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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삶의 속도

시간을 대하는 자세의 다름

by 영오

포르투갈에서 길을 걷다가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을 만나면 늘 난감하다.

내가 아무리 속도를 늦춰서 걸어봐도 거리는 계속 좁혀지고 결국 추월을 해서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신기하게 늘 그랬다. 그래서 길에서 앞서가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좀 불편하다. 그들도 그럴 것이다. 무슨 급한 일이 있길래 저렇게 걸음이 빨라서 앞질러 갈까 싶을 것이다.


포르투갈에서는 서둘러 가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심지어 배달하는 사람들조차 서두르지 않는다. 길에서도 늘 천천히 걷는 사람들뿐이고, 식당에서도 그렇고, 관공서, 은행 다 그런 분위기이다. 다들 그냥 조용히 걷고, 기다린다. 그런 사람들 중에 있으니 내가 대단히 성질이 급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한 번은 헤갈레이라별장 입장티켓을 온라인으로 구입을 했는데 입장 시간이 늦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거의 뛰다시피 해서 정문에 도착했는데 그날 그곳에서 시간에 쫓기고 있던 사람은 나하나였다. (온라인티켓은 그 시간보다 일찍 들어가는 것만 안될 뿐 늦는 것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늘 시간약속이 있으면 그 시간까지 맞춰서 가야 했고, 그 시간을 넘기는 것은 대단히 미안한 일이었다. 친구와의 약속뿐 아니라, 상담 같은 약속시간이 있는 경우 보통은 5~10분 일찍 가는 게 상식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에서는 그게 정 반대이다. 모든 약속시간이 5~10분 늦는 것이 상식이다.(사실, 더 늦을 때도 많다.) 변호사 미팅에도 정시에 도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늘 조금씩 늦었고 오히려 그것이 더 예의에 맞는 일이었다. 정시나 그전에 도착하면 아직 준비가 다 안 끝난 모습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살면서 그 문화에 적응을 하는 것이 사실 제일 힘들었다. 약속시간을 어기고 만난다는 것이 아직까지도 불편한 탓이다.

은행에서도 업무를 기다리다가 업무시간이 지나면 내일 다시 와야 한다. 내가 기다린 건 어쩔 수 없는 것이 되고 업무시간은 끝났으니 내일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 또한 문화적 쇼크였다. 한두 시간 전에 왔는데 그날 일을 다 못 끝낸다는 것이 충격이었고, 그랬는데도 또 사람들이 그냥 가는 것을 보고 두 번 충격을 받았다. 크게 컴플레인도 하지 않는다. 그냥 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어깨 한번 으쓱하고 돌아선다. 이 사람들의 시간에 대한 태도가 정말로 경이로웠다.



이들에게 시간은 무슨 의미일까?

한국인에게 시간은 귀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귀한 것을 헛되이 허비하는 것도, 남이 그 시간을 잡아먹는 것도 대단히 온당치 못한 일로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시간이란 삶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동안 하고 있는 일이나 행동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 내에 끝이 나고 안 나고는 중요치 않아 보인다. 시간을 조금 넘기는 것은 용인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일로 간주된다. 그래서 식당이나 어딘가에서 기다려야 할 때도 사람들은 야박하지 않다. 동행이나 옆에 있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수다를 떨면서 기다릴 만큼 기다린다.

물론 여기서도 발걸음이 빠른 사람이 있을 것이고, 종종거리면서 하루 종일 일에 치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차이라면 한국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는 것과 여기서는 잘 볼 수 없다는 것 그뿐이다. 둘 사이에는 분명 장단점도 존재한다.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그저 여기 사람들의 삶의 속도는 확실히 한국과는 좀 다르고 느리다는 것. 시간에 대해서도 많이 너그럽다는 것. 나 또한 이곳의 삶에 익숙해지고 나면 그렇게 변해갈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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