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SE리제 Oct 21. 2015

나는 간결한 문체가 좋다

나는 단순함이 좋다

나는 간결한 문체가 좋다. 단문으로 탁탁 끊어가는, 굳이 접속사를 쓰지 않아도 매끄럽게 느껴지는 문장들이 좋다. 음악에서 스타카토로 강조를 하듯이 단문에선 느껴지는 힘이 있다. 반면 현학적이고 어렵기만 한 글은 참 없어 뵌다. 옷도 너무 꾸며 입었다는 느낌이 들면 부담스럽듯이. 


브런치에 글을 정기적으로 발행하면서 내 문장에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심코 쓰다 정신 차려 보면 문장을 한없이 늘어뜨려 놓고 있었다. 중언부언하기도 하고 쓸데없는 수식어를 덧붙이기도 하면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강하게 들 때면 그것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하고픈 마음에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기도 했다. 나중에 읽어보면 어차피 똑같이 보이는 문장들이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말하고 싶은 욕심이 앞서는 듯하다. 그리하여 한껏 써놓은 문장을 통째로 삭제할 때, 한 문장을 몇 개로 나눌 때 내 부족함을 여실히 느낀다. 이토록 나는 명료한 생각을, 말을 하지 않고 살아왔구나. 장인이 도자기를 깨버리듯 미련 없이 내던지는 연습 중이다. 


논리관계가 뒤섞여 있어 문장 순서를 바로잡는 것도 일이다. 순서가 잡히지 않으면 변명하듯 문장이 길어지거나 정리가 안 된다. 역설적이지만 간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세히 파악해야만 하더라.¹  자세히 알지 않으면 누군가 의문을 제시하는 순간 흔들리기 마련이다. 지금 내가 중언부언한다면 그 이유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말로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논술 등 학창 시절 글을 쓰다 보면 특히 어려운 부분이 이 지점이었다. 나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완벽한 한 편의 글을 쓰고 싶은 욕심부터 앞섰다. 쓰다 보면 근거와 결론이 바뀌어야 할 것 같고 또 바꿔 놓으면 원래대로가 맞는 것 같았다. 서론을 쓰면서도 본론인 것 같아 지우고 이러다 보면 결국 세네 줄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지금이야 휴대전화로 혹은 컴퓨터로 쓰고 고치니까 얼마나 편한가. 말이 되지 않는 문장도 일단 쓰고 본다. 다시 다듬을 때에는 지면을 어지럽힐 필요도 없다. 설혹 다 써놓은 글이라도 '복붙신공'으로 어려움 없이 순서나 구성을 바꿔버릴 수도 있다.


글을 쓰다 영 정리가 안 될 때에는 일단 묵혀둔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다시 열어보면 그제야 내 생각의 파편들이 제멋대로 뭉쳐져 있는 게 눈에 보인다. 비가시적인 생각들이 가시적인 문자로 나타날 때, 그리하여 나에게서 독립한 실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나를 조금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말하자면 어떤 생각이 섞였고 무엇이 진짜 논점인지, 어떤 개념들을 혼동했는지를. 무엇을 말하고 싶어 했는지를 말이다. 그때는 어찌할지 몰라 헤맸던 글도 어느새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어쩌면 간결한 문체에서 오는 힘은 자기 자신을 잘 안다는 확신,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다는 믿음 그것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신에게 무슨 말을 전달하고 싶은지 바로 안다는 것. 그 메시지에 대한 확신이 문장에서 힘으로 나타나는 건 아닐까. 




¹ 자세히 알지 못한 채 단순함만 추구한다면 왜곡하기 쉽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정에도 순서가 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