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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Nov 07. 2023

씁쓸한 쌍화차

백화점에서 걷고 있는데 시음을 하라 한다. 쌍화차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쌍화차를 그냥 지나칠 수 없지. 태어나서 여태껏 마셔본 쌍화차의 최고봉은 시골 시장에서 만난 약탕기에 끓인 쌍화차였다. 오늘 마신 더덕을 넣은 쌍화차도 그 못지않게 진한 맛이 배어 나왔다. 판매자 왈 쌍화차 진액을 물에 넣고 팔팔 끓였다더니 역시 그냥 물에 탄 거와는 맛이 다르다. 차도 정성을 들여야 맛이 있다. 쌍화차 한 잔에 얼었던 온몸이 따뜻해지며 하루의 피로가 녹는듯했다. 할 수만 있다면 쌍따봉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쌍화차를 마시며 20대 때의 내가 떠올랐다. 하이힐을 신고 신고 옷을 세련되게 입고서도 난 계란 동동 띄운 쌍화차를 마셨다. 젊은 애가 무슨 쌍화차냐며 선배들이 웃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원두를 볶아서 추출하는 커피전문점에서도 난 쌍화차를 주문했다. 커피의 향이 진동하며 날 유혹해도 쌍화차가 더 좋은 걸 어쩌란 말이다. 한 번은 쌍화차가 마시고 싶어서 인사동을 간 적도 있었다. 웬만한 동네에서는 쌍화차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쌍화차를 좋아한다고 하도 말하고 다니다 보니 쌍화차 선물을 몇 번 받기도 했다. 그 정도로 나는 쌍화차를 사랑한다.


시음한 종이컵을 내려놓고 쌍화차 병을 만지작거린다. 십이만 원이라는 가격표가 선뜻 카드를 꺼내기에는 큰 숫자다. 나 혼자 마시자고 구입하기엔 망설여진다. 분명 저 병의 3분의 1도 못 마시고 유통기한을 넘길 게 뻔하다. 결국 가족들 먹을 간식만 사고는 내 최애 차인 쌍화차는 접어두기로 한다. 집에 오면서 생각한다. 가족을 위해 쓰는 돈은 그리 아깝다 생각하지 않으면서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쌍화차에는 왜 유독 인색한 걸까. 내게 우선순위는 내가 아니구나. 입 안에 쌍화차가 남아 있는지 씁쓸한 맛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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