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from. 시이모님

고향에 가신 시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은 옆에 계신 이모님께 인사드리라면서 전화를 바꿔주셨다. 시댁에 이모님과 고모님이 너무 많기도 하고, 집안 행사 때만 잠깐 뵙기에 어떤 분인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모님,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죠?”

나는 형식적인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이모님이 내게 건네신 말에 당황했다.

“야야, 아기 키우느라고 욕본다. 사랑한다.”

순간 멈칫하다가 나도 반사적으로 내뱉었다.

“저도요. 이모님 사랑합니다.”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집안 분위기에 친정 부모님께도 건네보지 못했던 말인데, 시이모님께 먼저 사랑 고백을 하고 말았다.

학창 시절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한 장면이 있다.

“엄마, 상장받았어.”

엄마는 내 얼굴을 마주치지도 않은 채 이불만 꿰매고 계셨다. 우리 친정 부모님은 정말 칭찬에 인색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랑한다”는 사치이자 금기어가 아니었을까? 이모님과의 전화통화 후 친정에 전화를 걸었다.

“글쎄, 시이모님이 대뜸 날 사랑하신대. 것도 너무 씩씩하고 당당하게 말씀하셔서 놀랐어.”

엄마는 한참을 웃으시더니 평소 하지 않던 그 말을 하셨다.

“사랑해, 우리 딸”

이 틈을 타서 나도 나지막이 말했다.

“엄마, 나도 사랑해.”

이 소중한 순간을 만들어주신 시이모님께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

듣기 어려운 말을 전화로 들었을 때 참 뭉클했답니다. 이날 이후로도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을 참 입밖에 내길 어려워하십니다. 어린 손자가 그렇게 사랑고백을 해도 못 들은 척하시면서 "응, 그래. 다음에 보자." 이러고 자리를 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