈은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치더니 곧 도망쳐버렸다. 경순씨는 화장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쏜살같이 도망간 그 놈을 쫓아가서 다시 멱살을 잡고 네 놈이 죽인 우리 아버지 살려내라고 악을 쓰고 싶었다. 60년 동안 이를 갈았던 군의관 놈에게 겨우 몇 마디 욕도 못 해준 게 속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경순씨는 한참을 가슴을 치며 울었다.
“오경순 님, 방금 결정이 됐는데.... 저희 회사에서 일 못하게 되셨어요.”
눈물을 추스르고 청소를 마친 경순씨가 조그만 청소부 휴게실로 돌아가 잠깐 앉아있을 때, 파견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별안간 잘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순씨는 눈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왜그래요? 지난번엔 나이는 문제가 아니라며.”
“저기 그게....... 병원측에서 해고 통보가 왔어요. 경순씨 해고하지 않으면 저희 회사랑 계약 안한다고....... 죄송해요. 저희도 어쩔 수가 없어요.”
젊은 사장은 도망치듯 전화를 끊었다. 경순씨는 맥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방금 전 일어났던 일과 쯔쿠미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간호사실에 가서 ‘김종도’에 대해 물었다.
“김장관님 말하시는 거예요? 병원장님 아버님이세요. 전 병원장님이시기도 하고요. 그런데 할머니 그건 왜요?”
경순씨는 대답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원수놈의 병실 앞에 섰다. 단정한 글씨로 ‘김종도’라는 이름표가 병실 문 옆에 붙어있었다. 경순씨는 코웃음을 치며 특실 문을 세게 밀어젖혔다. 통화중이던 그는 경순씨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지 큰 소리로 떠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 놈들이 다저녁 때 여길 왜 와! 아무리 내가 재판정에 안나갔어도 그렇지. 나 김장관이야! 김종도라고! 이런 법이 어디가 있어!”
그는 분한 듯 씩씩댔다. 그러나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에 알겠다고 소리치며 전화를 확 끊었다. 전화기를 내려놓는 그의 앞으로 경순씨가 불쑥 나타났다. 그는 경순씨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곧 안정을 되찾았다.
“나 지금 바쁘니 다음에 다시 오시오.”
“쯔쿠미찌, 네 놈 짓이냐? 우리 아부지 끌고 가 죽인 것도 모자라서 나를 쫓아내?”
그는 뜨끔한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이 한 일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생사람 잡지 말어. 그리고 나 바쁘다니까. 얼른 나가!”
환자복을 입은 김장관은 경순씨를 밀치고 침대 옆에 있던 여행가방을 꺼냈다. 밀려난 경순씨가 눈을 부릅뜨고 김장관을 팍 밀쳤다. 그는 막 열어젖히던 여행가방 위로 우당탕 넘어졌다.
“이 할망구가 미쳤나! 막 사람을 밀치고!”
“바른대로 말해! 네 놈이 나 자르라고 시켰지!”
여행가방을 짚고 겨우 일어난 김장관이 벌겋게 성난 얼굴로 소리쳤다.
“그래. 나다. 어쩔 건데? 내가 내 병원에서 겨우 청소부 하나 자르겠다는데 그게 뭐 어쨌다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그가 인정하자 경순씨는 목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는 침대 옆 서랍장에서 소지품을 꺼내 가방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 태연한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경순씨는 그의 멱살을 콱 움켜쥐고 마구 흔들었다.
“이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놈아, 그러고도 네 놈이 인간이냐?”
“아이고! 아이고! 이 할망구가 사람 죽이네. 이것 놔!”
마음이 급한 김장관은 경순씨의 손을 떼어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경순씨의 손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린 것처럼 떼어낼 수가 없었다. 그는 조바심이 났다. 이제 곧 사람들이 몰려들 시간이었다. 그 전에 여기서 빠져나가야 했다.
“이것 좀 놓아, 제발! 지금 빨리 나가야 된다니까!”
“가긴 어딜 가! 가긴 어딜 가, 이놈아! 이 왜놈 새끼야! 못 간다, 못 가. 날 죽이고나 가든지.”
경순씨가 악을 썼다. 김장관의 멱살을 두고 벌써 한참이나 힘을 쓰던 두 사람이 김장관의 침대에 쾅 부딪쳐 넘어졌다. 순간 경순씨의 손에서 힘이 풀렸고, 김장관은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이 미친 할망구!”
김장관은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얼른 여행가방의 지퍼를 잠갔다. 바닥에 넘어진 경순씨는 흐느끼며 여전히 바닥에 넘어진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김장관은 경순씨의 상태를 살펴볼 생각도 없이 병원복 차림으로 여행가방을 끌고 병실 문쪽으로 몇 걸음 걸었다. 그러다 무엇이 생각났는지 경순씨를 돌아보았다.
“카악 퉤.”
침을 한 번 거하게 뱉은 김장관이 병실 문을 열었다. 그때 뒤에서 커다란 괴성이 들렸다. 김장관은 예상치 못한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황급히 돌아보았다.
“너 이놈! 이 더러운 짐승 새끼!”
언제 일어났는지 병실 한가운데 우뚝 선 경순씨가 벼락같이 소리쳤다. 성난 발걸음 아래로 불꽃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이 분노 서린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김장관의 목을 콱 움켜쥐었다.
“너 같은 놈은 쓰레기통에 콱 처넣어야돼!”
“윽! 날 죽일 셈이야?”
“그래!”
그가 김장관을 억세게 잡아당겼다가 한쪽 벽으로 밀어붙였다. 숨을 쉬지 못해 시뻘겋게 변한 김장관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김장관은 사력을 다해 경순씨를 밀쳐냈지만 경순씨는 쉽게 밀려나지 않았다. 조그만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용솟음치는지 김장관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몸싸움끝에 두 노인이 다시 한 번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으로 넘어졌다. 김장관의 손에 들려있던 여행가방이 힘없이 자빠졌다. 콰당. 넘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시각, 병실 앞을 지나던 간호사는 큰소리로 싸우는 소리를 들었지만, 김장관에게 걸린 사람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며 무심하게 지나쳤다.
똑똑. 특실 문에 네모지게 달려있는 불투명한 창문에 시커먼 그림자가 어렸다.
“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나왔습니다.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이 신분을 밝혔지만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 중 맨 앞에 서있던 사람이 문을 열었다.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바닥에는 김장관의 소지품으로 보이는 여러 물건들이 어질러져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시커먼 여행가방이 뒹굴고 있었고, 물컵과 이불은 그들은 특별한 지시 없이도 능숙하게 병실 안을 뒤졌다.
“여기 있습니다!”
곧 한 사람이 특실에 딸린 개인화장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영 석연찮았다.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래?”
“그게, 상태가 좀.......”
대장은 그를 밀치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곧 경악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것은 화장실 변기에 앉아있는 김장관을 발견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화장실 안에 진동하는 락스냄새 사이로 뭔가에 푹 젖은 채 정신이 나가보이는 그의 모습은 추악한 한 마리의 괴물같았다.
“김종도씨?”
대장이 그를 불러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두 눈에 초점이 사라진 그는 대답 대신 입술을 달싹이며 한 단어만 중얼거렸다.
“……쿠미찌. ……쯔쿠미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