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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Sep 04. 2021

라디오 유혹에 넘어가다

 운 좋으면 선물을 받을 수 있다

 

 ‘CX 택배’ 아침에 띠리릭 문자 알림이 울렸다. 순간 스팸문자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식품이 배송된다고 하는데, 어제 이미 주문했던 식품류가 모두 도착했기 때문이다. 회사에 출근한 남편한테 전화를 해보았다.

 “여보, 식품 주문한 거 있어?”

 “아니, 없는데………”

 “엄마, 라디오, 라디오 선물인가 봐요.”

 아이가 퀴즈 정답에 이어 이번에도 답을 맞힌 듯하였다.

 지난주 아이와 보드게임을 한창 하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문자 퀴즈가 나왔다. 아이가 답이 ‘올림픽’이라면서 참여하자고 졸라댔다.

 “올림픽, 아이랑 보드게임 중에 보냅니다. 올림픽 열기 못지않아요.”

 문자 전송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답과 함께 사연이 소개되었다. 아이는 신이 나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이런 맛에 매번 ‘#1077’, ‘#9390’을 누르고 사연을 보내곤 한다.  선물을 받기까지 보통 2~3개월 정도 소요되어 잊을 만하면 받게 되는데, 이번에는 꽤 빨리 도착한 편이다. 근데 식품이라는 택배, 이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라디오 선물은 당첨됐을 때 쾌감이 들고, 그 선물을 기다릴 때 설레기도 궁금하기도 하다.

 

 라디오 선물에 입문한 건 출산과 동시에 퇴사하고부터다. 아이가 갓난아기 때 거의 집에만 있다 보니 갑갑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사회와 단절된 느낌이 들어 누구와라도 소통하고 싶었다. 그 돌파구가 라디오였다. 라디오는 선곡하지 않아도 음악을 틀어주고, 재미있는 사연, 슬픈 이야기, 사랑 이야기 등을 들려줬다. 중간중간 DJ는 문자로 유혹하곤 한다. #을 붙이는 문자들은 단문 50원, 장문 100원의 정보이용료가 있다고 하는데, 보낼 때마다 이 돈이 한 달간 모이면 얼마나 될까 생각을 한다. 그래도 난 어느새 유혹에 빠져들어 문자를 보내고 또 보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없다 보니 라디오를 자연스레 듣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코로나19로 집콕 모드가 되어 다시 라디오를 듣게 되었다.

 

 경험상 보통 선물은 신입 라디오 청취자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거의 처음 보낸 문자에서 당첨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사연을 보낼 때 문자로 3-4 문장 정도,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게 보내야 잘 뽑혔다. 또한 문자를 구어체로 작성해서 DJ가 읽기 편하게 하는 것도 포인트이다. 지난달에 보냈던 문자를 예로 들면 “오늘 생일이에요. 발이 아파서 한의원에 누워 침을 맞는데 서글프더라고요. 피곤해서 낮잠 자고 났더니 하루가 다 갔어요.” 이 사연은 소개가 됐는데, 선물은 받지 못했다. 간혹 이런 경우도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 꽤 다양한 선물을 받았다. 떡 한 박스, 화장품, 영양제, 올리브유, 만두 등 범위가 참 넓다. 라디오 선물은 어떤 선물을 받을지 설렘이 있다는 점에서 꽤 매력이 있다. 라디오 인터넷 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써서 올리면 더 큰 선물이 있는듯한데 그 정도로 라디오 열성팬은 아니라서 드문드문 문자만 보낸다. 저녁 6시, 라디오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금희’ 할 시간이 다가온다. 이제 라디오를 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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