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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 사는 대가

내가 잃은 것과 얻은 것 사이

by 영오

내가 이곳에 있는 사이 한국에 있는 지인들 몇 명은 승진을 해서 사무관이 되었다.

나 역시 계속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사무관으로 승진을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걸 내려놓은 것이 아깝지 않냐고 물었다.

그 질문을 받고 곰곰 생각해 봤는데 아깝긴 아까웠다.

내가 청춘을 바쳐? 열심히 했던 일중 하나였고 그 경력이 중간에 끊긴 상황이 된 거니까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아까운 건 사실이다.

근데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아쉬워한다.

내가 그만둔 경력, 포기한 경제적 여건, 안정된 삶 같은 것을 말이다.

그러면서 은근히 내가 후회하기를 강요한다는 느낌도 든다.

'거봐, 너 지금 후회하는 중이지?'


그런 생각이 치밀어 오르는 날에는 어김없이 우울해진다.

햇빛 쨍쨍한 날이었다가 한순간 먹구름이 몰려오는 느낌이랄까?

멀리 보이는 햇살이 부서지는 강물이 좋고, 조용히 햇빛이 비치는 창가가 좋고, 음악이 흐르는 이 공간이 좋고, 참 작고도 소중한 것들에 행복했는데 한순간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게 밥 먹여주나.

지금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런 집에서, 이런 차를 타고,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이런 수준의 삶을 살고 있을 텐데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뭔가 싶은.

이럴 때 나는 비교와 선택, 두 단어가 떠오른다.

비교는 한순간에 사람의 마음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지만 선택은 그런 마음을 다시금 천상으로 끌어올려준다.

지금 나의 상황을 남들과 비교를 하면 하나도 정답 같아 보이는 게 없다.

죄다 틀린 답인 것만 같다. 다른 이들 또한 그렇게 다그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저 다른 것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이건 나의 선택이었지. 사무실 밖을 나와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을 따른 나의 선택.

그래도 직장을 다닐 때는 월급날 딱 하루 행복했다면,

여기서는 남들하고의 비교가 떠오르는 딱 하루만 불행하잖아.

그게 지금 내가 리스본에 살고 있는 대가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얻은 것이고 잃은 것이다.


내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포르투갈로 이민을 온 것이 모두에게 권할만한 정답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남들이 그럴 것이라 예상했던 것처럼 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고생처럼 느껴질 때도 분명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살고 있다고 해서 그 사실이 나를 늘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인생은 매 순간이 고난의 연속인 것이 맞다.

그 어디에도 완벽한 천국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이 좋은 이유를 찾는다면 여기선 나를 주저앉히는 것들이 없다.

내가 뭔가를 하겠다고 할 때마다 한사코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가로막았던 보이지 않는 손들. 그것이 없다. 그래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 때론 불안하기도 하지만 내 인생을 온전히 내 맘대로 하고 있다는 그 자유가 좋다. 여기서는 더 이상 이 나이에~를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나이는 그냥 나이일 뿐 어떤 것을 하는데 제약이 되지 않는다. 물론 제한이 있을 때도 있고 나 스스로 한계를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나이를 거론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조용히 앉아서 내가 이곳에 와서 잃은 것과 얻은 것을 곰곰이 따져본다.

- 내가 잃은 것

1. 안정된 직장

2. 평균적인 삶

3. 한국에서의 인간관계


- 내가 얻은 것

1. 평화로운 일상

2.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자유

3.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


적고 보니 대단히 뜬구름 같은 것들만 얻었구나 싶기도 하지만 결국 나는 이런 것들을 원해서 여기에 왔고 이곳에 있구나 싶다. 나는 한평생을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니?'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지만 이제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한번 살아보려고 한다. 참고 참아서 언젠가 행복해지는 것 말고 매일아침 눈을 뜬 바로 그 순간 행복을 느끼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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