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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서 겪은 황당한 사건

포르투갈우체국 ctt

by 영오

포르투갈에서는 모든 게 좀 느긋하다.

급할 것도 없고(급하다고 빨리 되는 것도 없지만), 열받을 일도 없고, 그저 맑은 날씨나 즐기면서 하루하루 그렇게 여유롭게 지내려 했고 사실 그런 날들의 연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번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했던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 아이 물건을 소포로 보냈는데 반송이 돼버렸던 사건이었다.

한국이야 워낙에 우편시스템이 잘되어있고 확인도 빠르지만 이곳 우편시스템은 잘 모르는 상황에서 통관절차며 온라인 신고며 하는 것들이 낯설었고 언어의 장벽은 그 어려움을 한층 더 배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그래도 요즘에는 번역기도 있고, chat gpt도 있고 해서 별 어려움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나의 생각이 너무 안일했다. 거기에다가 운도 없었다!!


한국에서 아이 애착인형들과 중고책 몇 권을 큰 박스에 보낼 때부터 슬픈 예감이 밀려왔었다.

한 20킬로 남짓 한 박스하나가 거의 20만 원이 넘는 우편요금이 드는 것이었다. 차라리 이곳에서 사는 게 더 나은 상황이었지만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놀던 인형과 한글책들은 구하기가 힘들어서 무리해서 보냈던 게 화근이었다. 다 중고물품이고 심지어 다 떨어진 애착인형인데 통관에 무슨 큰 문제가 있으랴 한 게 문제였다. 이곳에서 생활을 하면서 늘 그런 내 상식으로의 속단이 전혀 다른 결론을 맞는 경우가 많았다.

소포는 포르투갈까지 문제없이 들어왔지만 세관에 잡혀 통관절차를 진행해야 했다. 세관에 잡히면 온라인으로 신고를 하라고 메일이 온다. 그런데 온라인신고를 하려고 ctt사이트를 찾아서 들어가는 것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링크로 들어가도 신고메뉴가 아니거나 연결이 안 되거나 하면서 진행이 원활하지 않았다. 포르투갈에서 경험해 본 대부분의 온라인행정이 그런 식이여서 이것부터 슬슬 스트레스가 쌓였다. 이틀에 걸쳐서 회원가입을 하고 신고사이트로 겨우 들어갔다. 세관에 신고할 때 중요한 것은 이 물건이 상업용이 아니라 개인용이며 판매할 상품이 아니라는 것을 최대한 성의껏 증빙을 해야 하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아무런 가치가 없는 중고물품이라는 나의 속단이 이곳 사람들에게도 통하리라 생각했던 게 문제가 되었다. 내가 그냥 개인 중고물품이라고 별다른 서류 없이 신고를 했더니 증빙을 하라고 접수가 반려가 되었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반송시킨다고 다음날 바로 메일이 온 것이다.

그제야 아차 싶어서 우체국이며 고객센터며 부랴부랴 연락을 했지만 세관에서 내린 결정이라 자기네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어떻게 손써볼 틈도 없이 소포는 반송이 되었고 더 기가 막히게도 반송료가 발생해서 거의 50만 원 돈을 공중에 날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크게 깨달았다.

1. 모든 걸 내 기준에서 판단하지 말자

내 기준에 중고물품이라 누가 줘도 가져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금물. 여기에서는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성의껏 설명을 할 것. PDF 파일을 첨부하라고 하면 손글씨라도 써서 PDF파일로 만들어 올리는 수고라도 해야 한다.


2. 웬만하면 그냥 현지에서 사자

한국에서 뭘 가져오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비용따지면 여기서 사는 게 훨씬 싸다. 그래도 정 가져오고 싶은 게 있다면 한국 나갔을 때 내가 직접 사서 들고 오자.


3. 아주 중요한 것들은 DHL이나 UPS를 이용하자

이런 회사들은 통관을 대행해 주기 때문에 반송될 위험이 거의 없다. 다만 비용이 비싸다는 게 단점.


이번에도 비싼 수업료?를 내고서 또 하나 배웠다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황당했던 사건이었다.

그때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손짓발짓했던 일들을 생각하니 또 살짝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지만 포르투갈에서는 이런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어그 진품을 사서 보냈는데 짝퉁이라면서 반송시킨 일(정품보증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송 전화가 오지 않았는데 두 번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반송한 일, 전반적인 직원들의 불친절 등등 ctt나 세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관공서 리뷰를 읽어보면 진짜 온갖 하소연이 난무한다. 그래서 평가를 보면 별이 1,2개인 것이 다반사다.)

이 또한 외국에 사는 이민자의 고단함중 하나일 것이다.

살다 보면 이런 것들에도 적응이 되는 그런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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