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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Sep 03. 2021

소지섭 같은 트레이너는 드라마에만 있다

 무책임한 트레이너

TV에서 소지섭, 신민아 주연의 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가 한창 방영되고 있을 때였다. 극 중 여주인공은 뚱뚱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녀에게는 지병이 있었으니 바로 '갑상선저하'. 나의 갑상선도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서 약을 먹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유독 그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갑상선저하가 있으면 갑상선 호르몬 분비가 원활하지 않아 살이 찌고 쉽게 피로를 느낀다. 드라마에서는 소지섭이 신민아를 트레이닝 시켜서 갑상선 저하증을 낫게 해 주었다. 흑기사 소지섭 같은 트레이너를 만나길 기대하며 헬스장 문을 두드렸다. 물론 나는 기혼자이고 남자로서 흑기사가 아닌 내 몸을 변화시켜줄 그런 전문가를 찾고 싶었다.

      

규모가 큰 헬스장이 바로 집 앞에 있지만 내 몸 혹사시키는 모습을 여러 사람에게 보이기 싫었다. 집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여성전용 헬스장이 좀 더 나을 듯싶었다. 상담하는데 아픈 곳이 있냐는 질문에 "갑상선저하가 있고요.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앓았어요."라고 말하며 그 당시 삼십 대인데 이곳 저것 망가진 내 몸이 참 부실하게 느껴졌다. 인바디 체크 후 결과지를 보고는 쥐구멍에 숨어버리고 싶었다. 거울로 보던 나의 몸보다 몸무게, 체지방량, 근육량 등 수치로 비치는 나는 한없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회원님, 괜찮습니다. 한 달 뒤에는 지방이 빠지고 근육이 늘어있을 거예요. 트레이너는 다음 주에 오시면 알려드릴게요."   

  

월요일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 9시에 헬스장에 도착했다. 내게 배정된 트레이너는 나보다 한참 어린 앳된 얼굴의 여자 트레이너였다. 나는 그녀를 "코치님"이라 부르며 거의 사부님처럼 모셨다. 그녀가 하라는 대로 모든 지시에 따랐다. 그녀는 모든 동작에 "한 번만 더"를 외쳐댔고 그럴 때면 난 젖 먹던 힘까지 보태 남은 힘을 겨우겨우 쥐어짰다. 첫날 헬스장 갈 때 10~15분 걸렸던 그 길을 집에 올 때는 체감상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두 배의 시간이 소요됐다. 집에 발을 들이자 아침 먹은 게 다 소화됐는지 허기가 졌는데 좀처럼 일어날 수가 없어 한참을 누워있었다.    

  

한 달 동안 매일 헬스장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트레이닝은 월수금에만 받았지만 나머지 요일에는 혼자서 기구를 사용해서 근력운동을 하고 유산소도 빼먹지 않고 챙겼으며 처음과 마지막에 스트레칭까지 해서 헬스장에 한번 가면 2~3시간은 기본으로 있었다. 평소 운동을 극도로 싫어하는 내가 그 정도 운동했다는 건 기적이었다. 그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다. 그리고 운동을 하니 체력이 좋아짐을 자각할 수 있었다. 첫날 운동 후 기어 들어왔던 나는 며칠 뒤부터 운동 후 샤워하고 가뿐해져 집에 쏜살같이 올 수 있었다. 그렇게 운동으로 일상을 채우며 한 달을 보냈다.  

   

한 달이 흐르고 대망의 인바디 체크 순간이 왔다. 트레이너는 그간 체중을 측정하지 말래서 헬스 모범생인 나는 그 말도 착실히 따라왔던 터라 결과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맨발로 인바디 기계에 올라 떨리는 손으로 기계의 양 날개 같은 봉을 쥐어잡았다. 측정이 끝나고 결과지를 보는 트레이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환자의 심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뭐가 잘못됐나요?"

"회원님, 기계가 고장 났나 봐요. 잠시 뒤 다시 재볼게요. 화장실 좀 다녀오세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10분 뒤 다시 측정했다. 트레이너 표정이 굳어버렸다. 내 시선도 결과지에 꽂혔다. 지난달과 비교해서 나온 결과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몸무게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체지방이 늘고 근육량은 감소해있었다. 트레이너 왈 아무래도 기계 오작동인듯하니 내일 공복에 다시 재어보자고 하며 내 곁을 황급히 떠났다. 다음 날 미심쩍은 마음으로 인바디 재측정을 했으나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회원님, 혹시 식이 조절하셨나요?"

"아뇨."

"원래 다이어트에 운동은 30프로, 식이가 70프로거든요."

"그럼 진작에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그래도 체력은 좋아졌잖아요."    

 

그녀는 트레이닝 전 사이클 10분을 타게 했는데 그때마다 속도랑 강도로 내가 체력이 점점 늘고 있다고 칭찬했던 터였다. 무책임한 트레이너의 말에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회원님, 제가 다음 달에는 다른 트레이너로 바꿔드릴게요."     


내가 어안이 벙벙해서 가만히 있자 그녀는 갑자기 내게 책임 전가하는 것도 모자라 나를  다른 트레이너에게 떠넘기겠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게 했다. 나는 내 몸을 바꿔보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기에 이미 다음 달도 선결제했었다. 그런데 인바디 결과에 모든 의욕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난 그 헬스장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들도 참담한 결과에 놀랐는지 위약금 없이 다음 달 선결제 분을 순순히 환불해 주었다. 이렇게 한 달만에 헬스 트레이너와의 인연은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끝이 났다.

 






 극 중 뚱뚱했던 신민아가  반쪽이 되었듯이  내 몸도 그렇게 되길 꿈꾸었으나, 네게는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소지섭 같은 트레이너는 역시 드라마에서나 존재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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