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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생활이 제일 힘들 때

부모님이 아프실 때

by 영오

적지 않은 나이에 이민을 선택했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모두 다 연로하시다.

혹자들은 그런 부모님들을 두고 떠나는 우리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런 기준으로 따진다면 그 누가 떠날 수 있을까.

마음에는 걸렸지만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떠나온 그날부터 부모님들께서 조금만 더 힘내서

견뎌주시기를 늘 기도했다.


이제 80대가 되시는 부모님들은 생각보다 힘 있게 매일의 일상을 사셨다.

엄마는 늘 여기저기가 아프고 걱정과 불안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아빠는 매사가 괜찮은 스타일이었다.

그저 막걸리 한두 병이면 하루가 즐겁고 만족을 하시는 그런 분.

그렇게 조금은 오래 버텨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아빠가 몸이 안 좋다는 소리를 들으니 덜컥 겁이 났다.

늘 잘 지낸다고 이야기해 주시던 분이었는데

밥을 잘 못 드신다고 하니 걱정이 밀려왔다.

왜 못 드시는지, 뭐가 좀 드시기 좋을지

화상통화로 이런저런 걸 물어봐도 답은 없다.

아빠는 그런다고 큰 병원을 가거나 수술을 하거나 하진 않으실 거란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탓에

여기에 있으나, 한국에 있으나 답이 없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일이 있으면 그저 옆에 있어드리지 못하고

가서 얼굴을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이 마음 아프다.

늘 화상통화를 할 때면 잠깐 얼굴을 비치고 잘 지내냐?라는 말만 하던

아빠의 상태는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안 좋을 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셨을 거고, 나 또한 그런 모습을 보지 않으려

서로 외면을 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몇 년을 지냈지만 이제 그게 한계에 다다른 것일지도.


나는 늘 인간의 끝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퇴직과 동시에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식으로 살아오셨지만

내가 봐온 주변의 어르신들, 특히 돌아가실 날이 얼마 안 남으신 어르신들의 모습은

많이 달랐기 때문에 엄마아빠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건강했던 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시는 것을 주변에서 보고 하니

사람의 수명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정말로 운명이라는 것은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건강하시던 아빠가 저렇게 약해지시고 나니 오히려 매일 아팠던 엄마가 씩씩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너희나 건강히 잘 지내라고

오히려 용감하게 우리를 다독이셨다.

이럴 때 나는 인생의 고통을 느낀다.

우리의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고 어쨌거나 조금은 나은 방향을 위해서 한 선택이지만

늘 후회가 남고 아픔이 생긴다.

내가 지금 이곳이 아니고 한국에 남아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쓸데없는 가정을 종종 한다.

그랬다면 또 이곳을 오지 못한 후회로 불행해하고 있겠지.

결국 인생이란 100프로 만족과 행복이 될 수 없구나라는 걸 깨닫는다.

행복을 느끼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아야 한다.

내가 한국에 있어서 지금 당장 부모님에게 달려가 볼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화상통화를 하고 아직은 기력을 차리고 계시는 부모님의 모습에

감사를 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지일 것이다.


결국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나 스스로도 자책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다독이며 나아가는 것.

나는 이제 이런 삶을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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