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피부과에서는 아무래도 원인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덧붙여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도 했다. 결국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기로 했다. 대학병원에 예약을 하고 진료 일주일 전부터 진료가 있다고 부장과 과장에게 모두 말해 놓았다. 어디가 아프냐고 묻기에 손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내 손을 소름끼친다는 듯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은 내가 안쓰러워 보일법한 얼굴로 통사정을 했을 때에야 마지못해 알겠다고 했다. 잘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희망사항이었다. 막상 내가 반차를 쓰는 날이 되자 사람들은 싫은 티를 대놓고 냈다.
“아니, 통증도 별로 없다면서 꼭 병원에 가야 돼?”
“…….”
할 말이 없었다. 검은 물이 일렁이는 손만 내려다보고 서있었다. 과장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이미 다 챙겨놓은 가방과 먹다 남은 커피를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팀원들이 불만 섞인 얼굴로 한 번씩 나를 쳐다봤다. 어쩐지 큰 죄를 지은 느낌이다.
의사는 곤란한 표정으로 내 손과 발을 살폈다. 생활습관 몇 가지를 묻더니 바로 피부 조직 검사를 해야 된다고 했다. 2주나 기다린 의사를 만난 지 겨우 3분도 안 돼서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검사실로 갔다.
“손이랑 발 둘 다 검사 할 거고요, 지금 이 안내화면 다 시청하신 후에 시작하실 거예요. 자세한 검사 방법은 안내화면에서 자세히 설명하니까 잘 봐주세요. 앉으시면 바로 재생할게요.”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21인치 정도의 LED모니터가 있었다. 자리에 앉자 흰색 바탕에 친절한 병원 로고와 캐릭터, 그리고 검고 선명한 글씨로 ‘피부 조직검사 안내’라고 쓰인 첫 번째 페이지가 사라지고 다음 내용이 나왔다. 생각 없이 영상을 보다가 피부를 떼어낸다는 안내문구에 조금 긴장했다. 영상은 피부에 둥그렇게 구멍을 내는 장면까지 보여주고 끝이 났다. 피부가 물들어 버린 것도 무서웠지만 살을 잘라낸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꽤 겁이 났다.
영상이 끝나고 조금 기다리자 간호사가 들어왔다. 검사용 의자에 누워서 마취를 하고 작은 기계로 피부에 구멍을 뚫었다. 별로 아프지는 않은데 손에서 발에서 기계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게 소름끼쳐서 하마터면 움직일 뻔했다. 상처자국을 볼 수는 없었지만 검은 손에 선홍색 구멍이 뚫린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조직 채취는 소름끼치는 수술용 실의 느낌이 내 피부를 몇 번 꿰뚫은 다음에야 끝이 났다. 긴장이 풀려 몸에 힘이 없긴 했지만 생각보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회사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간호사가 안내문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펜을 든 간호사는 내 쪽으로 향한 안내문에 줄을 찍찍 그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간호사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반차 쓰고 나오신 거죠?”
“네.”
간호사는 내 사정을 잘 아는 사람처럼 말했다. 그는 내 얼굴을 살피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마취 풀리면 좀 아플 거예요. 이따가 처방전 받고 약 사서 집으로 가세요. 오늘은 쉬시는 게 좋겠네요.”
“네. 그럴게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집에 가는 버스 대신 지하철을 탔다. 부장의 짜증스런 표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아파도 회사에 가서 아픈 티를 내는 게 그나마 안전한 직장생활의 방법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잘하는 짓인지는 의문이었다. 모두가 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따라할 뿐이었다.
나는 얼마전 열이 잔뜩 오른 얼굴로 일하던 직원을 보고 혀를 차던 부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아픈 것도 실력이 부족한 탓이라며 쯧쯧 혀를 찼다. 밤새 열이 올라 고생했다는 그 직원은 6시가 넘은 다음에야 겨우 퇴근할 수 있었다.
회사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천천히 마취가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간호사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손과 발에서 찌르는 듯 날카로운 고통이 일었고 무엇을 잡거나 걷는 것도 꽤 불편했다. 억지로 버티다 못해 이마에 식은땀이 솟았다. 나는 아까 간호사가 지었던 표정을 이해했다. 수많은 환자들이 곧 닥쳐올 통증을 알지 못하고 회사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했겠지. 안쓰러운 건지 답답한 건지 알 수 없는 간호사의 한숨 쉬는 얼굴이 떠올랐다.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결심이 서자 다음 행동은 명확했다. 나는 반대방향 지하철로 갈아타고 곧장 집으로 왔다.
집에 오자마자 처방받은 약을 한 봉지 먹고 이불 위에 누웠다. 창밖은 아직 밝았다. 까끌까끌한 여름 이불의 감촉이 피부에 고르게 느껴졌다. 만성적인 몸의 피로 위에 욱신대는 상처의 통증이 덧붙었다. 약기운 덕에 통증이 둔탁해질 즈음 까무룩 잠이 들었다. 너무 고단해서 이 세상이 불타 없어지는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