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자존감 지킴이

by 영오

아들은 나에게 점수가 참 후하다. 내가 만든 음식은 뭐든지 맛있다고 해주고, 내가 하는 일은 뭐든지 멋지다고 해준다. 아이에게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엄마, 뭐든지 잘하는 엄마, 아주아주 유능한 엄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미안하면서도 싫지는 않다. 이 세상 누가 나를 이토록 믿어주고 칭찬해 줄까.

아이는 내 자존감 지킴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칭찬을 듣고 자라지 못했다. 그저 똑똑하다는 소리만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로 똑똑한 아이인 줄 알았느냐, 그건 아니다. 나 스스로 나의 한계를 알고 있는데 주변에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하면 부담스러웠다. 나는 똑똑한 아이가 아닌데, 내 진짜 모습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고 반신반의하며 살아온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느낌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잘하는 게 있어도 그걸 자신감 있게 말하지 못한다. 그저 모든 게 서툴고 어설프게만 느껴진다. 물론 좀 잘하는 게 있지만 남들에게 내세울만한 건 아닌 것들이 많아서이기도 하다.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겸손을 떠는 병에 걸려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늘 내게 말했다. 겸손하라고, 자만하지 말고 계속 더 노력하라고.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로 내가 뭘 잘하는지, 뭘 더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아이는 늘 칭찬을 해준다. 엄마음식은 정말로 다 맛있어. 삼겹살만 구워준 것뿐인데도 엄마가 구워줘서 삼겹살이 맛있다고 하는 수준이다. 만들다가 모양이 망쳐서 엉망이 돼도 아이는 맛있다고 해주고 최고라고 해준다. 또한 내가 노트북 앞에 앉아서 뭔가를 쓰는 척만 해도 아이는 감탄하면서 엄마 글 쓰는 거냐며 엄마는 작가라고 말해준다. 사실, 별거 아닌데, 나중에 네가 크고 나면 실망할지도 모르는데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그저 고맙기도 하다. 아이는 그렇게 스위트하다.

내가 대전청사에서 근무했을 때 나는 아이를 사무실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아이눈에는 그것도 대단히 멋있게 보였던 모양이다. 몇 날 며칠을 감탄하면서 이야기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내가 지금도 공무원을 하고 있다면 아이는 나를 더욱 자랑스러워했을까. 이제는 그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와서 머나먼 타국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내 모습도 자랑스러워해 주는 건 고맙지만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나이가 된 뒤에도 나를 자랑스러워해 줄까. 그런 걸 생각하면 가슴속 한쪽이 쓰라리다.

하지만 아이는 아마 나를 계속 자랑스럽게 생각해 줄 것이다. 직업의 귀천을 떠나서, 엄마가 하는 일이니까, 또 자신과 가정을 위해서 용기 낸 걸 아이는 아니까 더욱더 과장되게 아이는 내 칭찬을 해주는 것이다. 어린것 같지만 아이들도 눈치라는 것이 꽤 어린 시절부터 발달을 한다. 집안사정이 좋은지 안 좋은지 분위기로 다 파악을 하고 부모를 위로하려고 나름의 노력을 한다. 그것을 알기에, 그런 모습은 때론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지금은 믿기 힘들지만 어려움은 영원하지 않다. 삶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오늘 하루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내느냐이다. 그런 면에서 아이의 칭찬은 큰 도움이 된다. 엄마의 노력을 있는 그대로 칭찬해 주는 아이, 인정해 주는 아이, 그런 아이의 소중한 한마디가 오늘 나를 살린다. 그래, 너를 위해서라면 엄마는 못할 것이 없지. 지금도 내가 공무원을 하고 있다면,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엄마가 되어주었을지는 모르지만 네 곁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는 없었겠지. 두 가지 일을 하려면 반드시 한쪽의 희생이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너에게 집중하기로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해온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네가 나에게 이런 따스한 위로의 말을 건넬 줄 아는 아이로 커줬으니까. 엄마는 그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서로에게 이런 덕담을 건네며 잠자리에 든다. "You are the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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